자메이카는 1년 내내 달린다

  • 입력 2009년 2월 23일 02시 54분


매주 2~5개 열리는 대회마다 아이부터 어른까지 2000∼3000명 참가

“우, 우, 우….” “쿵, 쿵, 쿵….”

22일 자메이카 킹스턴의 내셔널스타디움에서 열린 서인도대(UWI) 초청 육상경기대회 남자 400m 결승.

자메이카의 ‘올림픽 영웅’ 우사인 볼트가 힘차게 질주하자 스탠드의 5000여 팬은 함성을 쏟아내고 제자리에서 발을 구르며 응원을 펼쳤다.

볼트는 45초54로 2위를 멀찌감치 따돌리고 1위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카리브 해의 작은 섬나라 자메이카는 뛰어난 선수와 열광적인 팬들로 가득한 육상 왕국이었다.

○ 즐기는 육상 문화

오전 9시에 시작된 대회는 오후 11시에야 끝났다.

이번 대회는 12세부터 성인까지 약 2000명이 참가했다. 이 가운데 75%에 이르는 1500여 명이 100m를 달렸다. 그만큼 100m 달리기는 자메이카의 최고 인기 종목이었다.

청소년 3그룹(14세, 16세, 18세 이하)과 성인 그룹으로 나뉘어 치러진 경기는 4∼5시간 넘게 이어졌다. 진행이 원활하지 않아 수시로 경기가 중단됐다. 하지만 자리를 뜨는 관중은 거의 없었다.

장내 아나운서는 참가 선수들의 이름을 일일이 호명했고 응원 나온 가족들은 환호로 답했다. 육상 경기가 아니라 마치 소풍 나온 사람들 같았다. 긴장감보다는 오락을 즐기는 분위기였다.

1988년 서울올림픽 여자 200m 은메달리스트이자 이번 대회 조직위원장인 그레이시 잭슨 씨는 “보고 즐기면서 달리면 교육에도 좋고 세계 최고도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선수들이 경기에 임하는 자세 역시 진지했다. 복스홀고교 1학년 키먼 존슨(13)은 14세 이하 남자 100m에서 11초8로 우승한 뒤 “볼트 같은 유명한 단거리 선수가 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 달릴 수 있어 행복하다

이날 대회에서 볼트 못지않게 관심을 끈 것은 허들 경기.

여자부는 70m와 80m, 그리고 300m 허들 경기가 있다. 12세와 14세, 그리고 18세 이하 선수들을 배려해 거리를 조정했다.

남자 역시 110m 허들을 뛸 때 나이에 따라 허들의 높이를 조정해 어린 선수들도 쉽게 뛸 수 있도록 했다.

자메이카 클리너지의 앤서니 포스터 기자는 “29일 열리는 깁슨 릴레이 때는 더 재미있는 종목이 많다. 6세에서 10세 아이들이 뛸 수 있도록 50m와 60m를 4명이 이어 달리는 종목도 있다”고 전했다.

자메이카에서는 매주 토요일 2∼5개의 육상대회가 열린다. 6월까지 총 43개 대회가 예정돼 있고 대회마다 2000∼3000여 명의 선수가 참가한다.

자메이카는 영국 식민지 시절인 1910년 자메이카 챔프스(전국고교육상대회)를 창설해 일찌감치 육상 강국의 기반을 다져 왔다.

지난달 말부터 한국 단거리대표팀을 이끌고 자메이카에서 훈련 중인 서말구 감독은 “현지 선수들이 열악한 환경에서도 즐겁게 달리는 것을 보고 놀랐다”고 말했다.

“세계 최고 선수들을 훈련시키는 운동장이 잔디 트랙이었다. 우리에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자메이카 선수들은 이런 환경조차도 행복해했다.”

국제육상경기연맹(IAAF)이 공인한 세계적인 훈련소 자메이카공과대학의 상급자 훈련소 운동장도 잔디트랙이다. 볼트와 아사파 파월도 여기서 훈련한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달리기에 몰두하는 것. 자메이카가 육상의 메카가 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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