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녀의 담장’ 너머로 홈런…그라운드 여걸 삼총사

  • 입력 2008년 9월 9일 08시 51분


한국 여자야구 국제대회 첫승 주역들

“여자야구? 소프트볼이겠지.”

김주현(38·비밀리에), 최수정(33·나인빅스 감독), 곽대이(25·비밀리에)는 야구를 하는 여자선수들이다. 4년이 넘는 세월 동안 그래왔다. 그런데도 누군가에게 “여자야구를 한다”고 소개할 때면 여전히 “여자들이 하는 건 소프트볼 아니냐”는 반문이 되돌아온다.

‘여자들은 야구를 할 수 없다’는 편견은 이렇게 뿌리 깊다. 하지만 앞으로는 달라질지 모른다. 적어도 변화를 위한 첫 걸음은 뗐다. 지난달 말 일본에서 열린 제3회 여자야구 월드컵이 그 계기다. 국제대회에 사상 첫 출전한 한국은 8개 참가국 가운데 6위(2승3패)를 했다. 25일 홍콩전에서는 사상 첫 국가대항전 승리를 거두는 기쁨도 맛봤다. 세 사람은 그 ‘역사적인’ 현장을 지킨 ‘국가대표’였다.

○그녀들이 야구를 만났을 때

배경도 각양각색이다. 최고령 선수인 김주현은 10년간 카레이서로 활약한 전력이 있다. ‘그 바닥’에서 그녀를 모르는 사람은 ‘간첩’으로 통했다. 은퇴 후 집 부근에 바를 개업했지만 몸은 언제나 근질거렸다. 2004년 지인을 통해 우연히 여자야구의 존재를 알게 되면서 그 증세가 없어졌다. 남자들과 함께 ‘동네야구’를 하던 저력으로 여자야구 무대를 평정했다.

지금은 당당한 국가대표 4번타자다. 프로야구 한화의 광팬이던 최수정의 출발점은 동네 배팅연습장이었다. 하지만 갈수록 혼자가 아닌 ‘팀’으로 야구를 하고 싶어졌다. 인터넷을 통해 ‘여자야구팀’을 검색해보길 수차례. 결국 2004년 9월에 최초의 여자야구팀 ‘비밀리에’를 찾아내면서 발을 담갔다.

현재 한 IT 회사에서 컨설팅 일을 하는 그녀는 월드컵에서 코치와 통역, 총무까지 도맡으며 ‘살림꾼’ 노릇을 했다. 곽대이는 이들 중 유일한 소프트볼 선수 출신이다. 실업팀인 경북체육회에서 뛰면서 국제대회에도 출전했다. 나이는 막내뻘이지만 월드컵에서 노련미를 한껏 과시한 것도 그 덕분. 한 눈에도 만능 스포츠우먼인 그녀는 현재 스포츠용품을 파는 한 인터넷 쇼핑몰에서 일하는 직장인이다.

○곱절은 더 힘든 ‘여자가 야구하기’

여자야구의 초창기부터 함께한 이들은 당시 힘들었던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예전엔 여의도 한강 둔치에 있는 럭비장이 주된 훈련 장소였다. 딱딱한 바닥에서 치고, 달리고, 슬라이딩을 했다. 최수정은 “허가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관리인에게 들키면 그대로 아웃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럴 때면 무거운 장비를 들고 빈 운동장을 찾아 옮겨 다녀야 했다.

게다가 여자야구는 ‘생업’이 아닌 ‘부업’이 될 수밖에 없다. 주말에만 만날 수 있기에 훈련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첫 국제대회 출전 티켓을 받아들고도 신경 써야 할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곽대이는 “사회인이 된 지금은 일주일이나 시간을 내 국제대회에 나가는 게 쉽지 않다”고 했다. 최수정은 월드컵을 위해 여름휴가와 1년 치 연차를 한꺼번에 써버렸다. 그래도 여자야구의 사상 첫 국제대회에 빠질 수는 없었다.

준비는 착착 진행됐다. 6월에 상비군부터 선발한 뒤 리틀야구대회와 KBO배 대회를 통해 최종 멤버 18명을 가렸다. 함께 훈련한 시간은 2주 정도. 주말 맹훈련은 물론이거니와 평일에도 퇴근 후부터 오후 10시, 11시까지 땀을 흘렸다.

○첫 국제대회의 좌절과 희망

그렇게 찾아간 월드컵이었다. 벅찬 마음으로 내디딘 첫 국제무대는 선수들에게 많은 것을 안겼다. 첫 날부터 충격이었다. 경기를 치른 마쓰야마 구장은 한국의 잠실구장보다 더 좋은 시설을 자랑했다. 곽대이는 “그렇게 좋은 잔디는 난생 처음 밟아봤다”고 했다. 두 번째 충격은 피부에 바로 와닿았다. “일본이 아무리 최강자라고 하지만 우리도 잘 할 수 있다고 내심 자신했었어요. 하지만 막상 붙어보니 배울 점 투성이더군요.” 김주현의 말처럼, 한국의 첫 상대였던 일본은 ‘조직적으로 훈련해온 게 눈에 보이는’ 팀이었다.

25일 첫 승의 감격은 잠시. 곧바로 위기도 찾아왔다. 26일 캐나다전을 앞두고 배팅볼을 던져주던 김주현이 입술에 공을 정통으로 맞았다. 피가 쏟아졌다. 보통은 눈물부터 흐르게 마련이다. 하지만 김주현은 울지 않았다. 최수정은 “선수들이 동요할까봐 그런 것 같다”고 했다. 병원까지 실려갔지만 도핑 테스트 때문에 진통제도 못 맞았다. 응급 처방으로 연고만 바르고 다시 야구장으로 왔다. 그 때 찢어진 김주현의 입술은 여전히 부풀어 있다.

○‘열정’ 하나로 달려온 그라운드

김주현은 “이게 다 체력의 한계 때문”이라고 했다. 훈련 부족은 부상을 부르는 지름길이다. 주말에만 겨우 모여 훈련해온 한국이 체계적인 훈련으로 다져진 일본이나 캐나다를 꺾는 건 쉽지 않았다. 하다못해 한국 선수들은 6일간 매일 경기를 해본 적도 없었다. 김주현만 다친 게 아니다. 손목이 부러지고, 발목이 꺾이고…. 부상자가 속출했다. “무엇보다 달리기가 안됐다. 다른 팀은 프로야구 두산처럼 ‘발야구’를 하더라”는 최수정의 귀띔. 그래도 좌절하지 않았다. 김주현은 “우리에게 주어진 숙제가 많더라. 오히려 목표가 생겼다”고 했다.

처음부터 허투루 시작한 야구는 아니었지만 더 큰 야망을 품게 됐다. “야구장 규격을 리틀용이 아닌 성인용에 맞추고 싶다”는 김주현의 바람에도 이유가 있다. “한계를 정해놓고 하다보면 딱 거기까지만 노력하게 돼요. 우리도 할 수 있는데, 그 가능성을 미리 제한해놓을 필요는 없잖아요.”

남자들보다 열 배는 더 고단하고 피로한 길을 ‘열정’ 하나로 걸어온 이들이다. 요미우리 이승엽의 등번호 ‘25’를 달고 있는 김주현은 “체력이 닿을 때까지 야구를 해서 ‘여자 이승엽’으로 불리고 싶다”는 소망을 갖고 있다.

최수정은 “우리나라에도 번듯한 여자야구 전용 구장이 하나 생기는” 게 꿈. 비교적 젊은 곽대이도 “다음 대회에서는 일본이나 캐나다와의 격차를 꼭 좁히겠다”며 더 가까운 미래를 내다보고 있다. 이 같은 마음이 모여 사상 첫 국제대회 출전이라는 초석이 놓였다. 앞으로 그 위에 점점 더 높은 탑이 쌓여갈 것이다.

야구와 소프트볼 차이

얼핏 비슷해 보이지만 야구와 소프트볼은 엄연히 다른 종목이다. 9회까지 진행되는 야구와 달리 소프트볼은 7회가 끝이다. 구장 규격과 배트 길이도 모두 야구보다 작거나 짧다. 가장 큰 차이점은 투구 방식. 소프트볼은 무조건 공을 아래로부터 던지는 언더핸드 자세여야 한다. 손목이 몸통 측면을 통과해야 하는데, 이를 어기면 부정투구가 된다. 반면 여자야구는 야구처럼 오버핸드, 스리쿼터, 사이드암 등 다양한 투구가 가능하다.

하나 더. 소프트볼에는 ‘리드’가 없다. 주자는 투수가 투구 동작에 들어가면 무조건 베이스에 발을 붙여야 한다. 공이 투수의 손에서 떨어졌을 때만 뛸 수 있다. 한번 교체되면 끝인 야구와 달리 소프트볼은 경기 중 한차례 재출장이 가능하다. 또 지명타자가 수비로 투입될 수 있는 것도 야구와 다르다.

배영은 기자 yeb@donga.com

[관련기사]‘야구쟁이’ 부회장님은 든든한 후원자

[관련기사]“베이징보다 하루 먼저 여전사도 金 땄죠”

[관련기사]‘금녀의 담장’ 너머로 홈런…그라운드 여걸 삼총사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