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초 남기고… 1초 남기고… 태권남매 ‘금빛 합창’

  • 입력 2008년 8월 22일 03시 01분


안면 강타21일 베이징과학기술대 체육관에서 열린 베이징 올림픽 태권도 여자 57kg급 결승전. 한국의 임수정(위)이 터키의 아지제 탄리쿨루의 얼굴을 발로 가격하고 있다. 베이징=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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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베이징과학기술대 체육관에서 열린 베이징 올림픽 태권도 여자 57kg급 결승전. 한국의 임수정(위)이 터키의 아지제 탄리쿨루의 얼굴을 발로 가격하고 있다. 베이징=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21일 중국 베이징은 ‘한국 태권도의 날’이었다. 한국 태권도 국가대표팀 남자 68kg급 손태진(20·삼성에스원)과 여자 57kg급 임수정(22·경희대)은 베이징과학기술대 체육관에서 열린 베이징 올림픽 태권도에서 잇따라 금메달 2개를 따냈다. 두 선수는 처음 출전한 올림픽에서 멋진 ‘금빛 발차기’를 작렬시켰다. 이로써 한국은 태권도가 올림픽 정식종목이 된 2000 시드니 올림픽 때 금메달 3개, 2004 아테네 대회 금메달 2개에 이어 베이징에서 6, 7번째 값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태권소녀와 태권소년의 꿈도 그렇게 이루어졌다.》

■ 여자 57kg급 임수정

임수정은 평소 말수가 적다. 얌전하다. 경희대 여홍철(스포츠지도학) 교수는 “수정이는 강의를 들을 때도 있는지 없는지 모를 정도”라며 “우스갯소리를 해도 살짝 미소만 지을 정도로 수줍음이 많다”고 말했다.

하지만 임수정은 태권도복을 입으면 달라진다. 가로세로 12m 크기의 정사각형 경기장에 서면 투사로 바뀐다. 서양 선수들에게도 밀리지 않을 정도로 거침없는 하이킥을 날린다.

○ 골목대장, 태권소녀 되다

임수정은 어린 시절 골목대장이었다. 운동을 좋아했다. 남자 못지않게 잘 뛰는 아이였다.

경기 부천시 동곡초교 2학년 때 우연히 동네 체육관에서 태권도를 처음 접했다. 지르고 차는 동작이 재미있었다. 부인중학교에 입학해 태권도부에 들어갔다. 소년체전을 2연패하면서 기대주로 인정받았다.

서울체고 1학년 때인 2002 부산 아시아경기 51kg급에서 우승하며 깜짝 스타가 됐다. 2006 도하 아시아경기 은메달에 이어 2007 방콕 유니버시아드와 맨체스터 올림픽 세계예선에서 우승하며 자신감을 얻었다.


▲ 영상취재 : 베이징 = 신세기 기자

○ 태권소녀, 금빛 메달을 쥐다

임수정은 첫 올림픽 출전인 베이징 올림픽 태권도 여자 57kg급에서 ‘태권소녀’의 힘을 보여 줬다.

임수정은 예선부터 강했다. 16강전에서 올해 아시아선수권 우승자인

쑤리원(대만)에게 결정적인 발차기를 성공시키며 1-0으로 이겼다. 4강에서도 지난해 9월 맨체스터에서 열린 올림픽 세계예선 결승에서 이겼던 베로니카 칼라브레세(이탈리아)를 5-1로 다시 꺾었다.

드디어 결승전. 임수정의 상대는 금메달 후보였던 다이애나 로페즈(미국·동메달)를 8강전에서 꺾은 아지제 탄리쿨루(터키). 임수정은 1라운드에 경고를 2회 받아 마이너스 점수를 받았지만 2라운드 중반 돌려차기를 성공시키며 0-0 동점을 만들었다.

3라운드 20초를 남긴 상황. 탄리쿨루가 공격을 하러 들어오자 임수정은 회심의 뒤돌려차기를 상대 몸통에 꽂아 넣었다. 1-0 승리. 종료 버저가 울리는 순간 임수정은 환호했다.

임수정은 “진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누구든 이길 자신이 있었다”며 “할머니를 간호하느라 베이징에 오지 못한 엄마 생각이 난다”고 말했다.

베이징=황태훈 기자 beetlez@donga.com


▲ 영상취재 : 사진=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 남자 68kg급 손태진

누가 툭 건드려도 쓰러질 정도였던 아이는 이모부의 손에 이끌려 태권도장을 찾았다. 그리고 스무 살이 되던 해 세계에서 가장 발차기를 잘하는 청년이 됐다.

베이징 올림픽 준결승에서 지난해 세계선수권 챔피언 쑹위치(대만)를 꺾은 손태진 앞에는 강적이 기다리고 있었다. 미국이 자랑하는 ‘로페즈 가문’의 셋째 마크였다. 로페즈 가족은 대표팀 코치인 맏형 진(34)을 비롯해 남자 80kg급 스티븐(30), 마크(26), 여자 57kg급 다이애나(24) 등 3남 1녀가 모두 베이징에 왔다.

손태진은 마크와 만난 적이 있다.

지난해 9월 영국 맨체스터에서 열린 올림픽 예선. 손태진은 16강전에서 상대에게 깔려 왼쪽 팔꿈치가 빠졌다.

고통은 끔찍했지만 경기를 포기할 순 없었다. 의료진의 도움으로 간신히 팔을 맞춘 뒤 결국 이겼다. 하지만 4강 진출은 힘들어 보였다. 상대는 2005년 세계선수권 우승자 마크였다.

대표팀 김세혁 감독의 말처럼 ‘정신력이 대단히 강한’ 손태진은 신음 대신 기합을 질렀다. 마크가 집요하게 왼팔을 공격했지만 연장전 종료 4초를 남기고 오른발 몸통차기를 성공시킨 건 손태진이었다. 그는 결국 준결승, 결승에서도 승리했다. ‘맨체스터의 기적’이었다. 그리고 2008년 베이징에서도 2-2로 맞선 3회 종료 직전 오른발 돌려차기를 성공시킨 건 다시 손태진이었다.

손태진은 “마크가 꿈에 나올 정도로 경기를 많이 봤기 때문에 받아치기 작전으로 나갔다. 감독님이 마지막에 차라는 사인을 냈는데 그게 먹혔다”고 말했다.

경북체고를 졸업한 손태진은 지난해 태극마크를 달았다. 최고가 됐다고 생각했지만 세계선수권에서 첫 경기에 탈락했다. 불운은 이어졌다. 단국대 입학 후 삼성에스원에 입단했지만 실업선수가 대학선수로 뛸 수 없다는 규정 때문에 눈물을 머금고 자퇴서를 써야 했다.

방황하던 손태진을 제자리로 돌려놓은 건 올림픽 금메달이라는 목표였다. “공부가 하고 싶어 태권도를 그만둘까 고민도 했다”는 손태진은 규정이 바뀐 덕분에 2학기에 복학한다.

올림픽 금메달의 싹은 맨체스터의 기적에서 움텄다. 그리고 베이징에서 화려한 꽃을 피웠다.

베이징=이승건 기자 w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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