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년의 국가대표 U트리오’ 강현숙-정미라-박찬숙씨

  • 입력 2007년 3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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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여자농구 제2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주역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1979년 세계선수권에서는 여자대표팀 역대 최강의 ‘삼각편대’를 형성해 한국을 준우승에 올려놓은 주인공들이다. 왼쪽부터 강현숙 한국여자농구연맹(WKBL) 경기감독관, 정미라 MBC 해설위원, 박찬숙 WKBL 경기위원. 신원건  기자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여자농구 제2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주역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1979년 세계선수권에서는 여자대표팀 역대 최강의 ‘삼각편대’를 형성해 한국을 준우승에 올려놓은 주인공들이다. 왼쪽부터 강현숙 한국여자농구연맹(WKBL) 경기감독관, 정미라 MBC 해설위원, 박찬숙 WKBL 경기위원. 신원건 기자
○ 1979년 세계선수권 준우승 주역

100년 가까운 국내 여자 농구 역사에서 ‘1979년’은 기념비적인 해다. 그해 4월 제8회 세계선수권대회가 막 완공된 서울 잠실체육관에서 열렸고 한국여자농구대표팀은 인파로 터져 나갈 듯한 그곳에서 세계 최강 미국을 94-82로 꺾었다.

포인트가드이자 주장 강현숙이 컴퓨터처럼 정확하게 볼을 날렸고 167cm 단신 슈팅 가드인 ‘깐돌이’ 정미라가 외곽에서 중장거리 슛으로 상대 팀을 공략했다. 중앙에는 당대 아시아 최고의 센터 박찬숙이 버티고 있었다.

한국은 5승 1패로 미국과 승패는 같았지만 골 득실에서 뒤져 준우승했다. 신장과 체격에서 서구 팀들에 크게 뒤졌던 점을 감안하면 놀라운 성적이었다. 최고 센터 박신자가 이끈 1960년대 여자 농구의 황금기에 이은 제2의 황금기가 온 것이었다.

그로부터 28년이 지난 지금 그때의 주역 3명은 여전히 여자 농구계를 지키며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강현숙(52)은 대한농구협회 이사 겸 한국여자농구연맹(WKBL) 경기감독관, 정미라(51)는 MBC 해설위원, 박찬숙(48)은 대한농구협회 이사 겸 WKBL 경기위원(TC).

7일 여자프로농구 신한은행과 금호생명의 경기를 앞두고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함께 자리한 이들은 가족 같은 살가운 분위기에서 얘기꽃을 피웠다. 이들과 세대가 다른 기자(36)에겐 흑백사진 속에만 존재했던 ‘역사’가 컬러 영화처럼 생생하게 되살아나는 느낌이었다.

○ 남성 팬 몰려 뚫고 나가는 데 애먹기도

“그땐 여자 농구 인기가 정말 대단했어요. 우리가 바로 ‘오빠 부대, 누나 부대’의 원조였죠. 경기 끝나면 우리 보려고 남성 팬들이 출입구 앞에 진을 쳐서 뚫고 나가는 데 애를 먹었어요.”(정) “당시엔 선수들이 참 예뻤어요, 실력도 좋았고. 실업팀도 12, 13개나 될 만큼 선수 층도 두꺼웠죠.”(강)

과연 세 사람 모두 아직도 여전한 미모를 자랑했다. 이어 서로에 대한 칭찬이 이어졌다.

“미라는 키가 작았지만 자기 능력의 120%를 발휘했어요. 얼마나 빠르고 체력이 좋았던지….”(강) “제가 무명 시절을 오래 거쳤다면 현숙 언니나 찬숙이는 선수 시절 내내 스타였어요.”(정) “두 언니들이 없었다면 제가 있었겠어요?”(박)

강 이사가 국가대표팀에서 1980년 가장 먼저 은퇴했고 정 위원이 1982년, 박 경기위원이 1984년 미국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딴 뒤 은퇴했다.

세월이 흘러 이들 모두 결혼해 자식들도 장성했지만 농구에 대한 열정은 변치 않았다. 정 위원의 말대로 “농구와 결혼”했고 “농구장이 놀이터”인 셈이다.

○ 2부 리그 도입 필요… 여자감독도 나와야

대화는 ‘어떻게 침체된 여자 농구를 되살릴까’로 옮겨갔다. 여자프로농구 6개팀에 평균 관중이 1000여 명인 게 요즘 여자 농구의 현실.

“일단 팀이 너무 적어요. 스타플레이어가 계속 나와야 하는데 선수 층은 얇아지고만 있고….”(강) “구단의 2진급이 실전 경험은 쌓지도 못한 채 조기 은퇴하는 것도 문제예요. 2부 리그 같은 하부 리그 시스템이 필요해요.”(정) “프로 구단에 여자 감독이 없는 것도 문제죠. 남자가 낫다고 하지만 언제 우리한테 한번 맡겨나 봤느냐고요. 남자들의 기득권 때문에 우리가 몸소 체험한 노하우들이 사장되고 있는 거죠.”(박)

농구 얘기라면 밤도 새울 분위기다. 양해를 구하고 사진 촬영. 농구공을 곁들인 포즈를 부탁하자 정 위원은 “미리 얘기했으면 운동복을 입고 경기하는 모습을 보여 줬을 텐데”라고 아쉬워했다. 박 경기위원은 어린애 같은 얼굴로 껑충껑충 코트를 뛰었고 강 이사는 주장답게 무게를 잡았다.

김성규 기자 kim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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