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딩크는 도박사 … 아드보는 컴퓨터

  • 입력 2006년 6월 30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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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주 기자
김동주 기자
홍명보 한국축구대표팀 코치가 독일 월드컵 16강 탈락의 아쉬움과 한국 축구의 장래에 대해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홍 코치(가운데)가 토고와의 조별리그 1차전에서 2-1로 역전승한 뒤 딕 아드보카트 감독과 포옹하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홍명보 한국축구대표팀 코치가 독일 월드컵 16강 탈락의 아쉬움과 한국 축구의 장래에 대해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홍 코치(가운데)가 토고와의 조별리그 1차전에서 2-1로 역전승한 뒤 딕 아드보카트 감독과 포옹하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영원한 리베로’ 홍명보(37) 코치는 “허탈하다”고 했다.

그는 선수로 네 차례나 월드컵에 참가했고 2006 독일 월드컵에선 코치로서 감독을 보좌하고 후배 선수들을 이끌었다. 그에게서 ‘월드컵’ 얘기를 듣고 싶었다.

심정…아쉽고 허탈하고 멍해요

29일 오후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의 한 식당에서 만난 홍 코치는 “목표했던 16강에 들지 못해 새벽잠 설치며 응원해 준 국민께 죄송하다”며 “지도자로서 처음 월드컵에 출전하며 준비도 많이 했는데 많이 아쉽고 머릿속이 텅 빈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9개월 동안의 코치 생활은 정말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회고했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선발 선수를 정하는 작업이었다고 한다.

“경기 전날 딕 아드보카트 감독과 코칭스태프가 회의를 합니다. 선수들의 장단점, 상대의 특색, 키, 체격, 기술 등 모든 것을 점검하며 선발로 넣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토론을 벌이죠. 처음에는 그런 문화가 이상했지만 곧 익숙해졌고 저도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놓았죠. 토고전 전날에는 아침 먹고 회의를 시작해 점심때까지 격론을 3, 4시간 벌였어요.”

선수…아드보 안정환 선발 설득해 조커로

그날 토론의 하이라이트는 안정환과 조재진 중 누구를 선발로 내보낼 것인가였다.

“감독은 안정환을 선발로 내보내려 했어요. 하지만 코칭스태프는 모두 조재진을 고집했어요. 정환이를 선발로 냈다가 수비수들에게 막히면 대안이 없었거든요. 정환이는 후반 들어 수비진의 체력이 떨어졌을 때 투입하는 게 가장 효과적이라 생각했고 결국 감독이 설득당했죠.”

가장 기뻤을 때도 ‘토고전 승리를 거뒀을 때’라고.

“전반에는 선수들이 너무 긴장을 많이 했어요. 큰일 앞두고 다리가 안 떨어질 때가 있잖아요. 우리 선수들이 그랬어요. 감독이 하프타임에 ‘아직 45분이 남았다. 기회는 많다’며 선수들을 독려하더라고요. 다행히 후반에는 선수들이 제 감각을 찾아 갔습니다.”

프랑스전…초반 실점땐 5:0 악몽 떠올라

어렵게 토고에 역전승을 거두고 프랑스전에서도 비긴 것은 무슨 힘일까.

홍 코치는 “역시 경험”이라고 했다.

“(이)천수, (안)정환이처럼 2002 한일 월드컵의 경험이 중요했어요. (박)지성이도 유럽에서 뛰는 선수고 경험이 많으니까 잘 뛰어 줬죠.”

그는 프랑스전 전반 초반에 실점을 하자 정말 불안했다고 털어놓았다.

“0-5로 지던 때가 자꾸 떠올랐어요. 그런데 선수들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집중해서 동점을 만들어 내더라고요. 그만큼 한국 축구가 발전한 거죠.”

홍 코치는 대뜸 “프랑스와 한국의 차이가 무엇이냐”고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답했다.

“결국 개인 실력 차이죠. 체력? 오히려 체력은 한국이 뛰어나요. 프랑스는 축구를 할 수 있는 기술적인 능력이 뛰어나니까 한국이 힘든 거예요. 스페인-프랑스전을 보세요. 프랑스는 기술이 뛰어나니까 결국 골 넣을 기회가 많이 생긴 겁니다.”

그는 “아드보카트 감독이 원한 선수도 결국 ‘체력이 뛰어난 선수’가 아니라 축구를 제대로 할 줄 아는 ‘풋볼 플레이어’였다”고 했다.

아드보와 나…팀 운영법 배웠다

스위스전은 비록 패했지만 한국팀의 경기 내용은 가장 좋았다. 하지만 패인 분석은 냉정했다.

“반드시 이겨야 했기 때문에 선수들이 더 적극적이었어요. 그런데 나중에 비디오를 보니 세트플레이 상황에서 집중력이 떨어지고 스위스 선수를 놓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반면 스위스는 참 지능적인 경기를 했어요. 트란퀼로 바르네타가 미드필드를 휘저으면 필리프 데겐이 올라와 오버래핑을 하는데 보지 않고도 손발이 척척 맞으니….”

홍 코치는 아드보카트 감독에게 ‘팀을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를 배웠다고 했다.

그는 2002년 주장으로서 거스 히딩크 감독을 경험했다. 두 감독은 무엇이 다를까.

“히딩크 감독은 ‘냄새’를 잘 맡아요. 선수 눈빛을 보고 ‘왠지 오늘 사고 칠 것 같다’고 느껴지면 들여보내죠. 반면 아드보카트 감독은 경험을 좀 더 중시해요. 상대를 철두철미하게 파악하고 나가는 스타일이죠. 히딩크 감독이 도박사처럼 승부를 즐긴다면 아드보카트 감독은 좀 더 보수적이라고 할까요.”

그는 한국 축구의 발전을 위해 ‘국내리그 관중을 늘리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고 했다. 차분하던 그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경기장에 나가 텅 빈 관중석을 보면 정말 뛸 맛이 안 나요. 경기 내용도 좋아질 수 없죠. 관중은 구단이 모아야 합니다. 마케팅을 하건 직접 시민들을 만나 세일즈를 하건, 어떻게든 끌어 모아야죠. 감독이 팀 성적을 책임진다면 관중 동원은 구단과 구단주가 책임져야 해요.”

계획을 묻자, 그는 자신이 “아직 어리다”는 것을 강조했다.

“아직 젊으니까 다양한 경험을 하고 싶어요. 어떤 위치에 오르건 결국 ‘능력’이 중요한데 지도자 경험은 그래서 중요하죠.”

계획…2010년 월드컵 감독? 아무나 합니까

‘2010 남아공 월드컵 때는 대표팀 감독을 맡는다던데’라고 얘기를 꺼내자 그는 손사래를 쳤다.

“에이, 그건 아니에요. 월드컵 감독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닙니다. 그리고 누가 한다고 미리 정해 놓을 수도 없지요. 그에 걸맞은 실력이 있어야 합니다”라고 했다.

홍 코치는 다음 달 3일부터 4주 동안 ‘1급 지도자 과정’ 교육을 받으러 경기 파주시 국가대표팀트레이닝센터(NFC)에 들어간다.

정재윤 기자 jaeyu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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