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사자기]“그땐 우리가 날렸어” 1회 출전선수 한자리에

  • 입력 2006년 6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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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사자기 60주년 행사에 참석한 국내 야구계 최고 원로들. 왼쪽부터 문용운, 어우홍, 황기대, 황우겸, 김양중, 정춘학, 손종식 옹. 3회 대회 참가자인 어우홍 옹을 제외하고는 모두 1947년에 열린 황금사자기 1회 대회 참가자들이다. 이날 행사에 늦게 참석한 1회 대회 참가자 하명호 옹은 사진에서 빠져 있다. 강병기 기자
황금사자기 60주년 행사에 참석한 국내 야구계 최고 원로들. 왼쪽부터 문용운, 어우홍, 황기대, 황우겸, 김양중, 정춘학, 손종식 옹. 3회 대회 참가자인 어우홍 옹을 제외하고는 모두 1947년에 열린 황금사자기 1회 대회 참가자들이다. 이날 행사에 늦게 참석한 1회 대회 참가자 하명호 옹은 사진에서 빠져 있다. 강병기 기자
힘차게 야구방망이를 휘두르던 손에는 검버섯이 여기저기 피었다. 머리엔 백설(白雪)이 앉은 지 오래다. 하지만 ‘그때 그 시절’에 대한 기억이 살아났기 때문일까. 주름이 가득한 얼굴엔 소년 같은 미소가 번졌다.

동아일보사와 대한야구협회 공동 주최인 황금사자기 고교야구대회 60주년을 맞아 개막 전날인 28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미디어센터 21층에서 열린 ‘황금사자기의 밤’ 행사에는 귀한 손님들이 자리를 함께했다. 1947년 동대문야구장에서 열렸던 황금사자기 초대 대회 출전자 7명. 한국 야구계의 원로 중의 원로다.

당시 동산중학교 선수였던 황우겸(77) 옹은 60대 후반에 KBS 야구중계 아나운서를 맡았던 한국 야구의 산증인. 황 옹은 “선수 출신으로는 국내에서 유일한 야구 아나운서”라고 자신을 소개한 뒤 “당시 야구장 관중석에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아마추어 야구대회가 인기였다. 그 인기가 계속 이어져야 한국 야구가 발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초대 대회부터 1949년 3회 대회까지는 참가학교가 모두 중학교였다. 고등부가 없고 중등부가 6년제였기 때문. 초대 대회에선 경남중, 경기중, 광주사범, 동산중, 군산중, 대전중, 능인중의 8개 학교 총 65명의 선수가 참가해 결승에서 경남중이 경기중을 9-3으로 이기고 초대 우승팀이 됐다.

강산이 6번은 변했을 60년의 세월로 인해 당시의 기억은 어렴풋하다.

당시 능인중 포수이자 1번 타자였던 정춘학(78) 옹은 “다른 것은 잘 기억이 안 나는데 내가 친 타구가 포수 뒤로 넘어가 단상 위에 놓여 있던 우승컵을 깨뜨렸던 기억이 난다”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능인중은 1회전에서 경기중에 0-2로 패해 탈락했다. 정 옹은 “예전에는 관중이 모두 흰옷 차림이어서 수비할 때 공이 뜨면 흰 바탕 속으로 사라져 받기가 굉장히 곤란했다”고 회고하기도.

인천 동산중 1루수였던 하명호(76) 옹은 “이렇게 살아서 후배들을 보니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감개무량하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 참가한 7명이 1회 대회 참가 선수 65명 중 생존자의 전부라고 하 옹은 말했다.

1회 대회 참가자는 아니지만 3회 대회 때 동래중의 준우승을 이끌며 대회 최우수선수로 뽑혔고 고교, 대학, 실업, 프로 팀에서 수십 년간 감독을 맡았던 어우홍(76) 옹은 “한국이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4강에 올랐을 때 내 할 일은 다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아마추어 야구가 더 사랑받아야 한국 야구가 발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성규 기자 kim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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