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월드컵]베어벡 신임감독에 바란다

  • 입력 2006년 6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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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이 바뀌면 팀 컬러가 확 바뀐다. 최고경영자(CEO)가 새로 오면 그 조직은 탈바꿈한다. 축구 감독은 CEO다. 축구기술자가 아니다. 그만큼 감독의 축구철학이 중요하다. 그의 축구관이 무엇이냐에 따라 팀 색깔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거스 히딩크 감독의 축구관은 한마디로 ‘압박’과 ‘속도’다. 이를 통해 그는 네덜란드식 토털 사커를 추구했다. 게임을 지배하고자 했다. 당연히 ‘강철체력’을 강조했다. 딕 아드보카트 감독의 축구관도 히딩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차이라면 좀 더 ‘공격적’이라는 것. 그는 “난 공격 축구를 선호한다”고 당당히 말했다. 아예 공격적이라는 이유로 포백수비 시스템까지 들고 나왔다.

핌 베어벡 신임 감독은 28일 “한국적인 축구에 ‘네덜란드식 압박과 열정적인 축구’를 접목하겠다”고 밝혔다. 한마디로 히딩크, 아드보카트 감독의 ‘토털 사커’를 이어 가겠다는 것이다.

그렇다. 히딩크나 아드보카트 감독은 코앞에 닥친 시험을 앞두고, 부랴부랴 모셔 온 ‘족집게 강사’였다. 그들은 예상문제를 내주기에도 바빴다. 도무지 기초부터 차근차근 가르칠 시간이 없었다. 한국선수들은 ‘압박’과 ‘속도’가 정답이라니까 그냥 달달 외워 쓰기에 바빴다. 결국 이번 월드컵에서 여기저기 탈이 났다. 설익은 밥을 먹고 체한 것이다.

베어벡 감독은 가정교사다. 차분하게 원리부터 가르칠 시간이 충분하다. 압박도 중요하지만 왜 압박이 필요한지, 그리고 압박한 후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선수들에게 익히도록 해야 한다. 속도도 중요하지만 몸이 아니라 ‘생각의 속도’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느끼도록 해야 한다. 투박한 한국축구를 세련되게 만들어야 한다. 젊은 선수들을 발굴해 한국축구의 저변을 넓혀야 한다. 이미 그는 한국축구를 환히 꿰뚫고 있다. 선수 파악에 시간을 쏟을 필요도 없다. 그만큼 시간을 벌었다. 당장 ‘팀 빌딩(Team Building)’에 들어갈 수 있다. 팀 빌딩은 감독의 전권이다. 팀 빌딩이라는 첫 단추를 잘만 끼우면 반은 성공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2005∼2006 프로농구에서 우승한 안준호 삼성 감독의 농구철학은 ‘높이와 스피드’다. 이를 위해 그는 지난해 중국리그 리바운드 왕 오예데지와 지난 시즌 한국리그 득점왕 존슨을 확보했다. 서장훈-오예데지-존슨으로 이어지는 ‘꿈의 트라이앵글 돛대’가 이뤄진 것. 여기에 스피드를 강화하기 위해 포인트 가드 주희정을 내보내고 이정석을 데려왔고, 국내 최고의 슈팅가드 강혁에 장신 식스맨 이규섭까지 가세했다. 사실상 이것으로 거의 우승을 이뤘다고 볼 수 있다.

감독이 줏대 없이 왔다 갔다 하면 팀이 망가진다. 전임 움베르투 코엘류나 요하네스 본프레러 감독이 그 좋은 예다. 그들은 비전 제시에 실패했다. 색깔이 없었다. 도무지 축구관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그저 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빵인 ‘안전 빵’ 축구에 매달렸을 뿐이다.

감독의 축구관은 선수, 팬과 공유해야 한다. 그러려면 허황돼서는 안 된다. 간단명료해야 한다. ‘인화 단결’식의 교훈이어서도 안 된다. 더욱 구체적이어야 한다. 베어벡 감독의 ‘토털 축구 계승’은 우리도 안다. 하지만 그 구체화 방법에서 ‘한국축구와 네덜란드축구의 접목’은 너무 막연하다. 차라리 ‘세련된 압박’이나 ‘톱니바퀴 같은 포백’이라면 가슴에 와 닿는다.

축구는 팀 경기다. 팀이란 개인 능력의 합계가 아니다. 개개인의 능력이 합해져 더 큰 능력을 창출하는 것이다. 여기에 감독은 엄청난 역할을 한다. 즉 ‘팀=(선수1+1+1+…)×N(감독)+α(팬)’인 것이다. 베어벡, 우린 당신을 믿는다. 당신 어깨에 한국축구의 미래가 달려 있다.

김화성 스포츠전문기자 mar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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