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오디세이]오늘은 오늘 고민만

  • 입력 2004년 8월 25일 18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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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에선 취학 전 어린아이에게 글이나 산수를 가르치지 않는다. 어린아이에게 지나치게 부담주기 싫어서다.

학교에 들어가서도 배우는 과목은 그다지 많지 않다. 기초과목에 한한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를 둔 한 40대 주부는 “아이가 학교 성적을 올리는 것보다는 창의성 키우기를 원한다”고 말한다. 물론 과외수업 같은 것은 아예 생각하지도 않는다. 어릴 때부터 온갖 과외를 시키는 한국과는 딴판이다.

또 한 가지 우리와 다른 것은 외식 습관이다. 한국 식당에선 손님이 들어서면 우선 “몇 분이죠?” 하고 묻는다. 혼자 식당에 들어가면 눈총을 주는 바람에 얼마간의 용기가 필요하다. 불고기 1인분은 아예 팔지도 않는 곳이 흔하다. 이러다 보니 일이 있건 없건 여럿이 어울려 식당을 찾게 된다.

그러나 그리스 식당에선 전혀 문제될 게 없다. 그들은 식사하기 위해 억지로 짝을 짓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한다. 아니 불편하게 여긴다. 여행 중에 혼자 식사하는 그리스인을 보는 것은 흔한 일이다.

이런 식사습관은 자신의 일에 충실할 뿐 남의 일에 참견하지 않는 그들의 성품과 닮았다. 그렇다 보니 서로 다투는 일도 적다. 물론 이런 행태를 개인주의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개인의 자유의지를 존중하기에 생겨난 결과라 할 수 있다. 탓할 일이 아니다.

그리스인들은 오늘 일만 걱정한다. 내일 일까지 가불해가면서 미리 고민하지 않는다. 머릿속에 여러 개의 칸막이를 만들어 놓고 그때그때 문제가 되는 것만 꺼내서 적절한 해결책을 찾는다. 이 같은 ‘칸막이 사고방식’은 다양성과 합리성을 기르는데 매우 유용하다. 그들이 일찍부터 논리학에 뛰어난 성과를 이룬 것도 이 덕분이다.

한국인들은 문제가 생기면 해당 사안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옛날 묵은 것들까지 들춰내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든다. 이런 ‘통짜 사고’는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더 혼란스럽게 만들기 일쑤다.

그리스인들은 자신의 자유 의지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만큼 다른 사람의 자유도 존중한다. 다양성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다양성은 21세기의 생존비법이다. 이런 면에서 ‘칸막이 사고’가 ‘통짜 사고’보다 훨씬 유연하고 합리적이다.

권삼윤 역사여행가 tumid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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