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금메달을 잃어버린 이바노프

  • 입력 2000년 9월 25일 14시 53분


올림픽 금메달은 감히 돈으로 환산할 수 없다. 올림픽 금메달은 문화적 가치라는 차원에서 보호되고 기록되기 때문이다.

올림픽 금메달은 그 분야에서 50억 인구 가운데 최고임을 증명하는 일종의 ‘마패’다. 이제 그 ‘황금마패’에 얽힌 100년 세월의 비화를 파헤쳐 보자.

60년 로마올림픽 복싱 라이트헤비급 금메달리스트 케시어스 클레이는 오하이오 강에 금메달을 집어던졌다. 표면적으로는 흑인 차별에 대한 항의였다. 그러나 내심으로는 ‘발에 걸리는 것이 금메달리스트’라고 올림픽 우승을 폄하는 미국 사회를 향한 반발 시위였던 셈이다.

올림픽 금메달을 강물에 던졌던 케시어스 클레이는 프로로 전향해서 복싱 사상 가장 위대한 챔피언이 된다. 이제 케시어스 클레이와 나중에 개명한 무하마드 알리라는 이름은 프로복싱사에 ‘신화’로 남게 되었다. 알리는 금메달을 일부러 강물에 버린 경우지만 본의 아니게 금메달을 잃어버린 선수들도 있다.

소련의 비아체스라프 이바노프 선수는 56년 멜버른올림픽 조정 싱글스컬에서 금메달을 땄다. 기쁨에 넘친 그는 금메달을 하늘 높이 던져 올렸다. 그러나 그 소중한 금메달이 그만 조정 경기가 열렸던 웬도리 호수에 빠지고 말았다.

당황한 이바노프는 몇 시간 동안 물 속에 들어가 헤맸으나 찾지 못했다. 잠수부까지 동원했으나 허사였고 그 메달은 4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호수 바닥에서 잠자고 있다. 올림픽이 세계의 도시를 돌고 돌아 호주의 시드니로 돌아왔건만, 그의 금메달은 아직까지도 빛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바노프는 60년 로마, 64년 도쿄올림픽까지 싱글스컬을 3연패해서 2개의 금메달을 더 따냈다. 물론 다음부터는 호수 위에서 금메달을 던지는 장난을 절대 하지 않았다.

88서울올림픽 때도 금메달을 잃어버린 선수가 있다. 조정 쿼 드러블 스컬에서 금메달을 딴 이탈리아팀 선수들은 시상식 직후 금메달을 목에 건 채 미사리 조정경기장 물 속으로 다이빙을 했다. 그런데 다비드 디자노 선수의 금메달이 물 속에 빠져버렸다.

곧바로 안전담당 스킨스쿠버 요원이 투입돼 호수 바닥을 뒤졌다. 다행스럽게도 이번엔 금메달을 찾을 수 있었다. 금메달은 깊이 15cm의 진흙 속에 묻혀 있었던 것이다. 비아체스라프가 금메달을 분실한 뒤 더욱 분발한 것과는 달리 다비드 디자노는 이후 벌어진 올림픽에서 한 개의 금메달도 따내지 못했다.

올림픽 역사상 가장 짧은 시간 금메달의 쾌감을 맛 본 선수는 몇해 전 심장병으로 사망한 고(故) 장은경 씨다.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 유도 라이트급에 출전한 장은경 선수는 결승전에서 쿠바의 헥토르 로드리게즈와 만났다. 처음에는 로드리게즈가 유효 3개를 빼앗으며 앞서 나갔다. 그러나 지구력이 강한 장은경은 맹렬하게 반격해 유효 2개에 버금가는 점수를 땄고 로드리게즈보다 더 공격적이었다.

이제 심판의 판정만 남았다. 주심은 장은경의 승리를 선언했고, 유도장은 올림픽 사상 첫 금메달을 딴 코리아의 함성으로 뒤덮였다. 그러나 3분이나 지났을까? 주심은 판정을 번복했다. 로드리게즈가 이겼는데 잘못 판정했다는 것이다.

어쨌든 장은경은 3분 동안 올림픽 금메달, 그것도 건국 이후 첫 금메달리스트의 황홀감을 맛보았다.

기영노/스포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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