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호 활약상-내년과제]『찬호 보는 낙에 산다』

  • 입력 1997년 10월 2일 19시 55분


온 나라가 그의 움직임에 열광한다. 때로는 격렬한 환호로, 때로는 안타까운 탄식으로…. 표출되는 양식은 다르지만 그 근원에 자리한 것은 그에 대한 깊은 애정이다. 박찬호(24·LA다저스). 무명의 대학선수로 태평양을 건너 메이저리그에서 손꼽히는 투수로 대성한 그의 활약상은 이제 우리사회에 지울 수 없는 신드롬을 만들어냈다. 박찬호가 등판하는 날 온 국민이 TV앞에 앉아 성원을 보내는 것이나 그에 대한 이야기로 찌든 일상에 위안을 삼는 것은 더이상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박찬호의 경기를 관전하는 여행상품이 여행사의 인기품목으로 떠올랐고 사회지도층인사 자제들의 병역면제 시비속에서도 오히려 그의 병역을 면제해주자는 여론이 PC통신을 가득 메웠다. 한국사회는 박찬호에게 왜 그토록 열광하는가. 사회학자들은 가장 큰 이유로 그의 입지전적인 성장과정을 든다. 동양인으로서 이중삼중의 핸디캡을 딛고 세계정상의 경쟁력을 획득하기까지의 인생역정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흡인력을 가진다는 설명이다. 연세대 사회학과 유석춘교수는 『「박찬호 현상」의 저변에는 혈혈단신으로 역경을 뚫고 최고의 자리에 오른 스타에 대한 동경내지 존경의 심리가 깔려있다』고 진단했다. 실제로 박찬호의 활약은 자라나는 세대에게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었다. 그에 대한 평가에 인색한 사람들조차도 박찬호가 미국사회에 뿌리깊게 남아있는 인종적 편견을 깨고 한국인의 위상을 높이는 민간외교관으로서 엄청난 역할을 해냈음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론 박찬호 붐 과열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도 일고 있다. 사회전체가 한사람에게 매달려 대리만족을 구하는 자세는 박찬호나 우리 모두를 위해 득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어쨌든 내년 시즌에도 우리는 그의 선전을 기원하며 새벽잠을 설칠 것이 분명하다. 그는 이제 우리를 하나로 묶는 구심점으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이 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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