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스포츠명암/마라톤]황영조→이봉주 『간판 교체』

  • 입력 1996년 12월 15일 20시 14분


「張桓壽기자」 지난 3월24일 경주에서 열린 96동아국제마라톤대회는 한국 마라톤사에 한 획을 그은 기념비적 대회였다. 한국 마라톤은 이날 이봉주(26·코오롱)의 화려한 비상과 김이용(22·건국대)의 스타탄생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지만 「몬주익의 영웅」 황영조(27·코오롱)가 추락하는 안타까운 장면도 지켜봐야만 했다. 대회직후 육상계는 황영조를 「올림픽 예비후보」로 발탁하는 편법을 쓰려다 결과적으로 그의 은퇴만 앞당기고 말았다. 그러나 이 대회에서 올림픽대표1위로 선발된 이봉주는 애틀랜타의 폭염을 뚫고 은메달을 따내 꺼져가던 한국 마라톤의 등불에 환한 빛을 다시 비췄다. 이봉주는 93호놀룰루국제대회와 95동아국제대회에서 우승했지만 그동안 황영조의 그늘에 가려 만년 2인자의 설움을 곱씹었던 마라토너. 96동아국제마라톤에서는 마르틴 피스(스페인)에게 불과 1초차, 8월4일 애틀랜타올림픽에서는 투과니(남아공)에게 3초차로 분루를 삼켜 여전히 「2인자 징크스」를 털어내지 못할 것만 같았다. 그러나 이봉주는 지난 1일 열린 후쿠오카국제마라톤에서 불같은 막판 스퍼트로 알베르토 후스다도(스페인)를 2초차로 제치고 우승을 차지,「포스트황영조」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고 있다. 4년전 스페인의 몬주익 언덕을 박차고 오르던 그 패기는 어디로 갔을까. 올림픽 2연패의 기대를 한몸에 받았던 황영조는 96동아국제마라톤에서 다리경련 때문에 뛰다 걷다하며 29위로 주저앉고 말았다. 올림픽대표 선발전을 겸한 이 대회의 참패로 그는 대표탈락의 비운을 맛본 채 4월15일 은퇴발표와 함께 쓸쓸히 무대 뒤로 퇴장했다. 그렇지만 황영조의 육상 인생이 아직 끝난 것은 아니다. 고려대 교육대학원 체육학과에서 수업을 쌓고 있는 그는 선수시절에 못다 이룬 꿈을 육상 지도자로 활짝 꽃피울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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