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에 1000명 이주… 낡은 여수산단 사택 떠나는 직원들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5월 22일 03시 00분


코멘트

[섬섬여수] 사택 노후화로 청년층 거주 기피
건축한 지 40년 넘어 일부 폐쇄… 외벽 페인트 벗겨지고 수풀 우거져
일부 기업, 1종에서 2종 지역으로… 사택 부지 종 상향 규제 완화 요청
여수시 의원 모여 간담회 진행… 공공성 강화 등 다각적 검토 필요
“현대화 위한 투명한 논의 본격화”

전남 여수시 안산동과 소호동에는 노후화된 여수산단 사택이 밀집돼 있다. 여수산단 기업 직원들이 낡은 사택 입주를 꺼리면서 인구가 빠져나간 원인 중 하나로 거론되고 있다. 독자 제공
전남 여수시 안산동과 소호동에는 노후화된 여수산단 사택이 밀집돼 있다. 여수산단 기업 직원들이 낡은 사택 입주를 꺼리면서 인구가 빠져나간 원인 중 하나로 거론되고 있다. 독자 제공
“한 해 동안 여수산단 직원 1000여 명이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하는 등 인구 유출이 심각합니다.”

전남 여수 시민들 사이에서 최근 여수국가산업단지에 있는 회사 직원들이 여수가 아닌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는 현상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런 걱정이 터져 나오는 이유는 뭘까.

‘여수 경제 주춧돌’ 여수산단 떠나는 직원들

여수산단은 지역경제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여수산단은 1967년부터 여수시 중흥·화치·삼일동의 임해공단 양호한 입지 여건을 이용해 종합석유화학단지를 만들기 위해 조성됐다. 국내 최대 석유화학단지인 여수산단 입주 기업은 석유화학 138곳, 기계 78곳, 비금속 10곳, 전기·전자 10곳, 철강 6곳, 기타 61곳 등 총 300곳이다. 2022년 여수산단의 총생산액은 102조 원, 수출액은 388억 달러, 고용 인원은 2만8000명. 지방세 납부액은 1896억 원에 달했다.

여수산단이 낸 지방세는 2022년 여수시 전체 지방세 3906억 원의 48.5%를 차지했다. 또 여수산단이 2021년 지역사회에 공헌한 금액은 73억6000만 원, 공헌 대상자는 8558명이었다. 한문선 여수상공회의소 회장은 “여수산단은 1979년 완공 이후 지역을 넘어 국가경제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 여수산단이 살아야 여수가 산다”고 말했다.

이처럼 여수 경제의 주춧돌 역할을 하는 여수산단 기업 직원들이 다른 지역으로 떠나고 있는 현상이 지역 사회 문제로 거론되고 있다. 여수시여수산단공동발전협의회는 2022년 여수국가산단 산업 동향 및 각종 현황 조사 결과 발표를 통해 2021년 여수산단 35개 회사 직원 1만4109명의 지역별(거주지) 분포 자료를 공개했다. 자료를 보면 여수시 8340명, 순천시 3355명, 광양시 196명, 여수·순천·광양을 제외한 전남 지역 567명, 전남 이외에 다른 지역 1651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특이한 점은 순천에서 거주하는 직원이 2020년 2104명에서 2021년 3355명으로 1년 동안 1251명 늘어난 것이다.

여수시여수산단공동발전협의회 측은 “여수산단 직원들은 여수의 주거 환경 문제로 상대적으로 주변에 비해 비싼 집값, 교통체증 및 도로 사정으로 인한 불편한 출퇴근 여건, 쇼핑 및 문화생활 인프라 부족을 꼽았다”고 밝혔다. 이어 “여수산단 사택들의 노후화로 인해 청년층의 사택 기피 현상에 대한 의견도 많았다”고 덧붙였다.

노후화된 건물 “현대화된 사택 절실”

여수산단 7개 주요 회사의 여수 사택은 총 2870채다. 이들 사택 2870채 대부분은 여수시 소호동과 안산동 등 바닷가를 끼고 경치가 좋은 노른자 땅에 위치했지만 일부는 낡아 폐쇄됐다. 2층 연립주택 사택은 건축한 지 40년이 넘어 하얀 외벽 페인트가 군데군데 벗겨지고 주변에는 수풀이 우거졌다. 해당 주택은 낡고 약해져 안전사고 우려에 폐쇄된 뒤 방치되고 있다. 단독주택 36채도 시설 노후화로 인해 폐쇄됐다.

여수산단 기업들 직원 대부분은 노후화된 건물을 재건축한 현대화된 사택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이었다. 한 20대 직원은 “수도권에서 살았는데 여수에 일자리를 구한 것은 사택이라는 복리후생 제도가 있었기 때문”이라며 “여수에서 가정을 꾸리기 위해서는 현대화된 사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른 30대 직원은 “여수가 고향이 아닌 사람들은 생활편의를 위해 정주 조건이 좋은 곳으로 이사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40대 직원도 “사택은 주거 안정을 위해 좋은 제도다. 하지만 인근에 새 아파트가 많이 건축돼 노후화된 사택에 입주하는 것이 꺼려진다”고 밝혔다. 50대 직원은 “사생활 보호를 위해 사택단지를 통합 재건축해 시민들도 같이 거주하게 하고 각종 복지시설도 함께 이용할 수 있는 복합문화시설을 건축한다면 사택 정주 여건이 크게 개선될 것 같다”고 강조했다.

여수산단 기업들은 직원들의 희망을 고려해 사택 재건축을 추진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일부 기업은 여수시에 1종 일반주거지역인 노후화된 저층 사택을 현대화된 고층 건물로 지을 수 있는 2종 일반주거지역으로 종 상향 규제 완화를 요청했다. 대부분 기업은 사택 부지의 종 상향 규제 완화를 희망하고 있었다.

여수산단 직원들은 노후화된 여수산단 저층 사택이 현대화된 고층 건물로 재건축될 경우 청년인구가 유입되고 지역 경제 활성화, 바닷가가 보이는 명품 주거단지 조성 등의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분석했다.

여수산단 사택 재건축 논의 본격화

노후화된 여수산단 사택의 현대화에 대해선 논의가 시작되는 분위기다. 여수시는 12일 여수 지역구 22대 국회의원 당선인을 초청해 정책간담회를 개최했다. 정책간담회에는 더불어민주당 주철현 당선인(전남 여수갑)과 조계원 당선인(전남 여수을)을 비롯해 정기명 여수시장 등 여수시 관계자 30여 명이 참석했다.

주 당선인은 간담회에서 “여수산단 사택 노후화로 청년 근로자들이 여수를 떠나 순천 신대지구나 광양 새 아파트로 이사하는 인구 유출이 심각하다”며 “노후화된 여수산단 저층 사택을 종 상향을 통해 현대화된 아파트로 짓고 근로자, 시민들에게 함께 분양해 공공 혜택을 받도록 하는 방안도 논의할 시기가 됐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어 “여수 인구 증가를 위해 여수산단 사택을 현대화하는 사업에 대해 시민들 각자 찬반 입장이 있는 만큼 공공성 강화, 사회적 기여 등 다각적인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도 밝혔다고 한다.

조 당선인도 여수산단 사택 현대화에 긍정적인 태도다. 조 당선인은 지난달 5일 여수산단 14개 대기업 노동조합협의회와 ‘여수산단의 안전과 지속가능성을 위한 정책협약’을 체결했다. 협약에는 여수산단 노후 사택 재개발로 인구 유입에 대한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조 당선인 측은 “노조와 약속한 여수산단 노후 사택 재개발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여수시는 노후화된 여수산단 사택 재건축 여론이 제기된 만큼 신중하게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여수시는 여수산단 사택 재건축은 인구 유입을 위해 필요하지만 일부에서 특혜 가능성을 제기하며 반발할 것을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에 여수산단 직원 등은 사택을 재개발하면서 발생하는 개발 이익은 투명하고 공정하게 산정해 지역사회에 환원하면 된다는 생각이다. 여수시 관계자는 “여수산단 사택 재건축은 하루아침에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며 “여수산단 사택 현대화를 위한 투명한 논의를 본격화해야 할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섬섬여수#여수#여수산단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