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녹음된 대화 재생해 듣는 행위는 ‘청취’와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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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년 3월 24일 09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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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취는 실시간 대화를 듣는 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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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음된 대화를 재생해 듣는 행위는 대화 내용을 실시간으로 듣는 ‘청취’와 다르게 판단해야 한다는 취지의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권영준 대법관)는 지난달 29일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24일 밝혔다.

대법원은 “녹음된 대화 내용을 듣고 그 녹음파일을 제3자에게 전송한 것이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본 원심의 판단은 정당하다”고 말했다.

앞서 A씨는 2019년 배우자인 피해자 B씨의 휴대전화에 위치추적 어플리케이션을 설치해 B씨의 위치정보를 수집한 혐의로 기소됐다.

또 A씨는 2020년 B씨의 집에 설치된 영상정보 처리기기(홈캠)를 통해 B씨 가족의 대화를 녹음하고, 해당 녹음 파일을 제3자에게 전달한 혐의도 받았다.

이 외에도 B씨와 부부관계가 악화돼 이혼소송을 제기하고 별거하던 중 B씨의 차에 몰래 들어가 블랙박스 메모리카드를 가지고 간 혐의도 적용됐다.

1심에서는 A씨에게 적용된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위치정보의 보호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 위반, 자동차 수색 등 3개의 혐의 중 휴대전화에 설치한 어플리케이션으로 위치정보를 불법 수집한 혐의만 유죄로 인정해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다.

홈캠에 녹음된 B씨 가족들의 대화를 듣고 이를 제3자에게 전달한 것은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통신비밀보호법 제3조와 제16조에 따르면 누구든지 공개되지 않은 타인간의 대화를 녹음 또는 청취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만 A씨는 자동녹음 기능이 있는 홈캠을 B씨의 동의 하에 설치했고, 움직임을 인식한 홈캠이 자동으로 녹음했을 뿐 A씨가 녹음울 위해 추가로 한 ‘작위’가 없다고 판단했다.

자동차 수색 혐의에 대해서도 자동차 보험상 운전자로 A씨와 B씨 모두 등록돼 있었고, B씨가 A씨에게 자동차 보조키를 맡긴 점, 수색 당시 부부관계가 아직 파탄에 이르지 않은 점 등을 고려해 무죄를 선고했다. 쌍방의 항소로 진행된 2심에서는 원심을 파기하고 A씨에게 선고유예를 판결했다. 선고유예는 경미한 범죄에 대해 일정한 기간 형의 선고를 유예하고, 그 유예기간을 사고 없이 지내면 형의 선고를 면하게 하는 제도다.

2심에서 검사는 공소장을 변경해 원심에서 주장한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를 주위적 공소사실로 유지하면서 ‘A씨가 공개되지 않은 타인 간의 대화를 청취했다’는 것을 예비적 공소사실로 추가했다.

다만 재판부는 예비적 공소사실에 대해서도 “통신비밀보호법에서 형사처벌 대상으로 정하고 있는 ‘타인 간의 대화 청취 행위’는 타인 간의 대화가 이루어지는 상황에서 동시에 이를 청취할 것을 그 요건으로 한다. 따라서 과거에 완료된 대화의 녹음물을 듣는 행위는 통신비밀보호법 구성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이어 “통신비밀보호법에서 보호하는 타인 간 대화는 원칙적으로 ‘현장에 있는 당사자들이 육성으로 말을 주고받는 의사소통 행위’를 가리키는 것”이라며 “녹음된 타인 간의 대화 내용은 통신비밀보호법상 청취가 금지된 대화라고 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검사는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에 대해 상고했지만, 대법원은 상고를 기각하며 원심에서 판단한 해당 혐의 무죄 판단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A씨가 불법으로 타인의 대화를 녹음했다는 주위적 공소사실에 대해서는 “원심의 판단에 미필적 고의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없다”고 판단했다.

A씨가 공개되지 않은 타인 간의 대화를 청취했다는 예비적 공소사실도 “종료된 대화의 녹음물을 재생해 듣는 행위도 ‘청취’에 포함시키는 해석은 청취를 ‘녹음’과 별도 행위 유형으로 규율하는 통신비밀보호법 제3조 제1항에 비추어 불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위법한 녹음 주체가 그 녹음물을 청취하는 경우에는 그 위법한 녹음을 금지 및 처벌 대상으로 삼으면 충분하고, 녹음에 사후적으로 수반되는 청취를 별도의 금지 및 처벌 대상으로 삼을 필요성이 크지 않다. 또 적법한 녹음 주체 또는 제3자가 그 녹음물을 청취하는 경우까지 금지 및 처벌 대상으로 삼으면 행동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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