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자 악성민원에 문 닫습니다”…20년된 소아과 폐과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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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년 7월 6일 15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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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광산구의 한 소아청소년과의원의 폐과 안내문. 페이스북 캡처
광주 광산구의 한 소아청소년과의원의 폐과 안내문. 페이스북 캡처
저출생과 낮은 수가 등으로 문을 닫는 소아청소년과의원이 잇따르는 가운데 한 소아청소년과의 폐과 안내문이 이목을 끌고 있다. 폐과 결정이 특정 보호자의 악성 민원 때문임을 안내문에 정확히 명시했기 때문이다.

6일 광주 광산구에서 소아청소년과를 운영해 온 김모 원장은 “꽃 같은 아이들과 함께 소아청소년과 의사로 살아온 지난 20여 년, 제겐 행운이자 기쁨이었다. 하지만 OOO 보호자의 악성 허위 민원으로 인해 2023년 8월 5일로 폐과한다”는 안내문을 게시했다.

김 원장은 “타 병원 치료에 낫지 않고 피부가 붓고 고름, 진물이 나와서 엄마 손에 끌려왔던 4세 아이. 두 번째 방문에서는 보호자가 많이 좋아졌다고 할 정도로 나았다”며 “하지만 보호자는 간호사 서비스 불충분을 운운하며 허위, 악성 민원을 제기했다. 환자가 아닌 이런 보호자를 위한 의료행위는 더 이상 하기 힘들다고 생각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향후 보호자가 아닌 아픈 환자 진료에 더욱 성의정심, 제 진심을 다하기 위해 소아청소년과의원은 폐과하고 (만성) 통증과 내과 관련 질환을 치료하는 의사로 살아가겠다”며 “더 이상 소아청소년 전문의로 활동하지 않아도 될 용기를 준 OOO 보호자께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고 덧붙였다.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회장이 지난 3월 29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에서 열린 ‘소아청소년과 폐과와 대국민 작별인사’ 기자회견에서 입장을 밝히고 있다. 뉴스1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회장이 지난 3월 29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에서 열린 ‘소아청소년과 폐과와 대국민 작별인사’ 기자회견에서 입장을 밝히고 있다. 뉴스1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회장은 이 안내문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공유하며 “우리나라 모든 소아청소년과 의사가 오늘도 겪고 있는 문제”라며 “김 원장님께 심심한 위로를 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김 원장님과 통화하며 실제로 얘기를 들어보니 더 심각하고 더 화나는 일”이라며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이날 오후에 조사 차 나오기로 했다고 한다”고 전했다.

해당 소아청소년과의 폐과 소식은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와 맘카페 등을 뜨겁게 달궜다. 누리꾼 대다수는 “결국 피해는 아이들의 몫” “폐과할 정도면 정신적 스트레스가 컸겠다”며 안타까워했다. 반면 일부는 “호불호 있는 병원이다. 양쪽 말을 들어봐야겠지만 가보셨던 분들은 아실 것” “두 분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저런 식으로 안내문을 붙이는 건 조금 그렇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소아청소년과는 점차 줄어드는 상황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보건의료빅데이터개방시스템에 따르면 소아청소년과는 2013년 2200곳에서 올해 1분기 기준 2147곳으로 53곳(2.4%) 감소했다.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는 지난 3월 기자회견을 열고 저출생, 낮은 수가, 지속적인 수입 감소 등을 이유로 더 이상 병원을 운영할 수 없다며 폐과를 선언했다.

이혜원 동아닷컴 기자 hye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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