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과 놀자!/피플 in 뉴스]전쟁의 비극을 작품에 새긴 판화가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5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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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이렇게까지 오래가리라 예상한 사람이 있었을까요? 작년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본격적으로 발발한 이 전쟁으로 지금 이 순간에도 죄 없는 생명들이 속절없이 스러져 가고 있습니다.

전쟁의 비인간적인 실상을 고발하는 작품으로 잘 알려진 케테 콜비츠(1867∼1945·사진)는 독일을 대표하는 화가이자 판화가, 조각가입니다. 그의 초기 작품에는 주로 억압받고 소외된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사회주의자인 아버지의 영향과 베를린에서 빈민 의료 사업을 하던 의사 카를 콜비츠와의 결혼으로 도시 빈민들의 비참한 현실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콜비츠의 작품에 전쟁의 비참함과 반전·평화의 목소리가 담기기 시작한 건 아들의 죽음 때문입니다.

초기 작품인 판화 연작 ‘방직공들의 봉기’와 ‘농민들’로 사회적인 주목을 받으며 작가로서 성공적인 길을 가고 있던 콜비츠의 삶은 제1차 세계대전으로 송두리째 흔들립니다. 아무리 말려도 입대를 고집했던 그의 둘째 아들이 프랑스 전투 중에 전사하고 만 겁니다. 아들의 전사 소식을 들은 날, 그는 일기장에 다음과 같이 단 한 줄만 썼다고 합니다. “당신의 아들이 전사했습니다.”

비통과 상실에 빠진 콜비츠는 그때부터 여성으로서, 특히 ‘어머니’로서 전쟁의 참화를 겪는 민중의 고통을 작품에 새기기 시작합니다. ‘Mother’(1919년), ‘부모’(1921년), ‘독일 아이들이 굶고 있다’(1924년) 같은 작품을 보면 ‘세상 모든 자식’을 감싸 안는 어머니의 시선이 느껴집니다. ‘전쟁은 이제 그만!’(1924년)이라는 작품에서는 강한 분노마저 느껴집니다.

하지만 콜비츠의 비극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사랑하는 손자마저 강제 징집되어 전투 중에 죽고 맙니다. 1943년에는 폭격을 받아 집과 작업실에 있던 상당수의 작품이 파괴되고 맙니다. 그가 일생에 걸쳐 만든 작품들이었습니다. 콜비츠 역시 유럽에서 전쟁이 끝나기 몇 주 전에 죽습니다.

콜비츠의 판화는 단순한 흑백입니다. 명암만으로 이미지를 표현하지만 어떤 유화나 수채화보다 더 강렬합니다. 선과 형태는 간결하면서도 단순하고 힘이 있습니다. 콜비츠는 판화를 택한 이유로 그림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녀의 작품들은 독일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반전과 평화의 의미를 일깨웠습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유발 하라리의 말처럼 불행하게도 ‘오래 지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어쩌면 ‘형태를 바꿔가며 수년간 계속’될지도 모릅니다. 아들과 손자의 죽음으로 가슴을 뜯으면서도 ‘언젠가 새로운 이상이 실현되어 이 세상 모든 전쟁이 사라질 것’을 믿었던 콜비츠가 21세기에도 벌어지고 있는 이 참상을 본다면 어떻게 말할까요?

이의진 누원고 교사 roserain9999@hanmail.net
#케테 콜비츠#전쟁의 비인간적인 실상#평화의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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