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도 증시처럼 매수자 정보 공시해 사기 예방을 [기자의 눈/이상환]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4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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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환·사회부
이상환·사회부
“오피스텔 60채를 모두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사들인 줄 알았다면 전세 계약을 안 했을 겁니다.”

인천 ‘미추홀구 건축왕’ 남모 씨(61) 일당에게 전세사기 피해를 당한 A 씨는 2년 전 계약 당시를 돌이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살던 집이 경매에 넘어가 낙찰자가 나타나면 보증금을 모두 날리고 거리로 나앉을 처지가 됐다.

그는 2021년 2월 전세보증금 1억 원을 내고 미추홀구 한 오피스텔에 입주했다. 당시 근저당이 설정된 걸 보고 계약을 망설였지만, 공인중개사가 “같은 오피스텔 여럿이 평균 2억4000만 원에 팔렸다. 지금은 더 올라 채권최고액(1억6500만 원)을 제외해도 보증금을 돌려받는 데 문제가 없다”고 설득해 도장을 찍었다.

하지만 오피스텔 60채를 모두 사들인 건 LH 하나였다. 이후에는 한 건도 거래가 이뤄지지 않았다. 더구나 이 오피스텔 매입을 담당한 LH 직원은 뒷돈을 받고 비싸게 매입했다는 의혹으로 검찰 조사를 받고 있다.

문제는 정부가 제공하는 부동산 실거래가 내역에 매수자 정보가 없다는 것이다. 물론 거래가 이뤄진 모든 가구의 등기부등본을 발급하면 매수자를 파악할 수 있지만, 전세계약 전 다른 가구 등기부등본까지 떼 보는 경우는 거의 없다.

전세사기 일당은 이런 점을 악용했다. 오피스텔과 빌라의 거래가 많지 않은 점을 이용해 일당끼리 비싸게 거래하면서 시세를 부풀리고 전세보증금을 올렸다. 또 선순위 채권이 있어도 안전한 것처럼 설득하며 피해자를 늘렸다.

증시에선 △개인 △외국인 △기관 등 거래자를 구분해 공시하고, 특정 주식을 대량으로 팔거나 살 경우 거래자의 성과 주소까지 공시한다. 자금력을 앞세운 특정인이나 기관이 주가에 개입하는 ‘작전’ 가능성을 차단하고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국토교통부는 지난해부터 부동산 매수자 정보 공시를 검토해 왔다. 하지만 개인정보 침해라는 우려가 제기되면서 아직 결론을 내리지 못한 상태다. 하지만 어차피 등기부등본을 떼면 누구나 보유자의 이름과 주소를 알 수 있다. 그 정도라도 실거래가 내역에 포함시켜 제공한다면 시세 조작과 피해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이상환 기자 payback@donga.com
#부동산#매수자 정보 공시#사기 예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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