父 지방 전전, 母 연락회피…냉장고엔 썩기 직전 음식만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4월 14일 21시 3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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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구로구의 한 고시원에 방치돼 있던 중국 국적 A 군(7)이 지냈던 방 모습. (SBS 뉴스 화면 캡처)
서울 구로구의 한 고시원에 방치돼 있던 중국 국적 A 군(7)이 지냈던 방 모습. (SBS 뉴스 화면 캡처)
“아이가 혼자 방치돼 있는 게 너무 걱정돼 엄마에게 전화까지 했어요. 그랬더니 ‘이혼했으니 아이 문제에 대해 자기에게 말하지 말라’고 하더군요.”

서울 구로구의 한 고시원 주인은 14일 동아일보 기자와의 통화에서 최근 부모 없이 고시원 단칸방에 홀로 방치됐다가 구조된 A 군(7)에 대해 설명하며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A 군 아버지는 일용직 건설 노동자인데 지방에 일하러 다니느라 2, 3일씩 방치돼 있는 게 일상이었다. 안타까운 마음에 가끔 빵이나 고구마를 갖다주면 말도 못하고 멍한 미소만 지었다”고 했다.

지난달 20일 서울 구로구의 한 고시원에서 어린이가 방치돼 있다는 신고가 접수돼 출동한 경찰이 중국 국적의 A 군을 구조했다. 구조 당시 앙상하게 마른 상태였던 A 군은 현재 지방자치단체에서 운영하는 임시보호센터에서 생활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 방치된 채 하루 한 끼 배달 음식만
경찰에 따르면 당시 아이가 방치됐던 고시원 방에선 곰팡이 핀 식빵과 담배꽁초 등이 발견됐다. 냉장고에는 썩기 직전의 과일과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이 가득했다고 한다. 벽 한쪽에는 혼자 지내며 그린 것으로 보이는 가족 그림이 있었다.

아버지가 일하러 나간 후 방에 혼자 남겨진 A 군은 매일 끼니도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고 한다. 고시원 인근의 한 식당 관계자는 “한 번은 아이 엄마라는 사람이 ‘돈가스 같은 메뉴를 A 군에게 하루에 한 번 배달해 달라’고 말해 몇 번 음식을 두고 온 적 있다”고 했다. A 군이 살던 고시원방 맞은편 거주자는 “아이를 몇 차례 마주쳤는데 보호자가 안 보여 이상하게 생각했다”며 “체구가 너무 작은 데다 말라 일곱 살로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2016년생인 A 군은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했어야 할 나이지만 학교에도 가지 않았다. 경찰 관계자는 “A 군과 중국 국적의 부모 모두 지난해 7월 한국에 체류할 수 있는 비자가 만료돼 미등록 외국인 신분이 된 것으로 안다”며 “가족이 모두 불법체류자가 된 이후 사회복지망 등에 포착되지 않아 필요한 지원과 교육을 받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경찰은 A 군의 부모를 아동복지법상 방임 혐의로 조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 “미등록 외국인 아동 1만3000명”
법무부는 A 군과 같은 ‘그림자 아이들’을 돕기 위해 2021년 국내 출생 불법체류 아동 구제대책을 발표했다. 불법체류 아동도 국내 출생 등 일정 요건을 충족하면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체류 자격을 부여하고, 부모에게도 성인이 될 때까지 국내 체류를 허용하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여전히 사각지대가 많다고 지적한다. 국내에서 출생하지 않았더라도 6세 미만일 때 국내에 입국해 6년이상 체류한 경우 구제 대상에 포함되지만 A 군은 이마저도 해당되지 않았다. 사단법인 이주민센터친구의 이진혜 변호사는 “초등학교에 입학해야 할 나이의 불법체류 아동은 현재 구제대상에 포함되기 어려워 기준을 현실화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불법체류자인 부모가 신분 노출을 우려해 자녀 구제 신청을 하기 쉽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변호사는 “자녀의 체류 자격을 취득하는 대신 내야하는 범칙금이 부담돼 신고하지 않는 부모들도 있다”고 말했다. 자녀 구제를 신청하려면 체류 기간에 따라 최대 3000만 원에 이르는 범칙금을 완납해야 한다. 또 구제 대책 자체를 모르는 이들도 적지 않다. 법무부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A 군과 같은 불법체류자 자녀는 1만3000명 안팎으로 추산된다.

손준영기자 hand@donga.com
최미송기자 cm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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