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든 삶에도… 정의를 위해 목숨 바쳐 시대의 어둠 밝힌 ‘들불 열사’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5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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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보는 5·18민주화운동]
〈하〉 ‘천애고아’ 박용준 열사

박용준 열사가 1980년 광주 동구 대의동 전일빌딩 뒤편 광주YWCA 사무실에서 맑게 웃고 있다. 광주YWCA는 1970∼80년대 광주지역 사회운동의 교두보 역할을 했다. 들불열사기념사업회 제공
박용준 열사가 1980년 광주 동구 대의동 전일빌딩 뒤편 광주YWCA 사무실에서 맑게 웃고 있다. 광주YWCA는 1970∼80년대 광주지역 사회운동의 교두보 역할을 했다. 들불열사기념사업회 제공
천애(天涯)의 고아였지만 학구열이 남달랐고 불의를 보면 참지 못했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최후 진압에 맞서 마지막까지 전남도청을 지키다 산화했다. 그의 뜻을 이어가는 장학회가 생기고 글씨체도 만들어졌다. 힘든 삶에도 정의를 위해 시대의 어둠을 밝힌 그는 이제 의인(義人)이 됐다.

‘들불 7열사’ 가운데 한 명인 박용준 열사(1980년 작고) 이야기다. 그는 1956년 7월 태어나자마자 광주 동구 학동에 자리한 영신영아원에 맡겨졌다. 여덟 살이던 초등학교 1학년 때 영신영아원에서 무등보육원으로 옮겨졌다. 호적에는 고아원인 무등보육원이 본적으로 등록됐다. 무등보육원에서 생활하면서 광주 서석초교와 숭일중을 졸업했다. 학비를 벌기 위해 조선대에서 구두닦이를 하고 동네에서 신문을 배달했다.

배움에 목말랐던 그는 열여섯 살 때 그동안 모은 돈으로 숭의실업고 야간부에 입학했다. 그와 어린 시절을 함께했던 서한성 씨(66)와 셋방 생활을 하며 주경야독했다. 서 씨는 “용준이는 배움에 대한 열망이 누구보다도 컸고 항상 올곧은 친구였다”라고 회고했다.

야간학교에 다니던 그에게 서경자 영신영아원 원장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광주YWCA신협에서 근무하도록 해준 것이다. 서 원장은 당시 광주YWCA신협 이사장을 맡고 있었다. 광주YWCA신협에 다니면서 안정을 찾은 그는 고교 과정을 마친 뒤 방송통신대 경영학과에 입학했다. 오갈 곳이 없었던 그는 광주YWCA에서 숙식을 해결했다.

스무 살 때 신협 지도자 강습회에서 광주 서구 광천동에서 마을운동을 하던 김영철 열사(1998년 작고)를 만났다. 두 사람은 광주YWCA에서 함께 근무하며 형제 같은 정을 느꼈다. 박 열사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영신영아원에서 김 열사의 어머니가 간호사로 근무했던 인연 때문이었다.

1978년 광천동에 들불야학이 설립되자 박 열사와 김 열사는 들불야학에 합류해 강학(교사)으로 활동했다. 박용안 씨(62·한국해양수산개발원 명예연구위원)는 “박 열사는 글씨체가 뛰어나 들불야학 교재를 직접 썼다”고 말했다.

1980년 5월 17일 신군부가 비상계엄을 확대하며 전국의 민주화운동 인사들을 체포한 다음 날인 5월 18일 7공수부대가 전남대와 조선대를 점령했다. 계엄군이 학생들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휘두르면서 5·18이 시작됐다. 계엄군이 광주 동구 금남로에서 시민 학생들을 폭행한 19일 박 열사는 광주 동구 대의동 광주YWCA 1층에 있었다. 계엄군이 2층 양서협동조합 사무실로 들어와 직원들을 폭행하는 모습을 보고 의분을 참지 못했다.

박 열사는 시민과 함께 계엄군에 맞서 싸우기로 했다. 계엄군이 물러난 다음 날인 5월 22일부터 혼자서 5월 진실을 알리는 ‘투사회보’를 만들었다. 글씨체가 좋았던 그는 투사회보 10호까지 들불야학 교실과 광주YWCA에서 제작했다. 5월 27일 새벽 “전남도청을 사수하겠다”는 말을 남긴 채 광주YWCA 건물을 지키다 계엄군이 쏜 총에 맞아 숨을 거뒀다.

박 열사의 5월 정신은 다양한 사업으로 이어지고 있다. 광주YWCA는 26일 어려운 형편에 있는 대학생 5명에게 박용준 장학금을 수여한다. 광주YWCA는 박 열사에게 지급된 보상금으로 장학재단을 만들어 2000년부터 대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있다. 그동안 95명이 박용준 장학금을 받았다.

박 열사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제작된 박용준 투사회보체 글꼴 사용도 늘고 있다. (사)지역공공정책플랫폼 광주로, 5·18기념재단, 광주YWCA, (사)들불열사기념사업회, 광주 동구청 홈페이지 등 5곳에서 투사회보체를 무료로 내려받을 수 있다.

광주 서구는 청사 회의실을 ‘들불홀’로 이름을 바꾸고 출입구 벽면 조형물 글꼴도 투사회보체로 변경했다. 한국교육학술정보원 등은 일선 학교에서 투사회보체를 사용할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다.

백희정 지역공공정책플랫폼 광주로 상임이사는 “투사회보체 글꼴로 응모하는 글짓기 공모전을 여는 등 박 열사의 정신을 이어받는 다양한 추모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5·18민주화운동#들불 열사#박용준 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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