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 발화지를 찾아라…울진 산불 현장서 돌 그을음 살피는 까닭은?[사건 Zoom In]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3월 20일 12시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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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삼척 산불 산불은 이달 4일 시작돼 213시간 43분 동안 산림 2만여ha(헥타르)를 태우는 막대한 피해를 내고 13일 꺼졌다. 울진군청과 산림청, 경북경찰청 등이 조사를 벌이고 있지만 산불이 발생한 정확한 원인은 아직도 오리무중이다.

기자는 산불 발생 다음날인 이달 5일 산불 최초 발화지인 경북 울진군 북면 두천리를 찾았다. 도로변 야산 한쪽에 출입금지 테이프가 둘러져 있었고, 빨간색과 노란색 깃발이 여러 개 꽂혀 있었다.

●최초 발화지 확정까지 걸린 4일

“빨간색 깃발은 불이 앞으로, 노란색은 불이 옆으로 흘러갔다는 의미입니다.”

산림청 산하 국립산림과학원 산불·산사태연구과의 권춘근 박사가 말했다. 권 박사는 울진군청, 한국산불방지기술협회 등 5명으로 이뤄진 팀과 함께 4일부터 나흘에 걸쳐 산불 발화지를 분석했다. 7년째 국립산림과학원에서 근무 중인 권 박사는 2007년부터 산불을 연구해온 산불 전문가다. 그는 2017년 3월 강원 강릉시 옥계면에서 발생한 산불 원인 조사 당시 최초 발화지 인근에서 과자 봉지와 음료수 병 등을 발견하고, 인근 폐쇄회로(CC)TV를 통해 피의자를 특정해 범인을 찾아낸바 있다.

최초 발화지는 산불이 지나간 현장에서 불길의 방향을 추적해 찾는다. 권 박사는 울진·삼척 산불 발생 당일 오후 두천리에서 먼저 낙엽이 전부 타버린 곳부터 찾았다. 불길이 지나간 곳에는 낙엽이 남아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어 산 아래위로 나 있는 불길의 흔적 속에서 돌과 바닥에 떨어져 있는 음료수 캔, 나무 등의 그을음을 살피며 불길의 방향을 분석했다. 불에 타지 않는 돌과 음료수 캔은 그을음이 진 곳이 불길이 흘러간 방향이고, 불에 타는 나무는 그을음이 진 반대편이 불길이 흘러간 방향으로 추정할 수 있다고 권 박사는 말했다.

이렇게 불길의 방향을 역으로 추적하면 최초 발화지가 나온다. 산불은 바람에 따라 일정 방향으로 진행되지만 최초 발화지의 경우 불이 여러 방향으로 흘러간 흔적을 남긴다. 이런 특징을 통해 권 박사는 현장에서 불의 방향이 앞, 뒤, 옆으로 혼재돼있는 가로 4m 세로 1m 가량 넓이의 최초 발화지를 확인했다.

●카메라에 잡힌 4대의 차량

산불 원인을 분석할 때는 가능성이 낮은 원인부터 제거해나가는 소거법이 보통 활용된다. 울진 산불은 당일 낙뢰기록이 없었고, 주변에 소각 흔적이나 등산로도 없었다. 이에 따라 번개로 인해 발화했을 가능성이나 논밭둑 소각, 등산객으로 인한 실화일 가능성은 낮다고 산림당국은 보고 있다.

이달 16일 울진군청과 산림청, 경북경찰청, 국립과학수사연구원, 한국산불방지기술협회는 최초 발화지에서 합동 감식을 벌였다. 현장에서 불에 탄 흔적이 있는 투명한 플라스틱 물통이 발견됐다. 이에 따라 햇볕이 물통을 통과하면서 응집돼 불을 냈을 가능성도 거론됐다. 그러나 산림당국 관계자는 “겨울철이라 햇빛이 약한데다 그날 바람이 강하게 불어 불이 날 정도로 열이 축적됐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했다.

남은 것은 담배꽁초다. 최병암 산림청장은 이달 6일 브리핑에서 “길가에서 발화했기 때문에 담뱃불 등 불씨로 인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최초 발화지 건너편 야산에 설치돼있던 CCTV에는 본격적으로 연기가 피어오르기 전 10분 동안 4대의 차량이 지나간 모습이 확인됐다. 울진군청 측은 경찰의 협조를 얻어 운전자의 신원을 파악한 뒤 참고인 자격으로 이들을 조사했다.

그러나 당시 운전자들은 모두 “지나가기만 했을 뿐 담배꽁초 등을 버리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차량 블랙박스 영상도 확보하지 못한 상태다. 차주들은 영상 기록이 지워졌거나, 메모리카드를 빼놓은 상태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산불 원인의 증거를 찾지 못한 상태에서 이들은 모두 피의자가 아닌 참고인 신분이다. 조사에도 한계가 있다.

현재까지 산불 원인으로 추정되는 담배꽁초는 찾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울진군청 관계자는 “담배꽁초라도 있어야 DNA 등을 추출할 수 있다”고 했다. 울진군청은 차량 운전자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지속할 예정이다.

●빠른 조사, 현장 보존이 산불 원인 규명의 핵심


원칙적으로 산불 원인 조사는 산불 진화가 완료된 시점부터 본격적으로 이뤄진다. 산불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진화를 최우선에 두는 까닭이다. 산불이 진화된 지 사흘이 흐른 뒤에야 최초 발화지에서 첫 현장 합동 감식이 이뤄진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소수 인원이라도 최대한 빨리 원인 조사에 투입하는 게 원인 규명에 도움이 될 거라 강조한다. 권 박사는 “진화 작업과 동시에 원인 조사를 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최초 발화지 추정 지역에서 불을 끌 때는 최대한 현장을 보존해야 한다는 교육을 소방대원과 진화대원을 대상으로 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산불이 처음으로 발생한 현장 주변에 방화선을 구축해 현장 훼손을 최소화하자는 것이다. 권 박사는 “아무래도 진화 작업 중에 고압 살수를 하다보니 담배꽁초 같은 것은 찾기 어려운 경우가 적지 않다”며 “쉽지는 않겠지만 최초 발화지를 보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울진=남건우 기자 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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