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너무 급박해 틀니도 못챙겨” “60년간 이런 난리 처음”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3월 6일 18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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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 강타한 강원 동해 주민 충격의 이틀
강풍에 불똥 바닷가까지 날아와 집 덮쳐



“묵호에서 60년을 살았는데 이런 난리는 처음입니다.”

6일 강원 동해시 묵호진동에서 만난 장일수 씨(77)는 전날 마을을 덮친 화마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 몸서리를 쳤다. 장 씨는 전날 상황에 대해 “곳곳에서 집에 불이 붙고 불똥이 날아가는 게 보일 정도로 아수라장”이었다며 생생한 목격담을 이야기했다.

5일 새벽 강릉 옥계에서 발생한 산불이 강풍을 타고 동해로 옮겨 붙은 뒤 오전에는 도심까지 근접했고 불똥이 날아 바닷가 마을인 묵호지역을 강타했다. 마을 곳곳의 야산과 주택에 불이 붙어 피해가 속출했다.

지역에서 이름난 카페 겸 펜션이 전소돼 숯덩이로 변했고, 이 카페의 자랑거리였던 수백 개의 분재는 밑동만 남긴 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지역의 명소인 묵호등대에 인접한 주택지역까지 불씨가 날아들었고, 창호초등학교 인근 야산에도 불이 붙어 아찔한 순간을 맞기도 했다.


곳곳에서 불이 붙자 주민들이 호스와 양동이를 들고 나와 사력을 다해 진화에 나서기도 했다. 묵호진동 5통 통장인 한정숙 씨(64·여)는 “주민 30여 명이 몰려나와 불을 끄고 소방차가 들어올 수 있도록 차량을 통제하는 등 사력을 다했다”고 말했다.

이 마을의 김육만 씨(85)는 “옆집까지 불이 붙어 호스로 물을 뿌리며 필사적으로 방어한 덕분에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며 “산불이 이 바닷가까지 옮겨 붙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 곳에서 덕장을 운영하는 장훈민 씨(33)는 “하루종일 주변에 물을 뿌리면서 노심초사했고 밤새도록 덕장을 떠나지 못했다”고 말했다.

동해에서는 묵호 소재 주택 26채를 비롯해 69개 건물이 전소됐고, 24개 건물이 부분 피해를 입었다. 또 이재민을 포함해 200여 명이 대피소에서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집이 전소돼 망상수련원에서 지내고 있는 채만호 씨(80·여)는 “나는 그래도 약과 가방은 챙겨 나왔는데 옆집 할머니는 틀니도 못 챙겨 나올 정도로 급박했다”며 “이제 집도 없는 이재민들에게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경찰은 방화 용의자 A 씨로부터 “주민들이 오랫동안 나를 무시해 범행을 했다”는 진술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거동이 불편했던 A 씨의 어머니(86)는 산불이 나자 대피하던 중 넘어져 밭에서 쓰러진 채 주민들에게 발견돼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숨졌다. A 씨는 현주건조물방화, 산림보호법 위반 등의 혐의로 6일 구속됐다.

강릉 옥계와 동해의 산불은 이날 오후 2시 현재 20%의 진화율에 그치는 등 완전 진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이날 오전 11시 현재 옥계와 동해의 산림 피해 면적이 1825㏊라고 밝혔지만 동해시는 자체 집계 결과 동해시 피해 면적이 2100㏊라고 발표했다.


동해=이인모 기자 im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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