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가해자에게 성희롱 피해자 누군지 알려주지 않으면 무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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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년 1월 14일 08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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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이 성희롱을 했다고 징계를 받은 공무원에 대해 피해자가 누구인지 알려주지 않은 것은 개인의 방어권을 침해해 무효라고 판단했다.

14일 서울고법 행정9부(김시철 이경훈 송민경 부장판사)는 최근 검찰공무원 A 씨가 검찰총장을 상대로 낸 해임 취소 소송에 대해 1심을 깨고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지방검찰청에서 근무하고 있는 A 씨는 지난해 5월 해임 처분을 받은 데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했으나 1심에서 패소 판결을 받고 이에 불복해 항소했다.

A 씨는 성희롱 등 품위유지의무 위반 13건, 우월적 지위·권한을 남용한 부당행위 등 품위유지의무 위반 19건, 공용물 사적 사용 등 품위유지의무 위반 1건 등 총 33건에 대한 의무 위반으로 징계를 받았다.

감찰 과정 중 A 씨로부터 성희롱 피해를 봤다거나 다른 비위를 목격했다고 보고한 내부 관계자만 16명에 달했으나 검찰은 이들의 인적사항을 A 씨에게 고지하지 않았다.

이에 A 씨는 “해임 처분은 검찰이 신원을 밝히기를 거부하는 피해자들의 과장되거나 왜곡된 진술이나 진위를 확인할 수 없는 전언에 근거한 것으로 사실관계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감찰과 행정소송에서 피고(검찰총장)의 행위는 A 씨의 방어권을 실질적으로 침해해 위법할 뿐 아니라 피고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 징계 사유가 고도의 개연성이 있을 정도로 입증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이어 “직장 동료인 피해자 등의 인적사항을 전혀 특정하지 않아 A 씨는 자신에게 불리한 진술을 한 피해자 등에 대한 증인 신문을 신청할 기회를 박탈당했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최근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판결의 근거로 삼았다. 성폭력처벌법은 성폭력 범죄 피해자가 19세 미만이면 법정에 직접 증인으로 출석하지 않더라도 진술을 녹화한 동영상이 증거로 인정하고 있는데, 헌재는 이에 대해 위헌으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번 사건에서 문제 되는 피해자 등은 모두 원고와 같은 검찰청에 근무한 성년인 공무원이다. 미성년 피해자가 문제 된 사건에서조차 헌재는 피고인의 반대 신문권을 박탈하는 것이 헌법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송영민 동아닷컴 기자 mindy594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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