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남북/정재락]울산 ‘삼성 영빈관’과 이건희 컬렉션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5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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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락·부산경남취재본부
정재락·부산경남취재본부
울산 태화강 하류에는 해발 89.2m의 야트막한 돋질산이 있다. 정상에 서면 울산 시가지는 물론 울산석유화학공단과 태화강, 울산 앞바다가 훤히 보인다.

이 산은 원래 삼성 소유였다. 울산석유화학공단이 조성되던 1964년 삼성은 돋질산 바로 아래에 한국비료㈜를 건립한 뒤 ‘회사 보안’을 명목으로 이 산을 함께 매입했다. 돋질산의 빼어난 경치에 반한 당시 이병철 회장의 지시로 삼성은 산 정상에 1966년 9월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의 영빈관을 착공했다. 건축 연면적만 1816m²로 당시로는 큰 규모였다. 그러나 이듬해 ‘한비 사카린 밀수사건’이 터진 뒤 한국비료가 1967년 10월 국가에 헌납되면서 영빈관 건립도 중단됐다.

선대 회장이 영빈관을 짓고 싶어 할 정도로 삼성의 애착이 컸던 도시가 울산이다. 그런 울산에 ‘이건희 컬렉션’ 작품은 한 점도 오지 않는다. 서진석 울산시립미술관추진단장은 지난해 말부터 삼성 측과 접촉했다고 최근 언론에 밝혔다. 지하 3층, 지상 2층 규모로 올해 말 개관 예정인 울산시립미술관에 이건희 컬렉션 작품을 기증받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대답은 “노(No)”였다. 삼성 측은 ‘공공 미술관이 운영 중이고, 컬렉션 목록 속 작가의 고향이거나 작업실이 있었던 지역’을 기증 원칙으로 정했는데 울산은 두 가지 모두 충족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시 이후 전국 지방자치단체에서 유치전에 뛰어든 이건희 미술관도 울산에는 그림의 떡이다. 울산시립미술관 건립 공사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별도의 미술관 건립을 추진할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대안으로 울산시립미술관 개관 기념전으로 국립현대미술관이 내년에 계획 중인 이건희 컬렉션 전국 순회전 울산 유치를 추진하고 있다. 송철호 울산시장이 11일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을 만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 확답을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비료는 1995년 삼성이 다시 인수한 뒤 삼성정밀화학(현 롯데정밀화학)으로 이름을 바꿨다. 짓다 만 영빈관은 흉물로 방치되다 2001년 4월 철거됐다. 회사 정문에서 영빈관 터가 있던 정상까지 800m는 벚꽃 명소다. 삼성은 벚꽃 개화기에 맞춰 이 구간을 시민들에게 개방한다. 삼성의 울산 사랑이 여느 기업 못지않기 때문이 아닐까.

울산은 현대자동차와 현대중공업 등 현대그룹 계열사가 많아 ‘현대시’로도 불린다.

이에 못지않게 삼성도 한때 계열사가 5, 6개 있을 정도로 많았다. 영빈관도 지으려던 울산에 이건희 컬렉션 작품 한 점도 기증받지 못한 데 대한 울산시민들의 아쉬움은 그래서 더 크다. 그 아쉬움을 내년에 울산시립미술관 개관 기념 이건희 컬렉션 전시회로나마 달랠 수 있기를 시민들은 바라고 있다.

정재락·부산경남취재본부 raks@donga.com
#울산#삼성 영빈관#이건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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