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유일 ‘향토 백화점’ 대백 본점, 52년만에 문닫는다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4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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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백화점 진출하며 경영 악화
이사회 “7월부터 잠정 휴점 결정”
“中에 매각설엔 결정된바 없다” 일축
협력업체 등 대규모 실직 불가피

7월 1일부터 휴점하는 대구 중구 동성로의 대구백화점 본점(왼쪽 사진). 휴점한다는 소식이 알려진 지난달 29일 본점 1층 화장품 매장이 텅 비어 있다. 명민준 기자 mmj86@donga.com
7월 1일부터 휴점하는 대구 중구 동성로의 대구백화점 본점(왼쪽 사진). 휴점한다는 소식이 알려진 지난달 29일 본점 1층 화장품 매장이 텅 비어 있다. 명민준 기자 mmj86@donga.com
대구백화점(대백) 본점이 개점 52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29일 대백 이사회는 7월 1일부터 중구 동성로 본점의 잠정 휴점을 결정했다고 공시했다. 안팎에선 사실상 폐점 수순으로 해석하고 있다. 대백은 전국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향토 백화점이다.

● “대구와 함께 성장해온 백화점인데 허탈”

대백의 이번 조치는 1944년 대구상회로 출발해 대구를 대표하는 백화점으로 성장한 이후 이뤄진 유례없는 결정이다. 휴점 발표가 나온 지난달 29일 오후 7시경 찾은 대백 본점은 거의 모든 층에서 손님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대부분 매장 직원들은 언론 보도를 통해 휴점 소식을 들었다며 황당해했다.

한 스포츠매장 직원은 “별도의 통보가 없었다. 가족이 ‘대백 휴점’ 관련 기사를 메시지로 보내줘서 알았는데 회사의 마지막 처사가 잔인하다”고 말했다.

30일 대백 본점은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였다. 한 매장 직원은 “오전에 백화점 측으로부터 휴점 소식을 공식적으로 들었다. 사실상 폐점한다는 내용으로 들렸는데 정말 난처하다”고 했다. 또 다른 직원은 “사실 백화점 내에서 몇 달 전부터 폐점 얘기가 나왔는데 막상 상황이 닥치니 걱정이 크다. 코로나19 때문에 일자리 구하기도 어려운데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막막하다”고 하소연했다.

백화점에서 만난 한 고객은 “대백 본점은 대구시와 함께 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역사적인 상징성도 있고 시민들의 자부심이기도 한데 갑자기 너무 허무한 결정을 한 것 같다”며 허탈해했다.

● 직원들 대량실직 위기

대백은 2010년대 중반 유통의 중심 무대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급속히 전환되면서 휘청이기 시작했다. 신세계 현대 롯데 등 대기업 백화점이 잇따라 대구에 개점하면서 위기는 더욱 가중됐다. 2018년 사상 최대 영업손실액인 184억 원을 기록했다.

경영진은 구조 조정을 단행했다. 2016, 2017년 433명이던 직원을 289명으로 줄였다. 이어 2019년까지 217명으로 감축했고 지난해 말 193명까지 줄였다.

대백은 1999년 로컬 매장의 한계에서 벗어나기 위해 온라인몰을 개설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했다. 2017년 4월 동대구역 인근에 대백아웃렛을 열었지만 개점 3개월 만에 수십억 원대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결국 개점 1년여 만에 현대백화점과 임차 계약을 맺고 아웃렛을 폐점했다.

대백은 2019년 본점 지하에 삐에로 쇼핑몰을 유치하기도 했다. 삐에로 쇼핑몰은 경쟁 유통업체인 이마트의 계열사여서 “향토백화점의 자존심을 굽히는 파격적 시도”라는 평가가 많았다. 하지만 삐에로 쇼핑몰 역시 부진을 거듭했고 결국 개점 5개월여 만에 폐점했다.

대백 본점이 문을 닫으면 대규모 실직 사태가 불가피하다. 현재 지하 1층부터 지상 11층까지 215개 업체가 입점한 상태다. 매장마다 브랜드 본사가 중간 관리자와 계약을 맺고 있다. 매장마다 1∼3명이 근무하는 점을 감안하면 약 300명이 일자리를 잃게 될 수 있다. 다만 본점 직원 일부는 프라자점으로 이동할 것으로 예상된다.

협력업체 직원들도 실직 위기에 놓였다. 대백의 지난해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본점과 프라자점에서는 청소와 주차관리 업무 등에 324명이 근무하고 있다. 본점 주차관리 직원은 “일자리 찾는 것 때문에 너무 골치가 아프다”며 인터뷰 요청에도 응하지 않았다.

● 프라자점 집중한다지만 미래 불투명

대백은 프라자점을 중심으로 삼고 남은 역량을 집중하는 ‘선택과 집중’ 전략으로 돌파구를 찾고 있다. 중구 대봉동 주변에 신축 아파트가 다수 들어서는 만큼 주민 생활 밀착형으로 매장을 변화시킬 계획이다. 하지만 프라자점도 백화점 기능을 사실상 상실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1993년 오픈한 이후 한강 이남 최대 규모를 자랑했으나 대기업 백화점의 대구 진출 이후 명품 브랜드가 하나둘 빠져나가면서 예전의 위상을 되찾지 못하고 있다.

대백 본점 안팎은 각종 소문에 휩싸였다. 지난달 26일 열린 주주총회에서 구정모 회장은 매각설에 대해 “결정된 바 없다”고 일축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중국 자본이 1500억 원에 매수한다거나 오피스텔 개발업체와 긴밀히 접촉하고 있다는 소문들이 돌고 있다.

대백 본점 폐점과 매각은 대표이사 가족들 배만 불린다는 지적이 나온다. 본점 입점 매장은 1년 단위로 계약을 자동 갱신하는데 6∼8월 사이가 만기라서 대백으로서는 지출해야 할 위약금이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또 청소와 주차관리 요원 등은 협력업체 소속으로 대백이 퇴직금 등을 부담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부동산업계에서는 본점 가치를 2000억 원대로 추산하고 있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건물과 대지 공시가 등을 토대로 시세를 환산하면 2000억 원대로 보인다. 실제 개발업체가 이 금액을 제시해 대백이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명민준 기자 mmj86@donga.com
#대구#향토 백화점#대구 백화점#폐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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