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이 없는데 무슨 장사” 텅빈 거리엔 한숨만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2월 20일 03시 00분


코멘트

[봄은 오는데 꽁꽁 얼어붙은 대학가 상권]

대학들이 코로나19 여파로 지난해에 이어 올해 봄 학기에도 비대면 수업 방침을 이어가면서 신입생 환영회 등으로 북적여야 할 대학가에 비상이 걸렸다. 15일 오후 7시경 서울 관악구 서울대입구역 인근 ‘샤로수길’에 행인이 없어 썰렁하다. 이윤태 oldsport@donga.com·이지윤 기자
대학들이 코로나19 여파로 지난해에 이어 올해 봄 학기에도 비대면 수업 방침을 이어가면서 신입생 환영회 등으로 북적여야 할 대학가에 비상이 걸렸다. 15일 오후 7시경 서울 관악구 서울대입구역 인근 ‘샤로수길’에 행인이 없어 썰렁하다. 이윤태 oldsport@donga.com·이지윤 기자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 정문 앞.

인근에 대학로까지 있는 이곳은 평소 대학생을 비롯해 젊은층들이 많이 몰리는 지역이다. 특히 해마다 이때쯤이면 더욱 유동인구가 늘어난다. 졸업식을 전후로 새내기 환영회, 오리엔테이션(OT) 등이 빈번해지며 입학식 시즌까지 밤늦도록 왁자지껄하다.

하지만 올해는 다르다. 해 질 녘부터 휑했던 거리는 저녁식사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지나가는 학생을 찾아보기 힘들다. 어렵사리 마주친 몇몇 대학생도 “잠깐 친구만 만나고 집에 가는 길” “학교에서 처리할 게 있어서…”라며 곧장 사라졌다. 저편에 서 있는 대학 건물들이 아니라면 대학가의 정취라곤 찾아볼 길이 없다.

성균관대 학생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는 주점 ‘싸코스’는 이런 분위기를 그대로 반영한다. 2002년 이곳에 문을 연 싸코스는 성균관대생들에겐 성지나 다름없다. 웬만한 과모임, 동아리모임의 뒤풀이는 다 여기서 열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가게 벽면만 봐도 학생이 붙여놓은 각종 학회와 동아리 포스터가 가득하지만 싸코스는 지난해 12월부터 무기한 휴업에 들어갔다.

“오래 장사해서 그런지 단골 학생들은 ‘저 결혼했어요’라며 소식을 알려올 정도로 관계가 돈독했죠. 하지만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앞에선 다 소용없네요. 지난해 매출이 80% 가까이 떨어져서 버틸 수가 없었습니다. 사회적 거리 두기 2.5단계 시행 이후엔 하루 종일 손님이 없는 날이 허다했죠. 결국 문을 닫고 말았어요.”(서명진 사장·63)

1년 가까이 이어진 코로나19. 음식점과 카페, 주점 등 자영업자 치고 어려움을 겪지 않는 이들이 없지만, 대학가들은 다가오는 봄이 유독 을씨년스럽다. 지난해 내내 겨우겨우 버티면서도 2021학년도 1학기는 달라질 줄 알았건만, 신학기 특수는커녕 분위기는 더 삭막해졌다. 특히 상당수 대학들이 졸업식과 입학식을 온라인으로 전환하고, 1학기 수업 역시 지난해처럼 비대면으로 진행하기로 결정하면서 상황은 더 악화되고 있다. 대학가 주변 원룸과 하숙집들은 월세를 낮춰도 찾는 학생이 없다며 울상이다.

○ 과잠이 사라진 대학가… 졸업식 없어 꽃집도 울상
서울대 인근 자취촌인 대학동의 한 상가에 ‘임대’ 현수막이 걸려 있다. 이윤태 oldsport@donga.com·이지윤 기자
서울대 인근 자취촌인 대학동의 한 상가에 ‘임대’ 현수막이 걸려 있다. 이윤태 oldsport@donga.com·이지윤 기자

서울 관악구 지하철 2호선 서울대입구역 인근에서 호프집을 운영하는 이선영 씨(50·여). 강남구 가로수길에 빗대 ‘샤로수길’이라 부르는 번화가에 터를 잡은 지 3년째지만 요즘처럼 답답한 경우는 처음이다.

“오후 7시 반인데 거리에 사람이 한 명 없네요. 진짜 ‘쥐죽은 듯 조용하다’는 말을 이럴 때 쓰는 건가 봐요.”

이 씨가 운영하는 호프집은 건물 한 층을 통째로 쓸 정도로 규모가 크다. 하지만 현재 아르바이트생도 없다. 지난해 3월 코로나19가 터진 뒤 한 명씩 내보내기 시작해 이젠 남편과 둘만 남았다.

2019년 5월 호프집을 차릴 때만 해도 이 씨는 너무 바빠서 행복했다. 다양한 수제맥주를 저렴한 가격에 선보여 ‘과잠(대학 과 점퍼)’을 입은 학생들이 많이 몰려들었다. 과 행사나 모임 뒤풀이는 예약을 하지 않으면 자리 잡기도 힘들 정도였다.

하지만 모든 자영업자들처럼 코로나19를 피해 갈 순 없었다. 월 2000만 원이 넘던 매출은 올해 1월 400만 원도 안 되는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이 씨는 “월세 330만 원 내기도 빠듯하다. 재료비나 공과금 등 다른 고정 지출 500만 원은 그대로 적자가 되는 셈”이라고 말했다.

갈수록 쌓여가던 빚에 허덕이는 이 씨 부부는 결국 최근 평생을 일해 장만했던 집을 처분했다. 다른 집으로 이사하며 남은 1억 원은 그대로 빚 갚는 데 들어갔다. 이 씨는 “달리 방법이 없어 이러고 있지만, 신학기 특수도 이미 물 건너갔다. 이대로라면 여름까지 버티기 힘들 것 같다”며 울먹였다.

하지만 대학가 자영업자들에게 들려오는 소식은 여전히 한숨만 나오게 만든다. 연세대는 1학기 전 수업을 비대면으로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실험·실습 수업은 거리 두기가 1단계로 내려갈 경우에만 대면으로 진행한다고 한다. 서울대와 고려대, 한양대 등도 사정은 엇비슷하다.

이화여대는 최근 22일 예정됐던 학위수여식을 취소하고 온라인으로 진행한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어렵사리 코로나19를 견디며 졸업식 특수를 고대하던 꽃집 등은 그야말로 청천벽력이다. 인근에서 17년째 꽃가게를 운영하는 A 씨는 “원래 졸업식 시즌인 2월은 매출이 3000만 원을 넘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올해는 150만 원도 안 될 것 같다”고 전했다.

한양대 인근에서 치킨가게를 운영하는 김계원 씨(64)는 최근 배달도 직접 뛰고 있다. 어떻게든 꾸려가려고 매일 오전 9시면 일을 시작하지만, 고객은 씨가 마른 지 오래. 간혹 단골들에게 주문이 들어오면 직접 요리를 가져간다. 김 씨는 “일단 학생들이 대학가에서 사라져 주문 자체가 없다. 배달대행 서비스에 맡기면 수수료 떼고 남는 게 없어 그냥 배달까지 맡고 있다”고 했다. 그렇게 버는 돈은 지난해 같은 기간의 반도 되질 않는다고 한다.

2월 특수가 사라진 대학가는 밤이 되면 더욱 삭막하다. 갈수록 휴업이나 폐업을 선택하는 자영업자들이 늘어나 거리 자체가 어두침침해졌다. 수도권에 있는 A대학 주변 상가연합회 관계자는 “이미 지난해 20% 안팎의 업소들이 문을 닫거나 무기한 휴업에 들어간 상태였다. 그나마 올봄이 찾아오면 사정이 나아질 줄 알았는데 분위기는 더 나빠졌다. 폐업 절차 등을 알아보는 동료 상인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며 답답해했다.

○ “월세 10만 원씩 내려도 공실만 가득”
“지난해 이맘때쯤 월 50만 원씩 받아도 빌려줄 방이 없었거든요. 근데 지금은 40만 원까지 낮췄는데도 문의 전화가 없습니다. 오히려 기존에 살고 있던 학생들도 나가겠다고 하네요….”

서울 성북구 고려대 인근에서 10년째 원룸 임대업을 해온 장모 씨(79)는 요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원래 대학가는 2월 초순만 돼도 가까운 곳에선 방을 구하기 힘들다. 하지만 올해 장 씨가 꾸리는 원룸 18개 가운데 아직 7개나 공실로 남아있다. 심지어 최근 고려대가 비대면 수업 방침을 밝힌 뒤 학생 2명이 이달 말 방을 빼고 고향으로 내려간다고 통보해왔다. 장 씨는 “세를 더 낮춘다고 해서 누가 찾아올 것 같지도 않아서 더 걱정”이라고 말했다.

2004년부터 성동구 한양대 인근에서 여학생 전용 하숙집을 운영해온 이정순 씨(65)도 며칠째 잠이 통 오질 않는다. 방 20개 가운데 절반이 비어있는 상태기 때문이다. 월세를 기존 45만 원에서 35만 원으로 낮췄는데도 별 소용이 없다고 한다.

이 씨는 “학생들에게 부탁해 한양대 온라인 커뮤니티에 소개 글도 올렸지만 큰 효과는 못 봤다”면서 “최근 한 달 사이에 1, 2명 문의가 왔을까…. 올해는 아직 새로 들어온 학생이 1명도 없다”며 한숨지었다.

학생들 입장도 난처하긴 마찬가지다. 대학가에서 아무리 방세를 낮춰도 쉽게 들어갈 엄두가 나질 않는다. 수업은 대부분 비대면인 데다 도서관 등 주요 시설은 문을 열지 않아 학교 인근에 있을 이유가 없다. 게다가 대학가 상권이 몰락하면서 아르바이트 자리도 씨가 말라버렸다. 그나마 짭짤했던 과외도 대면 수업이 어렵다 보니 불가능하다.

연세대 경제학과에 재학 중인 강진우 씨(21)도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학교에 가지 않고 부산 고향집에 머물기로 했다. 올해 수강 과목 모두가 비대면 수업으로 결정됐기 때문이다. 강 씨는 “요즘은 수업 조모임조차도 줌으로 진행해 서울에 갈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문제는 상황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지만 별다른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부가 다양한 지원책을 내놓곤 있지만, 대학가 자영업자들은 ‘언 발에 오줌 누기’라고 했다. 서울 홍익대 주변에서 작은 커피숍을 하는 최모 씨(48)는 “결국 대학가 상권은 대학 정책이 어떻게 결정되느냐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며 “학생들이 대학에 오지 않아 분위기가 살지 않으면 결국 다른 유동인구의 유입도 줄어들게 된다. 그렇다고 코로나19 시국에 누굴 탓할 수도 없으니 더 답답한 지경”이라고 말했다.

이윤태 oldsport@donga.com·이상환·김수현 기자
#코로나#졸업#입학식#비대면 수업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