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 명인열전]25년간 남도땅 누비며 옛 지명 되살린 ‘현대판 김정호’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1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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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천기철 ‘땅끝문화’ 출판사 대표

천기철 씨가 해남군 해남읍 뒷산인 금강골에서 자신이 제작한 ‘해남 트레킹 안내도’를 펼쳐 보이고 있다. 천 씨는 고향의 산과 들녘을 다니면서 옛 지명을 찾아주고 골짜기와 약수터에 이름을 붙여줬다. 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천기철 씨가 해남군 해남읍 뒷산인 금강골에서 자신이 제작한 ‘해남 트레킹 안내도’를 펼쳐 보이고 있다. 천 씨는 고향의 산과 들녘을 다니면서 옛 지명을 찾아주고 골짜기와 약수터에 이름을 붙여줬다. 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전남 해남군 해남읍에서 출판사 ‘땅끝문화’를 운영하는 천기철 씨(62)는 ‘현대판 김정호’로 불린다. ‘대동여지도’를 만들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을 세 번이나 답사하고 백두산을 일곱 번이나 올랐다는 고산자 김정호(1804∼1866). 남도 땅 구석구석을 헤집고 다니면서 정확하고 올바른 지도를 만드는 일을 평생의 업으로 삼아온 천 씨는 그런 점에서 고산자의 후예라고 부를 만하다.

지도 제작은 현장 실측 등에 대한 전문성이 없으면 어려운 일이다. 이 때문에 보통 사람이 지도를 만든다는 것은 좀처럼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지금까지 그의 손을 거쳐 세상의 빛을 본 지도는 130여 종. 축척 1만5000분의 1 정밀 지도부터 그림으로 제작한 지도에 이르기까지 그의 지도에는 25년 넘게 산과 들을 헤매며 흘린 땀이 그대로 녹아 있다.

○지도는 발품의 결과물


천 씨의 ‘지도쟁이’ 꿈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싹텄는지 모른다. 사회과부도를 유난히 좋아해 책을 닳도록 봤다고 한다. 고교 시절에도 지구본을 보고 세계지도를 그리는 것이 취미였다. 하지만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졸업 후 출판사 등 몇몇 회사를 다니면서 한동안 지도를 잊고 살았다. 그런 그를 지도와 다시 이어준 것은 산이었다.

30대 후반에 직장을 그만둔 천 씨는 고향인 해남에 속셈학원을 차리고 부인에게 운영을 맡긴 채 지도 한 장을 길잡이 삼아 무작정 이 산 저 산을 올랐다. 그런데 산행을 하면서 지도에 나온 지명이 틀리거나 실제 위치와 다른 것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현지 주민들도 모르는 엉뚱한 지명이 지도에 수록되고 심지어 행정기관에서 만든 이정표조차 틀린 게 있더라고요. 그래서 정확한 지도를 만들어보자고 생각했어요.”

‘금쇄동기’ ‘고산유고’ ‘대둔사지’ ‘은적사기’ 등 고문헌과 한글학회가 1986년 펴낸 ‘한국지명총람’을 찾아 읽고 해남의 명산인 두륜산으로 본격적인 답사에 나섰다.

문헌에 나온 옛 지명의 실제 장소를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산 정상에 올라가서 사진을 찍고 지형을 살핀 다음 옛 지명의 장소로 추측되는 곳을 샅샅이 뒤졌다. 골짜기를 오르내리고 바위 암벽을 타는 것은 기본이고 길조차 없는 잡목 숲을 헤매다가 길을 잃어버리기도 했다. 답사를 통해 장소를 찾으면 인근에 사는 사람들을 만나 확인 절차를 거쳤다.

그는 지도 작업을 위해 두륜산을 1000번 이상 올랐다. 그런 땀의 결실로 대둔사지에 나온 두륜산 인근 옛 마을 지명을 대부분 찾고 골짜기에 이름도 붙여줬다.

“지도는 발품의 결과물입니다. 눈을 감으면 산의 모든 줄기와 길이 훤히 떠오를 만큼 몸으로 누비고 다녀야만 한 장의 지도가 완성됩니다.”

○남도의 숨은 역사·지리를 찾아서


잃어버린 터와 샘물, 바위 등을 찾는 답사도 계속했다. 문헌에만 남아 있는 신비한 역사, 구전으로만 떠도는 전설 같은 이야기를 확인하는 작업이었다. 그는 2년 전 두륜산 암자 샘터 중 하나인 고산천(孤山泉)을 발굴해 세상에 그 존재를 알렸다. 대둔사지에는 ‘고산천은 자정을 기하여 일 년 중 어느 땐가 통출(通出)하는데 절에 사는 스님들이 이 물을 길어다 병을 치료했다’라고 쓰여 있다. 고산 윤선도(1587∼1671)가 해남으로 낙향했을 때 이 물을 길어다 차를 달였다고 해 고산천으로 불렸다고 한다. 주변이 흙으로 덮여 있어 정확한 위치가 알려지지 않았지만 천 씨는 희미한 옛 기록에 의지해 수십 차례 발품을 마다하지 않는 집념으로 고산천을 찾아냈다.

그는 고산천과 함께 주상절리, 흔들바위를 ‘두륜산 3대 발견’으로 꼽는다. 두륜산 도솔재 주변에 높이 20m, 폭 80m가량의 돌기둥이 육각형 모양으로 펼쳐져 있는 주상절리는 2011년 발견해 예부터 ‘내원석주(內院石柱)’라 불리는 이유를 밝혀냈다. 북암 뒤편에 있는 흔들바위도 2017년 찾아냈다. 기록으로만 남아있었지 200여 년간 위치가 확인되지 않던 바위였다.

“두륜산에서 금수굴과 내원암터, 상도선암터, 원효대, 의상대를 하루에 모두 찾아냈던 날은 평생 잊을 수가 없을 겁니다. 하늘이 저에게 고생했다며 한보따리 선물을 안겨준 것 같았어요.”

그는 “워낙 두륜산을 많이 오르다 보니 지금은 산에서 만나는 사람이 모두 구면이고 도시락 없이 산행에 나서도 밥 굶는 일은 없다”며 웃었다.

천년고찰 미황사가 있는 달마산도 500번 넘게 올랐다. 중봉에서 동쪽으로 등산로를 따라가다 100m쯤 아래 바위틈에 꼭꼭 숨어있는 ‘금샘’과 ‘초의선집’에 기록된 달마산의 12개 암자터도 발굴해 달마산 안내도에 수록했다.

○땅끝 이름 찾아준 주인공


‘해남 땅끝’이라는 남쪽 꼭짓점은 한반도에 발 딛고 사는 사람에게 하나의 로망이다. 실제로 많은 이들이 땅끝을 찾는다. 단지 가보고 싶은 여행지 중 하나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땅끝에 서면 지친 영혼에 생기를 불어넣어 줄 무언가가 있으리라 기대하기 때문이다.

땅끝이라는 이름은 1995년 이전까지 한자 이름인 ‘토말(土末)’로 불렸지만 천 씨가 ‘땅끝 해남 주변지도’에 처음 표기한 이후 해남군 지명위원회가 공식 지명으로 인정했다. 이를테면 그가 ‘땅끝 라이선스’를 갖고 있는 셈이다.

땅끝 해남 주변 지도 제작을 계기로 출판사를 차렸다. 지도 편집을 위해 광주로, 서울로 오르내리는 것이 번거로워서였다. 매일 산에 다니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겼던 부인은 첫 지도를 내놓자 든든한 파트너가 됐다. 디자인을 배워 편집과 안살림을 도맡았다.

천 씨가 만드는 지도들은 답사객이나 등산객들의 안내서뿐 아니라 역사학자들의 논문 자료로도 활용되고 있다. 그의 지도가 철저한 문헌고증과 현장답사를 통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항공측량 기법과 위성위치확인시스템이 발달한 첨단 시대지만 그는 김정호의 후예답게 정밀한 지도를 만들기 위해 여전히 발품을 판다. 개발 등으로 현장이 늘 변하기 때문에 발로 확인하고 바뀐 것은 수시로 보완작업을 하면서 ‘변화’를 지도에 반영하고 있다.

“지도는 옛사람들의 역사이며 지도에 담긴 지명은 당시 사람들의 약속입니다. 소중한 지명들이 세월과 함께 사라지는 게 안타까워 지도 제작에 뛰어들었고 한 번도 후회한 적은 없습니다.” 천 씨가 지금까지 고향의 산자락과 들녘을 보듬고 사는 이유다.

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남도땅#해남#김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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