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7곳 전전 재활난민 신세 “전역하는 6개월 후가 더 걱정”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8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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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소 버스사고로 하반신 마비 전숭보 병장, 군생활보다 힘든 치료생활

18일 오전 경기 양평군 국립교통재활병원 1층 로비. 이 병원 4층에 입원해 있는 전숭보 병장(23)이 휠체어를 타고 내려왔다. 가슴 부위 아래 전체가 마비된 전 병장은 팔 힘만으로 몸을 지탱하고 있었다. 전 병장의 머리 정수리 부분에는 20cm가 넘는 봉합수술 자국이 보였다. 매일 투약하는 많은 양의 약 때문에 말투가 어눌해졌다는 그는 표정만큼은 밝아 보였다.

2017년 12월 입대한 전 병장은 이달 10일이 전역일이었다. 하지만 스스로 전역 날짜를 6개월 뒤로 미뤘다. 민간인 신분이 되면 치료비를 직접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국방부가 치료비를 대주고 있다. 그는 “6개월 뒤엔 추가 전역 연장을 할 수가 없는데 제대 후 닥칠 일들이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하반신 마비로 휠체어를 탄 전숭보 병장이 18일 경기 양평군 국립교통재활병원에서 주먹을 쥐어 보이며 웃고 있다. 양평=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
하반신 마비로 휠체어를 탄 전숭보 병장이 18일 경기 양평군 국립교통재활병원에서 주먹을 쥐어 보이며 웃고 있다. 양평=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
전 병장은 지난해 1월 2일 강원 양구군에서 군용버스를 타고 가다 20여 m 계곡 아래로 추락하는 사고를 당했다. 당시 훈련병이었던 그는 훈련소 퇴소를 일주일 앞두고 있었다. 이 사고로 군용버스에 타고 있던 훈련병 20명과 운전병, 인솔 부사관까지 모두 22명이 크고 작은 부상을 당했다. 전 병장은 척추뼈와 목뼈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었다. 사고 버스를 탔던 훈련병 중 전 병장을 제외한 나머지 19명은 모두 전역했다.

사고 후 그는 죽을 고비를 여러 차례 넘겼다. 피가 멈출 때까지 기다리느라 사고 후 열흘 동안 수술을 하지 못하고 버텼다고 한다. 당시 전 병장의 아버지는 고통스러워하며 병상에 누워 있는 아들을 보며 “제발 살려만 달라”고 의사들에게 애원했다. 어머니는 “사고 후 병원으로 이송된 아들에게 간호장교가 이름을 묻자 아들은 입안에 흙을 잔뜩 머금은 채로 이름이 아닌 ‘21사단 63연대 97번 훈련병’만 수차례 외쳤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전 병장은 수술을 받기 전까지 “왜 하필 내가 이런 사고를 당해야 하나”라며 울부짖는 날이 많았다고 한다. 전 병장은 사고 후 열흘 만에 11시간에 걸친 대수술을 받았다.

전 병장의 부모는 아들을 볼 때마다 ‘헌신짝처럼 버려지는 군인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며 울먹였다. 전 병장은 그동안 병원을 7번이나 옮겨야 했다. 수가 삭감을 우려한 민간 병원들이 입원 치료를 받아야 하는 전 병장을 3개월 이상 받아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부가 과잉 진료를 막고 위중한 환자를 우선적으로 치료하기 위한 목적에서 장기 입원 환자를 두는 병원에 대해서는 수가를 삭감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전 병장은 석 달마다 다른 병원을 찾아다녀야 하는 실정이다. 전 병장의 어머니는 “사정이 이런데 어느 부모가 자식을 마음 놓고 군대에 보낼 수 있겠느냐”면서 “사고 버스 정비를 담당했던 군인 등 책임자들로부터 아직까지 사과도 못 받았다”며 답답해했다.

전 병장은 지난해 1월 2일 강원 양구군에서 군용버스를 타고 가다 20여 m 계곡 아래로 추락하는 사고를 당했다(왼쪽 사진). 오른쪽 사진은 전 병장이 입대 전 복싱대회에 출전했을 때의 모습. 춘천소방서·전숭보 병장 제공
전 병장은 지난해 1월 2일 강원 양구군에서 군용버스를 타고 가다 20여 m 계곡 아래로 추락하는 사고를 당했다(왼쪽 사진). 오른쪽 사진은 전 병장이 입대 전 복싱대회에 출전했을 때의 모습. 춘천소방서·전숭보 병장 제공
전 병장은 입대 전 복싱 선수를 꿈꿨을 만큼 누구보다 건강한 20대 청년이었다. 실제로 복싱 대회에 출전해 입상하기도 했다. 시력이 나빴던 그는 현역병으로 입대하지 못할까 봐 신체검사를 앞두고 라섹 수술까지 받고 신체등급 1급으로 입대했다. 하지만 사고 후 많은 것이 달라졌다. 하반신 마비로 똑바로 앉아 있는 것조차 힘들다. 혼자서는 대소변도 해결할 수 없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수술 후 6개월이 지났을 무렵부터 휠체어 타는 연습을 시작했다. 처음엔 혼자서 휠체어에 앉는 것도 힘들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전 병장은 지난달 처음으로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혼자 휠체어에 올라 앉는 데 성공했다. 그는 이 장면을 동영상으로 찍어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렸다. 이를 본 사람들이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좌절하고 있었는데 덕분에 힘을 낼 수 있게 됐다”는 등 글을 남겼다. 전 병장은 “한 사람이라도 제 모습을 보며 희망을 얻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영상을 올렸다”고 말했다. 전 병장은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 올해 국립재활원에서 스포츠 체험을 한 뒤 농구에 재미를 붙였다. 프로농구 선수들의 경기 영상도 챙겨 보며 연습하고 있다. 전 병장은 “전역 후 휠체어농구 국가대표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양평=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
#전숭보 병장#양구 군용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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