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국적기 이용 폐지로 지역 중소여행사 도산 위기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1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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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달청 등 주거래 여행사 심사 때 국내 상위권 여행사로 잇달아 낙찰
중소 규모 지방 여행사 폐업 위기

공무원들의 해외출장 및 연수 시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항공 등 국적기 이용을 권장하는 정부항공운송의뢰제도(GTR)가 폐지된 뒤 정부기관의 항공기 발권 업무 등이 대형 여행사로 집중되고 있다. 이에 따라 해당 기관에 특화된 전문성이 있는 중소 여행사는 대기업에 밀려 도산 위기를 맞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9일 조달청 등 정부대전청사 입주기관 등에 따르면 기획재정부와 인사혁신처는 공무원들의 해외 출장 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이용을 권장한 GTR를 38년 만인 10월 말 폐지했다. 이 제도는 좌석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데다 변경·취소 과정에서 수수료도 부과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비행기표 값이 다소 비싼 편이다. 정부는 공무원의 국외여행 증가, 항공시장 다변화 등의 환경 변화로 이 제도를 폐지하고 11월부터는 정부기관마다 경쟁 입찰을 통해 ‘주거래 여행사’를 선정토록 했다. 또 현지 숙박 및 교통예약 등도 2, 3년간 맡길 수 있도록 했다.

이에 따라 조달청은 이달 8일, 식품의약품안전처와 농촌진흥청은 19일, 각각 조달청의 국가종합전자조달시스템인 나라장터를 이용한 공개경쟁입찰을 통해 주거래 여행사를 심사했다. 그 결과 모두 국내 최대 여행사인 H사가 최종낙찰자로 결정됐다. 28일 실시한 농림축산식품부 입찰도 국내 여행업계 2위인 M사로 낙찰됐다. 조달청은 8개 여행사가, 농촌진흥청과 식약처는 각각 10개, 12개 업체가 응찰했으며, 농식품부는 15개 업체가 응찰했으나 중소 여행사는 모두 떨어져 ‘강자 독식’ 양상이 나타난 것.

지역 여행업계에서는 공무원 출장·연수 시장이 대형 여행사에 집중되면서 중소 규모의 여행사들은 폐업 위기를 맞고 있고, 이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이라는 현 정부의 철학과도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행업계의 한 관계자는 “업체 선정 시 가격평가 10%, 국제선 항공권 발권 실적과 신용평가등급 등 정량평가를 20%로 묶어 대기업과는 도저히 경쟁할 수 없는 조건을 만들어 놓았다”고 주장했다. 다른 관계자는 “중소 여행사의 경우 해당 기관 공무원의 해외출장의 성격에 맞는 전문성을 키워 왔다”며 “이 같은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고 큰 회사에만 몰아주는 구조”라고 비판했다.

다음 달 4일 주거래 여행사 선정에 나서는 산림청도 비슷한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산림청의 경우 그동안 대전 지역을 비롯한 여행사 2, 3개가 항공권 발권과 산림 관련 해외 기관 섭외 및 숙박을 담당하며 여행사로서 산림분야 전문성을 키워 왔으나 GTR 폐지 파편을 맞게 될 위기에 처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여행 분야 대기업의 경우 특수 목적을 지닌 공무원들의 해외연수 및 출장에 대해 전문적이고도 세세하게 응대할 수 없는 문제점이 나타날 수 있다”며 “외양간을 고치다 소를 잡는 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에 대해 산림청 관계자는 “현재로선 기재부 등의 권고와 앞선 입찰 진행 사례에 따라 진행할 계획”이라며 “우려되는 사항에 대해선 더 많은 검토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기진 기자 doyoc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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