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공립 지을 돈 20분의 1이면 돼”… ‘공영형 유치원’이 대안될까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29일 03시 00분


코멘트

[사립유치원 비리 대책]사립서 공영형 전환 유치원 가보니

창고처럼 쓰던 공간이 아이들 도서실로 국내 첫 공영형 사립유치원인 서울 서대문구 한양제일유치원의 복층 
공간엔 방석에 앉아 책을 읽을 수 있는 도서실이 있다. 공영형으로 전환한 후 교육청 예산을 지원받아 쓰지 않던 공간을 
교육친화적으로 바꿀 수 있었다. 박은서 기자 clue@donga.com
창고처럼 쓰던 공간이 아이들 도서실로 국내 첫 공영형 사립유치원인 서울 서대문구 한양제일유치원의 복층 공간엔 방석에 앉아 책을 읽을 수 있는 도서실이 있다. 공영형으로 전환한 후 교육청 예산을 지원받아 쓰지 않던 공간을 교육친화적으로 바꿀 수 있었다. 박은서 기자 clue@donga.com
“원래 창고처럼 썼던 곳입니다.”

25일 찾은 서울 서대문구 한양제일유치원 2층 다락방에는 유아용 방석과 쿠션, 유아용 책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벽과 천장은 나무를 본뜬 조형물들로 장식돼 있었다. 아이들이 아늑한 공간에서 책을 읽을 수 있도록 만든 도서실로 한눈에 봐도 새것 느낌이 물씬 풍겼다.

이 유치원 이인옥 원장은 “과거 비용 부담에 시설 투자는 엄두조차 못 냈는데 지난해 ‘공영형 유치원’으로 전환하면서 교육환경이 몰라보게 좋아졌다”고 말했다. 현재 2층 도서실 옆은 교재 자료실로 쓰고 있다. 원래 물탱크가 있던 곳인데 교육청 예산을 지원받아 직수 설비를 갖추면서 물탱크를 없앴다.

○ 공영형 전환의 최대 수혜자는 학부모

비리 유치원 사태를 계기로 ‘공영형 유치원’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공영형 유치원은 기존 사립유치원처럼 개인 소유를 인정하면서 정부가 국공립 수준의 운영비와 인건비를 지원하고 그 대신 정부의 관리감독을 받는 형태다. 사립유치원이 공영형이 되려면 반드시 법인으로 전환해야 한다. 건립비로만 약 100억 원이 드는 국공립유치원을 신설하는 것보다 훨씬 적은 예산(연간 5억∼6억 원)으로 사실상 국공립유치원을 확대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이 때문에 가장 효율적인 국공립유치원 확대 방안으로 꼽힌다. 하지만 현재 전국에 공영형 유치원은 서울 4곳, 대구 1곳 등 5곳에 불과하다. 기자가 찾은 한양제일유치원은 지난해 3월 서울시교육청이 전국 최초로 선정한 공영형 유치원 2곳 중 하나다.

그로부터 1년 7개월, 이 유치원에는 어떤 변화가 생겼을까. 유치원과 시교육청 관계자는 한결같이 “최대 수혜자는 학부모”라고 입을 모았다. 학부모 부담금은 공영형 전환 이전 월평균 27만5000원에 달했지만 전환 이후 월 6만5000원으로 4분의 1로 줄었다. 특별활동과 통학차량을 이용하지 않으면 학부모 부담금은 사실상 없다.

○ 입소문 나면서 원아 수 3배로 늘어

원래 중학교 교사였던 이 원장은 대학 교수인 남편과 함께 2001년 유치원을 인수했다. 하지만 저출산 속에 원아 수가 계속 줄었다. 결국 원장 부부가 월급을 반납해야 할 정도로 심각한 운영난을 겪었다. 폐원을 고민하던 2016년 공영형 유치원 사업 소식을 접했다. 일각에서 ‘교육청이 유치원을 빼앗으려는 꼼수’라는 비판이 있었지만 원장 부부는 공영형 전환을 결정했다.

이 원장의 남편인 박태규 이사장은 “애초 돈을 벌려고 유치원을 시작한 게 아니었다”며 “운영비 걱정 없이 아이들 교육에 집중할 수 있으니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고 했다. 공영형으로 전환하면서 연간 교육청으로부터 누리과정 지원금 외에 추가로 인건비와 운영비 명목으로 5억∼6억 원을 지원받고 있다. 유치원이 공립 수준으로 좋아졌다는 소문이 나면서 2년 전 18명이던 원아는 현재 58명으로 3배로 늘었다.

그 대신 포기한 것도 많다. 학교법인을 세우고 자가 소유인 유치원 건물과 토지를 법인 명의로 돌렸다. 이와 별도로 수익용 기본재산 1억1000만 원을 내놓아야 했다. 박 이사장은 이 돈을 교수 퇴직금으로 마련했다. 이사회 5명 중 3명을 교육청과 협의해 외부 인사로 채웠다. 또 매주 외부 전문가의 컨설팅과 분기별 교육청 평가를 받고 있다.

○ 공영형 확대하려면 제도 현실화해야

교육부는 25일 2021년까지 ‘국공립유치원 취원율 40%’를 달성하기 위한 방안 중 하나로 공영형 유치원의 확대를 발표했다. 다음 달부터 공영형 사립유치원 추가 공모를 시작할 예정이다. 문제는 사립유치원들이 얼마나 참여하느냐다.

현재 사립유치원 10곳 중 9곳(87.9%)이 개인 소유인데 이런 유치원들은 법인 전환에 거부감이 크다. 교육부는 법인 전환을 유도하고자 수익용 기본재산 요건을 완화할 방침이지만 설립자인 이사장은 무보수 명예직이라 월급을 받지 못하면서 법인세 등 각종 세금은 매년 내야 하는 등 걸림돌이 적지 않다.

박 이사장은 “운영난이 점점 가중되는 사립유치원 입장에선 공영형이 최적의 대안”이라며 “다만 이미 전 재산을 재단에 출연해 자금 여력이 없는데도 법인 운영에 필요한 비용을 혼자 부담해야 하는 등 법인 전환의 부담이 큰 만큼 정부가 최소한의 경비 지원을 해주는 방향으로 제도를 고쳐야 한다”고 말했다.

박은서 clue@donga.com·김호경 기자
#국공립 지을 돈 20분의 1#공영형 유치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