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장 간첩’ 몰려 사형 49년 만에 ‘무죄’…“고 이수근 씨, 허위자백 개연성 충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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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년 10월 11일 15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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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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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장 귀순 간첩’ 혐의를 받아 1969년 사형당한 고(故) 이수근 씨에 대해 법원이 재심을 통해 반 세기 만에 무죄를 선고했다.

11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부장판사 김태업)는 49년 전 국가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사형 당한 이 씨의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다만 위조 여권을 만들어 출국한 혐의는 유죄로 인정해 징역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 씨는 연행된 이후 40여일 간 불법으로 구금된 상태에서 조사를 받아 각종 고문과 폭행 등 가혹행위로 인해 허위로 자백했을 개연성이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이어 “이 씨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방어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한 채 위장 귀순한 간첩으로 낙인찍혀 생명을 박탈당했다”며 “권위주의 시대에 국가가 저지른 과오에 대해 이 씨와 유가족에게 진정으로 용서를 구할 때”라고 밝혔다.

위조 여권으로 출국한 혐의에 대해서는 “북한의 숙청을 피하기 위해 귀순해 정착한 뒤 중앙정보부의 지나친 간섭과 통제, 북한에 남아 있는 가족에 대한 염려로 출국하는 과정에서 감시를 피하고자 범행을 저질렀다”며 “위법하고 부당한 공권력 행사로 간첩이라는 오명을 입은 점을 참작했다”고 설명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사 부사장으로 재직하던 이 씨는 1967년 3월 판문점 취재 도중 유엔 차량에 올라타 남한으로 귀순했다.

그는 2년 뒤인 1969년 1월 위조 여권을 이용해 스위스로 향하다 경유지인 베트남에서 체포됐다. 북한의 군사적 목적을 위해 위장 귀순해 기밀을 수집하는 등 간첩 행위를 한 뒤 탈출하려 했다는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그는 같은해 5월 1심 법원이 사형을 선고하자 항소를 포기했고, 두 달 뒤 사형이 집행됐다.

이 사건에 대해 지난 2006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과거사위)는 “중앙정보부가 북한 거물급 인사였던 이 씨의 귀순을 체제 우위 상징은 선전했지만, 해외로 탈출하자 위장간첩으로 조작했다”며 “사실 확인도 없이 졸속으로 재판이 끝났고, 위장 귀순이라 볼 근거도 없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과거사위는 이 씨의 재심을 권고했고, 대검찰청은 지난해 9월 이 씨의 재심을 청구했다.

박태근 동아닷컴 기자 pt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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