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의 3배 줄테니”…국내 디스플레이 핵심기술 연구원, 中업체 유혹에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5일 13시 4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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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연봉보다 3배를 더 줄 테니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핵심 기술을 갖고 넘어와라.”

국내 디스플레이 장비 생산업체 연구원 A 씨는 올해 초 은밀한 제안을 받았다. 중국 업체에서 A 씨에게 접근해 핵심기술을 빼돌리는 조건으로 거액의 연봉을 제시한 것이다. 솔깃해하던 A 씨와 중국 업체 간에 이야기가 진전되던 중 국가정보원 첩보망에 걸렸다. 중국인 등 관련자는 체포됐다. 올해 4월에는 국책연구기관 고위간부 B 씨가 막대한 국가 연구개발(R&D) 자금을 투입해 개발한 풍력 관련 기술을 중국 업체로 유출하고 있다는 사실을 국정원과 검찰이 포착했다. 공조 수사 끝에 기술이 모두 넘어가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세계 1위 수준의 국내 주요 산업기술이 해외로 유출되는 사례가 최근 빈번해지고 있다. 4일 자유한국당 김도읍 의원이 국정원과 경찰청 등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총 152건의 산업기술이 해외로 유출된 것으로 밝혀졌다. 국가 안보나 국가 경제에 중대한 영향을 주는 기술로 분류된 ‘국가핵심기술’도 5년 동안 23건이나 유출된 것으로 나타났다. 유출 분야별로는 전기전자 분야가 57건으로 가장 많았고, 기계 분야가 31건, 조선 분야가 22건으로 뒤를 이었다.

수사당국과 정부는 올해부터 외교 마찰을 우려해 기술 유출 국가를 공개하지 않겠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유출된 기술들이 대부분 중국으로 넘어가고 있는 것이 현실로 지적된다. 김 의원실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까지 유출된 21건의 국가 핵심기술 중 12건이 중국으로 유출됐고, 미국 유럽 캐나다 등 기술 경쟁국들도 포함돼 있었다.

산업기술 유출 문제를 담당하고 있는 정부 관계자는 “유출된 기술의 70~80%는 중국으로 넘어간다고 보면 된다, 조선이나 디스플레이 등 한국이 세계 1위를 달리고 있는 분야가 주된 표적”이라고 말했다. 한 대형 조선 업체 관계자는 “선박 설계와 고부가가치 선박의 연료 장치 및 엔진 기술 등이 주요 표적”이라며 “유출이라고 확인은 안 됐지만 ‘이걸 거기서 어떻게 만들었지’ 싶은 기술 유출 의심 사례도 많다. 수년간 큰돈을 들여 개발한 기술이 한번 유출되면 그 피해는 수천억, 수조 원에 이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유출된 기술이 어디로 넘어갔는지 파악하기 힘든 경우도 있다. 2016년 인도인 M 씨는 국내 대형 조선 업체 협력사에 취업해 회사에서 보유하던 각종 조선 기술을 유출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M 씨는 ‘액화천연가스(LNG)선 연료공급장치 설계기술’, 부유식 원유 채굴 및 보관 설비 기술 등 국가 핵심기술을 이메일과 휴대용저장장치(USB메모리)를 이용해 빼냈다. 하지만 그가 여러 차례 다녀온 인도 현지 수사가 불가능해 어떤 자료를 얼마나 빼돌렸고, 어디로 넘겼는지 확인이 불가능했다. M 씨는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2심에서 집행유예로 감형돼 석방 후 출국했다. 불법 기술 취득을 고의로 했다고 보기 어렵고, 유출된 기술이 영업 비밀로 보기 어렵다는 등의 이유 때문이었다. 피해를 입은 대형 조선업체 관계자는 “조선 산업에서 중요하지 않은 기술은 없다. 기술 안에는 업체의 노하우가 가득 담겨 있다. 작은 기술 하나가 유출 되는 것도 기업 입장에서는 큰 피해다. 처벌도 제대로 안하면 앞으로 유출 사범이고의가 아니었다고 발뺌하면 그만이냐”고 말했다.

정부는 산업 기술 보안을 강화하겠다는 취지에서 산업기술 보안기반 구축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관련 예산은 2016년 약 15억 원에서 지난해 12억5000만 원으로 줄었고, 올해도 예산이 동결됐다. 김도읍 의원은 “산업기술 유출을 담당하는 산업통상자원부도 보안당국과 기술 유출 현황이나 과정 등을 공유하지 않고 있어 현황 파악조차 못하고 있다”며 “기술 유출은 산업 경쟁력을 한번에 무너뜨릴 수 있는 만큼 유출 사범을 엄벌하고, 예방책을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변종국 기자 bj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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