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일은 학교에서만 먹어요”… 급식없는 방학이 두려운 아이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6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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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 행복한가요]‘먹거리 기본권’은 지켜주자



《손우성(가명·9) 군은 세 살 때부터 할아버지(76)와 산다. 5년 전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로 손 군이 거의 매일 먹는 저녁 밥상은 백미밥, 소시지볶음, 김치, 된장찌개. 과일과 채소는 학교 급식 때나 간신히 먹는다. 지난해 빈곤, 가족해체, 부모 실직 등으로 보호자가 식사를 제공하기 어려워 결식 우려가 있는 아동은 31만7234명이었다. 전체 아동(848만447명) 100명 가운데 4명은 하루 세 끼 ‘먹거리 기본권’이 위협받고 있는 셈이다. 아동기 결식과 영양불균형은 성인이 되어서도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쳐 ‘빈곤 대물림’이 될 수 있다.》



아빠는 아파서 몇 년째 병원에 있고 엄마는 베트남으로 돌아갔다. 손우성(가명·9) 군이 할아버지와 단둘이 사는 이유다. 할아버지는 “공부는 꼭 해야 한다”며 기초노령연금으로 꼬박꼬박 손 군의 학원비를 낸다. 그런데 식생활은 할아버지의 돌봄 능력을 벗어난 일이었다. “그냥 내 먹는 대로 같이 먹는 거요.”

21일 손 군의 저녁 식단은 흰쌀밥, 소시지, 된장찌개, 김치였다. 점심으로 먹은 학교급식은 그나마 균형 잡힌 식단이다. 이날 손 군은 간식은 따로 먹지 않았다. 평소에는 보습학원을 다녀와서 김치볶음밥 등 밥을 간식으로 먹고 태권도학원에 간다. 22일 아침 식단은 흰쌀밥, 소시지, 김치찌개, 감자볶음, 매실장아찌였다.

과일은 거의 먹지 않는다. “과일은 학교에서만 먹어요. 어제 급식에는 수박 한 조각이 나왔어요. 체리를 좋아해요. 2학년 때 체리가 급식으로 나왔는데 정말 맛있었어요.” 할아버지는 “할머니 제사에나 사과, 배를 산다. 평소에는 거의 못 사 준다”고 했다. TV 한 편에 놓인 꼬깃꼬깃한 마트 영수증에는 소시지 등 7800원이 적혀 있었다.

고기와 생선 섭취량도 부족했다. 손 군은 “집에서 고기 구워 먹은 기억이 없어요. 고기보다 고등어가 더 먹고 싶어요”라고 했다. 우유는 학교 급식으로 매일 먹고 있다.

손 군은 기초생활수급자에 해당돼 급식카드를 지급받을 수 있다. “급식카드를 쓰시면 한 끼는 편하게 드실 수 있다”고 했더니 할아버지는 “안 쓴다”고 했다. 하루는 급식카드를 가지고 짬뽕을 먹으러 갔는데 사용을 거절당했다. 할아버지는 현금을 지불했고 이후 꼬박 하루 세 끼 밥상을 차린다.

소득에 따라 건강 격차가 벌어지는 현상은 통계로도 입증된다. 동아일보는 중고교생 6만여 명이 참여한 2017년 ‘청소년건강행태온라인조사’ 원자료를 분석했다. 스스로 건강 상태를 평가하도록 했더니 자신이 소득 ‘상’에 속한다고 한 집단의 47.8%가 건강 상태를 ‘매우 좋다’고 평가했다. 소득 ‘하’ 집단(21.3%)보다 2.24배로 많았다. 반면 소득 ‘하’ 집단 3.3%가 건강 상태를 ‘매우 나쁘다’라고 평가했는데 소득 ‘상’ 집단의 5.5배였다. 일주일간 과일 섭취 빈도, 채소 섭취 빈도도 소득에 따라 차이가 컸다.

아동기 식습관이 중요한 이유는 성인이 되어서도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장기적으로 영양 불균형이 계속되면 이런 식습관과 대사과정을 몸이 기억하고 생애 전반의 건강을 좌우할 수 있다. 손 군과 김성민(가명·8) 군의 하루 식단을 분석해 보면 열량은 비슷하지만 김 군이 다양한 영양소를 섭취하고 있다. 필수영양소인 단백질을 섭취한 식품을 비교하면 김 군은 계란 쇠고기 콩 멸치 등 끼니마다 다른 식품을 먹었지만 손 군이 섭취한 식품은 소시지, 탕수육이었다.

초등생은 우유나 유제품을 하루 2개 이상 섭취하도록 권장한다. 김 군은 이날 우유, 요구르트, 치즈를 골고루 먹었지만 손 군이 먹는 건 학교 급식에서 나오는 우유뿐이었다. 서울대병원 김원경 급식영양과 파트장은 “(손 군의 식단을 보면) 채소나 과일, 유제품 섭취가 부족하다. 만약 이런 식단이 계속된다면 비타민 A, C, B2와 칼슘이 부족해질 수 있다”고 했다.

무엇보다 걱정되는 건 어른이 됐을 때 나타날 건강상 문제였다. 그는 “어릴 때 채소를 안 먹다 보면 성인이 되어도 이런 식품을 멀리한다”며 “당장 눈에 보이진 않아도 (다양성이 부족한 식단을 지속하면) 성인이 돼서 만성질환에 노출될 우려가 크다”고 했다.

균형 잡힌 식사를 챙기기 어려운 돌봄 환경이 정서 발달에 영향을 끼친다는 우려도 나온다. 급식카드를 사용하는 아동들은 혼자 식당이나 편의점에서 허겁지겁 식사를 한다. 국립중앙의료원 이소희 정신건강의학과장은 “어린 시절 애착관계가 불안한 경우 정서 불안, 학습 부진뿐만 아니라 대인관계 문제를 겪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2015년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아동복지연구소가 소득에 따른 초등생 건강 실태를 조사한 결과 저소득 가정 아동은 비만율, 우울감을 느끼거나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는 비율도 높았다. 김은정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아동복지연구소장은 “빈곤과 돌봄 공백으로 인한 아동의 건강 불평등은 신체뿐 아니라 정신건강에서도 나타난다”며 “이제는 단순 끼니 해결을 넘어 건강한 먹거리를 제공하는 데 관심을 가질 때다. 돌봄 공백에 놓인 아동에 대한 사회적 지원도 필요하다”고 했다.

김호경 kimhk@donga.com·우경임 기자
#급식#먹거리#영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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