法보다 실적 무서워… 직원이 고발할라… 주52시간 ‘낀 부장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6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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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담 저 부담’ 중간관리자 하소연


“주 52시간 일한다고 회사가 성과 목표를 낮추지는 않습니다. 임원으로 승진하려면 어떻게든 빨리 성과를 내야 하는데 직원들 야근을 시킬 수도 없고….”

주 52시간 근로제 시행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오면서 대기업 건설사에 근무하는 A 부장(50)은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 올해 부장 6년 차인 그는 1, 2년 안에 눈에 띄는 수주 성과를 내 임원으로 승진해야 회사를 몇 년 더 다닐 수 있다. 건설 경기 불황으로 성과 압박은 계속 가중되지만 주 52시간 근로제 도입으로 부원들의 ‘칼 퇴근’을 보장해줘야 한다. A 부장은 지난달부터 회사 방침에 따라 부원들을 모두 오후 5시에 퇴근시키고 있다.

○ “‘칼 퇴근’ 시키면서 성과 내야”

부서의 성과와 부원들의 근무시간을 비롯한 근태 관리를 동시에 책임져야 하는 부장들에게 주 52시간 근로제는 도전이자 압박이다. 대기업 주력 전자 계열사의 B 부장(51)은 25일 “거래처와의 저녁 일정이 많아 주 52시간에 맞추면 도저히 성과를 내기 어렵다”며 “저야 앞으로도 눈치껏 야근을 하겠지만 부원들 사이에서 ‘부장 때문에 편하게 퇴근을 못 하겠다’는 뒷말이 나올까 봐 걱정”이라고 털어놨다.

부원들이 주 52시간 위반으로 사업주를 고발할 경우 책임의 화살을 피할 수 없는 게 부장들이다. B 부장은 “자칫 잘못하면 대표이사가 고발될 수 있어 회사 차원에서 신경을 많이 쓸 텐데 내 밑의 직원이 고발하면 ‘부실 관리’ 책임을 내가 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석유화학에너지 기업 마케팅 부서에서 일하는 C 부장(44)은 직원들의 근로시간을 확인하기가 어렵다고 호소했다. 그는 “회사가 근로시간 관리 시스템을 도입한다고 하지만 얼마나 정확하게 시간 관리가 될지 모르겠다”며 “회사나 윗사람에게 불만을 품은 직원이 매일 초과 근로시간을 따로 기록했다가 퇴사하면서 ‘리벤지(보복) 고소’를 하는 것 아니냐고 우려하는 부장도 있다”고 말했다.

기존 업무 습관이 쉽게 바뀌지 않을 것으로 우려하는 부장들도 적지 않다.

전자업체의 D 부장(51)은 “20년 넘게 거의 매일 오후 10시까지 야근하면서 자발적으로 야근수당을 신청해본 적이 없다. 이 습관이 당장 바뀔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그래도 회식이나 야유회는 많이 줄일 생각”이라고 말했다. 증권사 E 부장(55)은 “해외 주식시장과 연동되는 펀드같이 다양한 상품이 있어 정해진 시간에만 일을 해선 제대로 업무를 볼 수 없다. 어느 직군이나 ‘플러스알파(+α)’를 위해서는 법정 근로시간을 초과할 수밖에 없게 될 것 같다”고 전망했다.

주 52시간 근로제 대상이 아닌 임원의 근무시간에 맞춰야 해서 주 52시간을 지킬 수 없을 것으로 생각하는 부장들도 있다. 건설사의 F 부장은 25일 “법보다는 임원 눈치가 보이는 게 사실이다. 그분이 퇴근해야 나도 집에 갈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 “결국 생산성 오를 것”

하지만 일부 부장은 주 52시간 근로제가 정착되면 ‘일감 부풀리기’ ‘근무 태만’ ‘눈치 야근’ 같은 관행이 사라지고 업무 효율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대기업 마케팅 부서의 G 부장은 “그동안 몇몇 부원이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을 일부러 늦게까지 남아서 하는 ‘할리우드 액션’을 했다. 7월부터는 정해진 시간에 일을 마쳐야 하니 생산성이 올라갈 것”이라고 말했다.

3년 전 탄력근무제를 도입해 주 40시간 근로를 시행 중인 외국계 기업 H 부장(45·여)은 “근로시간을 줄이니 확실히 근무시간에 집중하게 된다. 처음엔 부작용도 있었지만 정착되고 나니 여가 시간을 창의적으로 활용해 결과적으로 회사 성과에 기여하는 직원이 많다”고 말했다.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주 52시간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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