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독해지는 ‘담뱃갑 경고그림’…커질수록 효과↑? 시민들은?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6월 5일 16시 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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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 사회

4일 오후 서울 명동에서 담뱃갑 경고그림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 현장.
4일 오후 서울 명동에서 담뱃갑 경고그림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 현장.
‘이게 뭐지’라며 다가선다. 그림을 본 뒤 다들 얼굴부터 찌푸린다. 목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모습을 보면 누군들 인상을 쓰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럼에도 대학생 김민지 씨(23)를 비롯한 대다수 시민들은 단호했다.

“혐오감보다 더 중요한 건, 담배를 끊게 하는 거 아닌가요? 가장 큰 경고그림을 선택한 이유에요.” 동아일보 취재팀은 4일 오후 서울 명동거리에서 시민 100명을 대상으로 담뱃갑 경고그림 인식조사에 나섰다.

● 시민 10명 중 8명 “경고그림 역겨워도 흡연보다는 낫다”

앞서 보건복지부는 담뱃갑 경고그림을 12월 교체하겠다고 발표했다. 2016년 12월 도입된 현재의 경고그림들이 오래 사용돼 효과가 떨어졌다는 지적이 나왔기 때문이다. 나아가 정부가 현행 담뱃갑 면적의 30% 크기인 경고그림(경고문구 포함 시 50%)을 50% 이상(경고문구 포함 시 70%)으로 확대한다는 방침을 세우면서 “지금도 충분하다”란 흡연자들과 “그림이 더 커져야 한다”는 비흡연자들의 찬반 논란이 거센 상황이다.

4일 오후 서울 명동에서 담뱃갑 경고그림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 현장.
4일 오후 서울 명동에서 담뱃갑 경고그림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 현장.
취재팀은 이날 ①경고그림 크기가 담뱃갑 면적의 30%인 현행 담뱃갑 ②50%인 담뱃갑 ③70%인 담뱃갑 ④70%에 담뱃갑 디자인의 규격·색상을 일원화한 ‘규격화 무광고 포장’(Plain packaging) 담뱃갑 등 4종류 담뱃갑 그림을 시민 100명에게 보여준 후 ‘담배를 끊는데 가장 도움이 될 것 같은 담뱃갑’을 고르게 했다.

담뱃갑 그림이 들어간 게시판을 세우자 사람들은 호기심에 발걸음을 멈추고 네 가지 담뱃갑 중 하나를 골랐다. 그 결과 100명 중 9명만이 ①번 담뱃갑을 선택했다. ②번 담뱃갑을 고른 경우도 12명에 그쳤다. 경고그림이 너무 무서워 지금 크기도 충분하다는 이유였다. 반면 63명은 ④번 담뱃갑을 골랐다. 회사원 최영주 씨(31)는 “그림이 커질수록 혐오스럽지만 금연효과는 클 것 같다”고 말했다.

4일 오후 서울 명동에서 담뱃갑 경고그림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 현장.
4일 오후 서울 명동에서 담뱃갑 경고그림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 현장.
국내 경고그림 크기는 선진국에 비해 작은 편이다. 이 제도를 도입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국 중 경고문구를 포함한 경고그림 면적이 50% 이하인 국가는 한국 칠레 스페인 아이슬란드 등 4개 국가 뿐이다. 태국과 인도는 85% 이상, 호주와 뉴질랜드, 우루과이 등도 80%가 넘는다.

복지부가 담뱃갑 경고그림 크기를 키우려는 이유다. 복지부 정영기 건강증진과장은 “아이코스와 글로, 릴 등 궐련형과 액상형 전자담배에도 경고 그림이 들어간다”며 “장기적으로는 담뱃갑에 브랜드 이름 이외의 로고, 색상, 브랜드 이미지, 판촉 정보 등을 넣지 못하는 ‘규격화 무광고 포장’ 도입도 고려 중”이라고 설명했다. 호주, 프랑스, 영국은 이 제도를 시행해 흡연율을 낮추는데 큰 효과를 봤다.

● 경고그림 효과 막는 꼼수 여전, 벌금 등 제재 필요

전문가들은 담뱃갑 경고그림이 금연효과 뿐 아니라 ‘흡연으로의 진입’을 막는데도 효과가 크다고 강조한다. 이성규 국가금연지원센터장은 “폐암, 후두암, 구강암, 심장질환, 뇌중풍(뇌졸중) 등 흡연으로 유발되는 질환의 위험성이 경고그림을 통해 자연스럽게 각인되고 이는 흡연율 감소로 이어진다”며 “경고그림 크기를 더 확대해야 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실제 질병관리본부의 ‘2017 청소년건강행태’ 조사를 보면 담뱃갑 경고그림을 본 청소년 10명 중 8명(83.1%)은 ‘담배를 피워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캐나다 정부 조사결과 경고그림은 흡연자의 금연 시도를 33% 증가시켰을 뿐 아니라 비흡연자가 담배를 필 확률을 12.5% 감소시켰다. 12월 교체되는 담뱃갑 경고그림 10종 역시 금연효과 뿐 아니라 △비흡연자 흡연예방 효과 △담배에 대한 거부감 △주위 금연권유 의향 등을 고루 평가해 선정했다

문제는 경고그림이 아무리 커져도 ‘꼼수’로 효과를 반감될 수 있다는 점이다. 편의점에 가면 진열대에 담뱃갑이 뒤집어져 전시된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혐오스런 경고그림을 최대한 가리려는 점주들의 조치다. 일명 ‘매너라벨’, 즉 경고그림을 가리는 스티커를 무료로 나눠주는 편의점들도 적지 않다.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이 지난해 10월 전국 담배소매점 2941곳을 조사한 결과 825곳(28.3%)이 담뱃갑을 뒤집어 전시했다. 339곳(11.6%)은 경고그림 가림용 케이스와 스티커 등을 무료로 배포하거나 판매했다. 국내는 경고그림을 가리는 편법을 써도 제재 방법이 없다. 스페인, 독일, 이탈리아 등 40개국에서는 경고그림을 가릴 시 벌금 등으로 규제한다. 한국건강증진개발원 선필호 책임연구원은 “경고그림을 가리는 행위에 과태료를 부과하는 식의 건강증진법 개정이 이뤄져야 경고그림이 더 큰 효과를 발휘할 것”이라고 말했다.

▼ 스웨너 교수 “담배 경고그림 키우는 게 최선은 아냐” ▼

“경고그림은 (흡연율을 줄이는 데) 효과적이다. 하지만 무턱대고 혐오스럽기만 하다면 조만간 그 효과가 사라질 것이다.”

데이비드 스웨너(62) 캐나다 오타와대 법학부 교수는 5일 본보와 서면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스웨너 교수는 금연정책 개발에 앞장서온 공공보건 전문가다. 캐나다 내 정책은 물론 세계보건기구(WHO), 세계은행, 범미국 보건기구(Pan American Health Organization) 등 수많은 정부, 재단, 비정부기구와 협력해 흡연율을 줄이는 효과적인 방안들을 강구해오고 있다.

캐나다는 담배 경고그림을 세계 최초로 도입한 나라다. 스웨너 교수는 이 제도를 도입할 당시 전문가로서 참여하기도 했다.

따라서 누구보다도 제도의 효용을 잘 알고 있는 전문가로서 스웨너 교수는 경고그림의 효용을 높이려면 ‘대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담배경고그림은 흡연자에게 공포를 주는 게 목적인데, 흡연의 공포를 대체할 대안이 없다면 막다른 길에 몰린 흡연자들은 어느 순간부터 그림이 주는 위협을 무시하게 된다. 위험하다는 걸 알지만 끊을 순 없기에 의식적으로 위험을 무시하는 인지부조화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담배의 경고그림을 키우는 게 최선은 아니라고 스웨너 교수는 강조했다. 담배별 유해성에 따라 차별화된 경고그림이 필요하다는 것. 그는 “가장 위험하고 중독성이 강한 건 일반담배인데, 종류별로 유해성이 다른 담배에 모두 동일한 (크기, 종류의) 경고그림을 부착할 경우 일반담배도 다른 담배와 마찬가지라 생각해 계속 피울 수 있다”며 “위험도 차이에 따른 차별화된 관리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자면 담배 종류별 정확한 유해성, 안전성 조사가 기반이 돼야 한다. 스웨너 교수는 “북미와 유럽에서는 이미 궐련형, 액상형 등 새로운 전자담배에 대한 상세한 과학적 분석이 진행 중”이라며 “(한국 정부가) 적절한 과학적 근거에 기반해 유해성을 산출하고 정확한 정보를 소비자에게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스웨너 교수는 “담배의 피해는 주로 ‘흡연(연기를 흡입하는 것)’에서 발생한다”며 “연기를 통해 니코틴을 흡입하는 이들을 내버려 두는 경우 매일 전세계에서 약 2만 명의 사망자가 발생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 때문에 중독증상을 불러일으키는 흡연은 줄이되 니코틴은 흡수할 수 있는 혁신적인 대체제를 만드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안전한 것’만 찾을 게 아니라 ‘덜 위험한 것’을 찾는 것도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그는 “공중보건의 핵심은 위험을 줄이는 것이다. 절대적으로 안전한 것은 어디에도 없다”고 강조했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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