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장 이동시간은? 회식은? 답답한 근로현장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6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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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부, 아직 가이드라인 마련 못해

“임원 운전기사도 주 52시간을 꼭 지켜야 하나요?”

최근 노무사 A 씨가 상담해준 내용 중 하나다. 요즘 이 같은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 하지만 명확한 답을 해주지 못하고 있다. 원칙적으로는 다음 달 1일부터 근로자 300명 이상 기업 임원의 운전기사도 주 52시간만 일해야 한다. 하지만 아침부터 밤까지 일정이 빡빡한 임원들의 ‘발’로 일하는 기사의 근로시간을 주 52시간으로 제한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특히 임원이 일정을 소화하는 동안 기사가 ‘대기’하는 시간도 ‘근로시간’으로 봐야 하는지가 쟁점이다. 근로시간 특례가 적용되는 ‘감시·단속적 근로자’(휴게·대기시간이 긴 경비원 등)로 인정해 근로시간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반면에 대기시간도 포함해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고용노동부는 기사가 대기시간에 휴식을 취하는 등 자유롭게 활용한다면 근로시간에서 제외하고, 그야말로 ‘대기’만 한다면 포함하라고 안내 중이다. 하지만 A 씨는 “‘자율성’이란 개념 자체가 모호하기 때문에 혼란이 많다”며 “정부가 가이드라인(지침)을 준다면 이런 질문에도 명확히 답변해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임원도 ‘근로자’로 보고 근로시간을 단축해야 하는지도 논란이다. 고용부는 과거 “임원이라도 사용자의 지휘와 감독을 받으며 일한 대가로 임금을 받으면 근로자로 봐야 한다”고 행정해석을 내렸다. 하지만 경영계에선 임원은 ‘사용자’로 봐야 한다는 시각이 많다. 어떤 임원을 근로자로 인정해 근로시간을 줄이고 어떤 임원은 현행대로 유지해도 되는지 구체적인 기준은 현재 없는 상황이다.

‘주 52시간 시대’(300명 이상 기업은 7월 1일부터 시행)가 한 달여 앞으로 다가왔지만, 오히려 현장의 혼란은 더 커지고 있다. △거래처와의 식사시간 △장거리 출장 이동시간 △회식시간 △업무 중 흡연시간 등까지 근로시간으로 인정해야 하는지 △해외 파견 근로자의 근로시간(건설업) △외근이 많은 영업직 등의 근로시간을 어떻게 산정할지를 두고도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모두 노동법만으로는 명확히 설명할 수 없는 사례다.

이런 혼란을 방지하고 분쟁을 줄이려면 정부 지침이 필수다. 고용부는 과거 △통상임금 확대 △청년 ‘열정페이’(열정을 빌미로 임금을 제대로 주지 않고 채용하는 행위) 논란 등 노동시장 변화가 생길 때마다 지침을 만들어 현장에 배포했다. 노사가 현행법이나 법원 판례만으로는 적용하기 힘든 만큼 정부가 알기 쉽게 기준을 만들어 현장의 혼란을 줄였다.

하지만 고용부는 근로시간 단축 지침을 아직까지 발표하지 않고 있다. 근로시간을 줄이면서 근로자를 신규 채용한 300명 이상 기업에 1인당 월 60만 원까지 최대 2년간 지원하는 대책을 지난달 17일 내놓은 지도 벌써 보름 넘게 지났다. 국민 세금 4700억 원(2022년까지)이 들어가는 ‘땜질 처방’만 내놓고 정작 근로시간 단축을 조기에 안착시키는 데 필요한 지침에 대해서는 뒷짐만 지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유성열 기자 ryu@donga.com
#주52시간제#근로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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