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국적 차별없는 사회통합의 배움터… 年 25만명 찾아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0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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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평생교육 시대]<3·끝> 독일 시민대학의 열린교육

22일 독일 베를린 시민대학 프리드리히샤인크로이츠베르크지구 사진 수업에서 수강생들이 빛과 어둠을 이용해 다양한 각도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베를린 시민대학 제공
22일 독일 베를린 시민대학 프리드리히샤인크로이츠베르크지구 사진 수업에서 수강생들이 빛과 어둠을 이용해 다양한 각도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베를린 시민대학 제공
24일 오전 11시 독일 뮌헨시 아인슈타인슈트라세 28번지 4층 건물. 층마다 다양한 인종과 나이의 사람들이 환하게 웃는 얼굴 사진이 걸려 있다. 모두 올 3월 아인슈타인슈트라세에 분교가 문을 열 때 돈을 기부한 사람들이다. 교실 풍경도 환했다. 아이부터 백발이 성성한 노인까지 한 교실에서 독일어, 요가, 철학, 사진 등을 배웠다. 얼핏 일반 대학처럼 보이지만 세계적 평생교육시설로 꼽히는 뮌헨 시민대학(Volkshochschule) 모습이다. 뮌헨 시민대학의 모토는 “Open to all”. 인종 국적 나이 차별 없이 모두에게 열려 있다는 의미다.

○ 단순 교육기관 아닌 사회 통합의 장

독일 대부분의 시민대학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소외계층에게 더 나은 교육 기회를 제공하자는 취지에서 만들었다. 그러나 시민대학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뮌헨 시민대학은 1896년 개교했다. 아인슈타인슈트라세 외에도 뮌헨 시내 23곳에 분교를 두고 있다. 연간 운영비 약 400억 원 중 40%가량은 뮌헨시와 바이에른주에서 부담한다. 교육받는 시민은 연간 25만여 명. 수강료는 사설 학원의 절반 수준이다.

시보다 작은 행정단위인 지구에서 각 학교를 관리한다는 점만 제외하면 베를린 시민대학도 시스템은 유사하다. 베를린 시민대학은 각 지구에 12개 분교가 있다. 20∼40대 수강생이 가장 많다. 이들은 대학 대신 시민대학에서 직업교육을 받거나 관심 분야를 공부한다.

나치 시대를 경험하면서 시민대학 성격도 조금 바뀌었다. 교육 기회 확대를 넘어 민주주의를 가르치고 올바른 시민상(像)을 제시하려 노력한다. 이민자나 이민자 2세, 그 가족을 위한 ‘외국어로서 독일어’ 수업을 많이 듣는다.

일각에서는 독일인이 내는 세금으로 왜 외국인과 난민을 지원하느냐고 지적한다. 수자네 마이 뮌헨 시민대학 교장은 “옳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외국인이 독일 사회 일원으로 잘 자리 잡는다면 모두에게 좋은 일”이라며 “뮌헨 시민대학은 단순한 교육기관이 아니라 180여 개국에서 온 사람들이 모이는 국제적 만남의 장소”라고 말했다. 다양한 고민을 나누고 서로 존중하는 법을 배우면 더 성숙한 시민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의미다.

다양한 계층의 수요를 반영해 강좌를 개설할 때 수강생 의견을 적극 참고한다. 3, 4년 전부터 시리아 내전 등으로 난민이 갑자기 늘어나자 뮌헨 시민대학은 새 분교를 지을 계획을 세웠다. 난민들을 대상으로 어떤 수업을 듣고 싶은지 설문조사한 뒤 커리큘럼을 짰다. 이날 시민대학을 방문했을 때도 교실 곳곳에서 난민이나 그들 자녀를 위한 강의가 진행 중이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온 니콜라스 크리스토위츠 씨(28)는 “좋은 강의를 듣고 여러 배경을 가진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독일 사회에 점차 적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당연히 장애인도 포용한다. 뮌헨 시민대학과 베를린 시민대학 행정직원 가운데는 장애인이 여럿이다. 부당한 차별은 지양하며 누구에게나 문이 열려 있다는 시민대학의 이념을 잘 보여준다.

○ 배움의 천국

뮌헨 시민대학은 수강생이 배움에 집중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 강좌 수가 엄청나게 많다. 정보기술(IT), 마케팅, 그림, 발레, 외국어, 요리, 철학, 심리 등 연간 1만6000개 이상 개설된다. 웬만한 것은 모두 여기서 배울 수 있는 셈이다. 한국어 강좌도 있다. 저렴한 편인 수강료마저 지불하기 어려운 시민은 소득증빙서류를 제출하면 절반을 할인받는다. 문맹자는 무료로 글을 배울 수 있다.

어린 자녀가 있는 수강생을 위해 최근 세운 분교에는 유치원도 따로 만들었다. 아인슈타인슈트라세에 있는 유치원은 90m² 규모로 알록달록한 책자와 장난감들이 잘 정돈돼 있었다. 일반 유치원과 다를 바 없어 보였다. 부모가 수업을 들으면 유치원은 무료다.

대안학교 역할도 한다. 중고교에서 중퇴했지만 졸업장이 필요한 학생은 이곳에서 일정 기간 교육받으면 졸업장을 딸 수 있다. 한국으로 치면 검정고시와 비슷하다.

직업교육 및 취미, 건강 등 다양한 강좌가 이뤄지지만 수업의 질은 정규 교육과정 못지않다. 뮌헨과 베를린 모두 지역 주요 대학들과 긴밀하게 협력한다. 세계 정상급 오케스트라인 뮌헨필하모니와 공동으로 파일럿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뮌헨대 뮌헨공대 베를린공대 등의 교수를 비롯해 주요 중고교 교사들도 시민대학에서 강의한다. 대기업에서 일하는 IT 전문가, 변호사, 과학자, 법조인 등도 강사를 맡는다. 그래서 뮌헨 시민대학 강사는 약 3000명이다. 강사의 90% 이상은 프리랜서다. 이들 강사나 행정직원도 시민대학에서 수업을 듣는다. 시민대학과 수강생이 일방적 관계가 아니라 서로가 가진 지식과 능력을 공유하는 공간인 셈이다. 마이 교장도 요리와 영어회화 수업을 듣는다.

바르벨 슈를레 베를린 시민대학 프리드리히샤인크로이츠베르크지구 학교장은 “기꺼이 배우려는 마음가짐이 있는 사람들은 어떤 문제든 대화로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며 “교육을 원하는 사람들이 언제든 찾아갈 수 있는 시설을 만드는 것은 정부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뮌헨·베를린=정지영 기자 jjy20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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