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6월민주항쟁’ 주역 30년 만에 재회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6월 8일 03시 00분


코멘트
“서울에서 6월민주항쟁이 소강기로 접어들 무렵 충남대가 그 불씨를 살렸다. 1987년 6월 15일 교외 진출에 성공한 충남대생 8000여 명은 대전역으로 향했다. 전경들은 전의(戰意)를 상실한 듯했다. ‘호헌철폐, 독재타도’를 외치는 시위대는 넥타이부대까지 합류해 1만5000명으로 늘었다. 서로 최루가스로 흘린 눈물과 콧물을 닦아주고 얼굴에 치약을 발라줬다.”

○ 전국적 항쟁의 불씨 살린 대전

1987년 6월민주항쟁 당시 충남대생들의 대규모 시위를 보도한 동아일보 지면. 동아일보DB
1987년 6월민주항쟁 당시 충남대생들의 대규모 시위를 보도한 동아일보 지면. 동아일보DB
대전지역 47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6·10 민주항쟁 30년 대전추진위원회’ 인터넷 카페에 오른 글처럼 대전시민에게 1987년 6월은 남다르다. 당시 전두환 정권의 ‘4·13 호헌조치’로 전국이 시위로 들끓을 때 대전은 상대적으로 잠잠했다. ‘이화여대 학생회가 충남대 학생회에 (남성 상징인 고추가 잘라진 것 아니냐는 의미) 고추를 선물했다’는 소문이 나돌 정도였다. 그러나 전국적 시위는 6월 10일의 이른바 6월민주항쟁 이후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

이를 충남대생들의 같은 달 15일 대규모 시위가 반전시켰다. 교내 집회를 가진 학생들은 경찰 봉쇄를 3차례나 뚫고 무려 4시간을 걸어 대전역으로 진출했다. 대전 역사상 가장 큰 시위였다. 이 소식은 당시 동아일보(사진) 등에 대서특필됐고 전국의 시위 양상은 반전됐다. 결국 호헌선언을 철회하는 6·29선언으로 이어졌고 대통령직선제도 실현됐다.

○ 30년 만의 해후

30년 만에 만난 6월민주항쟁 주역들. 오른쪽부터 시계반대방향으로 이정임, 정완숙, 이정미, 서해림, 손경철, 박기억, 명경희 씨. 이기진 기자 doyoce@donga.com
30년 만에 만난 6월민주항쟁 주역들. 오른쪽부터 시계반대방향으로 이정임, 정완숙, 이정미, 서해림, 손경철, 박기억, 명경희 씨. 이기진 기자 doyoce@donga.com
그로부터 30년이 흐른 3일 오후 대전의 한 식당. 1987년 6월민주항쟁, 같은 해 12월 대통령선거에서 대전 중구지역 대학생 공정선거감시단 활동을 한 8명이 30년 만에 만났다.

이들은 당시 충남대 사회학과 2학년 정완숙 씨(49·여·디모스 대표)와 같은 학과, 학번 서해림 씨, 사학과 84학번 이정임 씨(50·여), 이 씨의 동생 정미 씨(사업), 생물학과 1학년 손경철 씨, 그리고 서강대 휴학생 박기억 씨(54·대전 동구청) 등이다.

30년이 지났지만 이들은 당시의 일을 하나하나 생생하게 기억했다. 이들은 여전히 이른바 ‘민주진영’에서 다양하게 활동하고 있다.

정 씨는 대규모 회의를 설계하고 진행하며, 참여적 의사결정과 창조적 문제해결을 돕는 ‘퍼실리테이터(Facilitator·사회변화촉진자)’로 일하고 있다. 대전추진위원회 상임집행위원장이기도 하다. 서 씨는 대전경실련 사무국장을 맡고 있고, 대전 민주진영 여성계의 ‘마당발’로 통하는 이 씨는 충남도 어린이인성학습원 인성실장이다. 이 씨의 여동생 정미 씨(49)는 경기 수원시에서 국숫집을 한다. 캄보디아 등지로 보낼 헌옷을 가지고 오는 손님에게는 국수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이들은 “고난을 딛고 민주주의를 쟁취한 6월민주항쟁과 2017년 온 국민이 함께 이뤄낸 ‘촛불시민혁명’을 통해 현재를 성찰하고 미래를 같이 준비하자”고 다짐했다.

대전추진위원회는 10일 오후 6시부터 서대전시민광장에서 6월민주항쟁 30돌맞이 대규모 기념행사를 연다. 9월까지 ‘기억’, ‘참여’, ‘미래’를 테마로 6월민주항쟁 기록물 수집·전시회 및 문화제, 표석 세우기, 어린이 민주주의 토론회, 청소년 만민공동회 같은 사업을 추진한다. 충남지역과 세종, 충북, 강원지역에서도 다양한 기념행사가 열린다.

이기진 기자 doyoce@donga.com
#6월민주항쟁#충남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