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환경개선 32%가 ‘새치기 민원’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5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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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서울시교육청 사업내역 분석
올해 1801개 사업중 584개 예산… 평가순위 건너뛰고 우선 배정
신청 안한 학교들이 시의원에 부탁… 시의회 심의 과정서 ‘쪽지 밀어넣기’

서울시교육청의 2017년 교육환경개선사업 중 32%는 ‘새치기’ 사업인 것으로 드러났다. 10건 중 3건이 정상적인 행정 절차 대신에 시의원을 통한 민원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21일 동아일보가 시교육청에 정보 공개를 청구해 입수한 ‘2017년 교육환경개선사업 중 우선순위 미준수 사업 내역’에 따르면 시교육청이 올해 편성한 1801개 사업(2679억 원) 중 584개 사업(415억 원)은 수개월에 걸쳐 교육청이 평가하고 정한 우선순위를 지키지 않고 편성된 것으로 나타났다. 학교의 교육환경 개선사업 중 건수로는 32.4%, 금액 기준으로는 15.5%가 서울시의회 심의 과정에서 새치기를 통해 편성됐다.

냉난방시설, 창호, 화장실, 외벽공사, 바닥 등 일선 학교의 교육환경을 개선하는 이 사업의 수요는 많지만 한정된 예산 때문에 일부만 실제 예산이 편성된다. 이 때문에 시교육청은 수요 조사 후 수개월의 평가 작업을 거쳐 우선순위를 정해 공개하고 있는데 이 순위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것.

예를 들어 강동송파교육지원청 관내 학교들이 교육지원청에 화장실 개선 공사를 위한 예산을 신청한 사업은 총 23건. 교육지원청은 이 사업들에 대해 시급성 등을 따져 1위에서 23위까지 우선순위를 매겨 공개했다. 그리고 시의회 심의 결과 올해 예산에 반영된 사업은 총 6건이다. 네 건은 우선순위대로 배정됐지만 강동구의 두 개 중학교는 23위까지의 우선순위에 들어있지 않았으나 예산을 배정받았다. 두 중학교 사업은 다른 인근 초중고교의 19개 사업을 새치기해 예산을 배정받은 셈이다.

서부교육지원청의 화장실 개선 사업은 총 7건이 예산에 반영됐는데 1∼5위는 정상적으로 반영됐지만 12위 사업(마포구 A중)이 6∼11위를 건너뛰고 포함됐고 우선순위를 받지 못했던 마포구 B초교의 사업도 24위까지 우선순위를 받은 사업들을 제치고 예산이 편성됐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행정력을 투입해 만들어 놓은 우선순위가 지켜지는 것이 더없이 바람직하지만 시의회 심의 과정에서는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우선순위가 지켜지지 않는 것은 많은 학교가 교육청에 정상적인 절차를 거쳐 신청하지 않고 지역 시의원에게 청탁을 하면 시의원이 ‘쪽지 예산’을 통해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고교 교장은 “쪽지 예산이 많을수록 정상적인 절차를 지킨 학교의 학생들이 피해를 보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한 서울시의원은 “학교 측에서 급하다고 얘기하면 거절하기 쉽지 않다”면서 “이 때문에 의원들이 요청하는 사업은 우선순위와 상관없이 들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라고 말했다.

시교육청은 시의원들의 요구를 거부하기 어렵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하지만 쪽지 예산이 매년 반복되는 데에는 시교육청의 개선 의지가 없기 때문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한 고교 교장은 “교육환경개선사업 예산은 시교육청이 적게 편성하고, 시의회 심의를 거치면서 증액되는 패턴이 반복되고 있다”면서 “시교육청이 일부러 적게 편성해 의원들이 예산을 증액할 여지를 남겨두는 방식으로 협조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유덕영 기자 fire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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