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 크레인 참사, 신호 안맞아 일어난 人災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5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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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소장 “작업 반경내 신호잘못… ‘크레인 팔’ 아래로 안내려 충돌”
경찰 “운전-신호 12명 진술 달라”
“철골에 깔린 동생, 지혈 못해줘…” 간신히 목숨 건진 40대 형 ‘눈물’

“분명 내가 같이 있었는데, 동생이 동생이….”

경남 거제시 삼성중공업에서 일어난 타워크레인 추락 사고로 다친 박모 씨(46)는 여전히 동생의 죽음을 실감하지 못하고 있었다. 박 씨와 두 살 아래 동생은 같은 작업 현장에서 일하다 함께 사고를 당했다. 두 사람의 생사는 엇갈렸다.

1일 사고 발생 직후 박 씨는 근처에서 휴식 중이던 동생이 허리가 철골에 짓눌린 채 바닥에 쓰러져 있는 모습을 봤다. 2일 병원에서 만난 그는 “동생이 반듯이 누워 있어서 어디에서 피가 나는지 몰랐다. 빨리 지혈을 했어야 했는데 잘 안 됐던 거 같다”고 떠올렸다. 박 씨는 병원으로 함께 이송된 동생이 응급치료를 받다가 숨을 거두는 순간 정신을 잃었다. 소식을 듣고 병원을 찾은 큰형(49)은 “숨진 동생은 세 아이를 뒷바라지하느라 특근과 잔업을 도맡아한 성실한 가장이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31명의 사상자를 낸 이번 사고는 안전불감증이 불러온 전형적인 인재(人災)일 가능성이 높다. 수사본부는 2일 “충돌한 두 크레인 운전사와 신호원 등 12명을 1차로 조사한 결과 무전 수신과 관련해 일부 진술이 엇갈렸다”고 밝혔다. 수사본부는 “무전으로 신호를 전달했다고 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이를 듣지 못했다는 사람이 있는 등 진술이 달라 면밀하게 조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고 당시 골리앗크레인(정식 명칭 갠트리크레인)에는 신호원 6명, 타워크레인에는 신호원 3명이 있었다. 작업 규정에 따르면 골리앗크레인에는 보조 운전사를 포함해 2명이, 타워크레인에는 1명이 근무한다.

삼성중공업도 이날 크레인 신호원과 운전사 사이에 신호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사고가 일어난 것으로 자체 진단하고 사과문을 발표했다. 박대영 사장은 사과문을 통해 “열과 성을 다해 일해 온 동료를 한순간에 잃게 되어 슬픔과 참담한 심정을 금할 수 없다”며 “진심으로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이날 사고 현장 공개에 앞서 김효섭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장은 “크레인 충돌의 원인은 신호원과 크레인 운전사 간에 신호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골리앗크레인과 타워크레인의 작업 반경이 겹치는데 신호가 잘못돼 타워크레인의 붐대(본체에 달린 작업 팔)를 밑으로 내리지 않아 충돌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이번 사고가 ‘세계 1위’ 명성에 가려진 한국 조선업의 어두운 그늘을 보여줬다는 반응이다. 조선업 특성상 무거운 철판을 나르고 용접하면서 수십 층 높이에 이르는 선박에 매달려 작업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를 자동화하는 건 쉽지 않고 사고가 나면 인명 피해도 크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선박 건조’를 외국에서 ‘십 빌딩(Ship Building)’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조선 현장은 대형 사고가 적지 않은 건설 현장과 비슷하다”며 “사고 소식을 들을 때마다 안타까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에는 전면 작업 중지 명령이 내려졌다. 고용노동부는 사고가 발생한 7안벽 공정을 포함해 조선소 내 선박 건조 전체 작업을 중지하도록 명령했다. 작업 중지 명령 기한은 별도로 정해지지 않았다.

거제=강성명 smkang@donga.com / 김도형 기자
#거제#크레인#인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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