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기획]직무 적성 알아본다면서 공간지각 문제는 뭡니까?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4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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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쏭달쏭’ 기업 인-적성 검사

“기업 인·적성검사 기출문제집을 벌써 몇 권째 풀었는지 모르겠네요.”

2년째 취업을 준비 중인 문모 씨(28)의 말이다. 국내 대기업의 상반기 채용 시즌을 맞아 입사 시험의 일부로 치르고 있는 인·적성검사 때문에 취업준비생들이 몸살을 앓고 있다. 이 시험을 통과해야 면접에 갈 수 있으니 취업이 절실한 일부 취업준비생들은 사교육까지 받고 있다. 시험이라는 객관적 지표를 통해 채용을 하겠다며 도입한 인·적성검사지만 취업이 어려워지며 입사 지원자들에겐 적잖은 부담이 되고 있다. 14일 발매된 주간동아 1084호에선 기업 입사시험의 인·적성검사와 관련해 취업준비생의 목소리를 듣고 그 문제점을 짚었다.

인·적성검사 위해 사교육까지 불사

서울시의 한 대형서점에 진열된 각 기업의 인·적성검사 기출문제집. 대기업 취업 경쟁이 심화되며 대다수의 취업준비생이 기출문제집을 풀거나 심한 경우는 사교육까지 받아가며 인·적성검사를 준비한다. 동아일보DB
서울시의 한 대형서점에 진열된 각 기업의 인·적성검사 기출문제집. 대기업 취업 경쟁이 심화되며 대다수의 취업준비생이 기출문제집을 풀거나 심한 경우는 사교육까지 받아가며 인·적성검사를 준비한다. 동아일보DB
인·적성검사는 삼성이 SSAT(Samsung Aptitude Test·현재는 GSAT)를 1995년에 도입한 이후 국내 대기업에 퍼진 채용 절차다. 이 검사는 크게 조직 적응력을 평가하는 인성검사와 직무적성을 평가하는 적성검사로 나뉜다. 적성검사는 일종의 지능검사로 언어능력, 자료해석 능력, 수리력, 공간지각력 등을 묻는 객관식 문항으로 이뤄져 있다.

대통령직속 청년위원회가 지난해 11월 취업준비생 1094명과 사회 초년생 556명을 상대로 설문조사한 결과 취업준비생의 59.8%가 ‘광범위하고 어려운 인·적성검사가 부담’이라고 응답했다. 이미 기업에 입사한 사회 초년생들도 52.3%가 ‘취업을 준비할 때 각 기업의 인·적성검사를 준비하는 것에 부담을 느꼈다’고 답했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취업준비생은 기출문제집을 푸는 등 별도로 공부한다. 올해로 3년째 대기업 공채에 도전하고 있는 김모 씨(27·여)는 “인·적성검사 문항의 난이도는 정규 교육과정을 밟은 사람이라면 충분히 풀 수 있을 정도다. 하지만 시험 시간이 짧아 문제를 다 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문제의 유형을 익히기 위해 매번 기출문제집을 사서 풀어본다”고 밝혔다.

3월 24일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발표한 취업준비생 485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82.9%가 ‘대기업 인·적성검사를 대비해 공부를 하는 중’이라고 답했다. 일부 청년은 인터넷 강의를 듣기도 한다. 취업준비생 박모 씨(28·여)는 “서른이 넘으면 기업에서 신입사원으로 받기 꺼린다는 말을 듣고 이번에는 꼭 취업에 성공해야겠다 싶어 인터넷 강의를 들어가며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포털사이트에 ‘인·적성검사 인터넷 강의’를 검색하면 강의당 7만∼9만 원 선의 강의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잡코리아가 2015년 취업준비생 1101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취업준비생 한 명이 한 번의 인·적성검사를 치르기 위해 사용하는 금액은 평균 5만2000원 선이었다. 준비 방법으로는 ‘기업별 인·적성 교재 독학’(37.5%·복수응답), ‘취업 사이트 모의고사 풀이’(33.6%), ‘인터넷 강의 수강’(27.7%) 등이 꼽혔다.

기업들은 인·적성검사를 따로 준비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익명을 요구한 대기업 인사 관계자는 “매년 기업이 원하는 세부 인재상이 바뀌므로 각 기업은 인·적성검사 시험의 유형을 매년 바꾼다. 그렇기 때문에 기출문제를 풀고 인터넷 강의를 듣는 것이 성적 향상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게다가 각 기업 공채에서 인·적성검사 때문에 탈락하는 인원이 많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적성검사가 부담이 된다는 것은 취업준비생들이 지금 상황이 워낙 힘드니 나오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그러나 취업 전문가들의 진단은 정반대다. 취업 컨설턴트 커리어웨이의 박우식 대표는 “대기업들의 인·적성검사는 짧은 시간에 많은 문제를 풀어내는 것이 관건이다. 그래서 문제의 유형을 익혀 가야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대다수의 취업준비생이 기출문제를 풀거나 모여서 스터디를 하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기출문제 등으로 공부를 한 응시생들이 그렇지 않은 응시생들에 비해 합격률이 높다”고 밝혔다.

“공간지각력이 직무적성과 무슨 관계?”

일부 취업준비생은 기업의 인·적성검사가 직무적성을 평가하는 데 적절한 방식인지 의문을 품기도 한다.

취업준비생 정모 씨(26·여)는 “다양한 직군에 지원한 사람들의 직무적성을 IQ 테스트식 시험으로 평가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백번 양보해서 독해력이나 추리력 등은 여러 직무 환경에 사용될 수 있겠지만 공간지각은 어디에 쓰려고 평가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지난해 6월 취업준비생 회원 28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35.6%가 ‘굳이 필요하지 않은 전형’이라고 답했다. 뒤이어 ‘취업 준비만 까다롭게 만든다’, ‘결과의 공정성이 의심스럽다’는 대답도 각각 21.9%와 20.1%를 차지했다. 반면 ‘채용에 필요한 전형’이라는 답변은 응답자의 14.7%에 불과했다.

문형구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적성검사가 단순히 지능을 검사하는 시험이라 해도 직무능력과 무관하다고 할 수는 없다. 지능검사 성적이 좋을수록 직장 내 업무 적응이 빠르다는 해외 연구 결과도 있다. 그러나 이는 대략적인 업무 적응력이 좋았다는 것일 뿐이지 한 가지 시험을 통해 일괄적으로 다양한 직군의 지원자들의 직무적성을 평가하기는 어렵다. 과연 입사시험과 같은 일괄 시험이 인재 채용의 합리적 방법인지 고민이 필요한 시기”라고 진단했다.

이런 이유로 일부 대기업에서는 인·적성검사 중 일부를 폐지하는 경우도 있다. 한화그룹은 2013년부터 인·적성검사 대신 각 계열사가 자체적으로 지원자를 평가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한화 관계자는 “지원자들의 부담을 경감시키는 동시에 직무역량 중심의 선발을 강화하기 위해 적성검사를 폐지하고 계열사 자체 평가를 도입했다”고 밝혔다. 신세계그룹은 애초에 인성검사 절차는 있지만 적성검사는 따로 보지 않았다. 그 대신 프레젠테이션(PT) 면접(발표 면접)으로 응시자들을 평가한다.

하지만 여전히 인·적성검사를 시행하고 있는 기업에서는 이 제도를 포기할 마음이 없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인·적성검사는 점수로 지원자를 솎아내려는 시험이라기보다는 각 기업의 조직문화에 잘 적응할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 절차의 성격이 강하다. 게다가 대부분의 기업이 다양한 직무에 지원한 인재들의 직무적성을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 검사의 형식과 내용을 조금씩 변화시키는 추세”라고 밝혔다.

일부 취업준비생은 자신이 치른 적성검사 결과가 궁금하다. 각 기업의 적성검사 유형이 비슷하니 자신이 부족한 부분을 준비한다면 다른 기업이나 다음 공채를 준비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서울의 한 대학을 졸업한 이모 씨(28)는 “서류전형이나 면접전형과 달리 인·적성검사는 객관식의 정량적 시험이다. 결과를 확인한다면 내가 왜 이 절차에서 탈락했는지도 명확히 알게 되고 다음 공채를 준비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 같은데 대부분의 기업이 결과를 공개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 대기업 인사 담당자는 “대부분의 취업준비생들이 인·적성평가를 정량적 평가라 인식하지만 기업에서는 정성평가 자료로 활용한다. 인·적성평가 고득점과 합격이 반드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많게는 수만 명에 달하는 지원자의 점수 공개를 담당할 인력과 비용에 대한 부담도 크다”고 말했다.
 
▼인성검사에도 정답이 있다? 없다?▼

취준생 “기업, 원하는 답 있을 것”
기업 “솔직하게 쓰는게 바로 정답”


지난해 4월 서울 잠실고에서 현대자동차그룹이 실시한 인·적성검사를 치르고 나오는 응시생들. 동아일보DB
지난해 4월 서울 잠실고에서 현대자동차그룹이 실시한 인·적성검사를 치르고 나오는 응시생들. 동아일보DB
적성검사를 치르지 않는 기업이나 별도의 필기시험이 있어 적성검사를 따로 치르지 않는 직군, 심지어 일부 외국계 기업도 인성검사는 치른다. 각 기업은 인성검사가 지원자들의 인성을 시험하는 절차가 아니라 지원자의 가치관을 엿보기 위한 단순 검사니 문제를 푼다기보다는 솔직한 마음으로 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취업준비생들에게는 인성검사도 큰 부담이다. 기업이 원하는 답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실제로 대형서점 수험서 코너에 가면 인성검사 기출문제집을 쉽게 찾을 수 있다.

4월 9일 CJ그룹의 인·적성검사에 응시한 송모 씨(26·여)는 “인성검사라지만 채용전형의 일부인 만큼 입사시험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래서 입사를 위해 열심히 준비했다는 것을 어필하기 위해 최대한 기업이 원하는 인재상에 가까운 사람으로 보이도록 인성검사 문항에 답했다”고 밝혔다. 취업준비생 홍모 씨(28)는 “취업 커뮤니티나 인터넷 강의의 팁이 제각각이라 혼란스럽다. 어떤 곳에서는 회사의 인재상을 감안해 자기소개서를 작성하는 것처럼 인성검사도 따로 준비가 필요하다는 곳이 있는 반면 다른 곳에서는 솔직하고 일관성 있게 답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해 헷갈린다”고 말했다.

대기업의 인성검사는 크게 4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가장 간단한 유형은 제시된 문항에 대해 예, 아니오로 답하는 방식이다. ‘사소한 일도 최선을 다해 수행한다’, ‘규율에 얽매이는 것을 싫어한다’에 답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점수 척도형이다. 검사지의 질문에 대해 ‘전혀 그렇지 않다’, ‘그렇지 않다’, ‘보통이다’, ‘그렇다’, ‘매우 그렇다’ 등의 점수 척도형 답변을 하는 방식이다. 문장 2, 3개를 제시하고 응시자에게 자신의 성향에 가장 가까운 문장 혹은 가장 먼 문장을 고르는 유형도 있다.

마지막으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곤란한 상황을 제시하고 3∼5개의 대처 방안 중 하나를 고르게 하는 상황선택형 문항이 있다. 예를 들면 이런 문제다. ‘저녁에 중요한 약속이 있어 아침부터 서둘러 일을 해 퇴근시간 10분 전에 마무리했다. 그런데 갑자기 상사가 급한 일이라며 내일 오전까지 서류를 정리해 놓으라고 지시했다.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1. 일단 약속 장소에 간 뒤 아침 일찍 출근해 업무를 처리한다. 2. 약속을 취소하고 업무를 한다. 3. 동료에게 서류를 대신 처리해 달라고 부탁한다.’

모 대기업 인사담당자는 “일부 취업준비생이 잘못된 정보를 듣고 정답이 있는 시험을 치르듯 인성검사에 임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인성검사에 정답은 없다. 지원자의 대략적 가치관을 보기 위한 절차일 뿐이다. 지원자가 이상적 가치관을 설정하고 그에 맞춰 응답하더라도 검사 결과 거짓 척도가 높게 나오면 채용에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김동년 커리어탑팀 부대표도 “인성검사는 주어진 시간에 전부 답변을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인성검사 준비는 응시 전 간단하게 유형을 눈에 익혀 빠르게 답할 수 있는 정도면 충분하다”고 충고했다.

박세준 주간동아 기자 sejoonkr@donga.com
#기업 인·적성검사#취업준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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