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남북/강정훈]도지사 공백 맞은 경남도의 과제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4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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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훈·부산경남취재본부
강정훈·부산경남취재본부
경남 도정(道政)이 사상 초유의 위기에 직면했다. 대선판에 뛰어든 홍준표 전 경남도지사가 지방자치 정신과 법, 민심을 역류해 도지사 보궐선거를 무산시키면서다. 홍 전 지사는 9일 밤 12시 무렵 사퇴하면서 “보궐선거 비용을 아껴야 한다”고 했다.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행정 공백에 따른 손실은 보궐선거 비용에 비할 바가 아니다. 과거 김혁규, 김두관 전 경남지사의 중도 사퇴 이후 경험한 일이다.

이제 짐은 류순현 행정부지사(54·고위공무원단)가 떠안았다. 다음 달 10일 출범할 새 정부는 내각을 구성한 뒤 행자부 고위직 인사를 단행할 확률이 크다. 류 부지사도 대상이다. 유임되면 내년 6월 말까지 경남호(號)의 선장을 맡지만 교체되면 도정은 또 혼란에 빠질 수 있다. 행정고시(31회) 출신인 류 부지사는 30년 동안 행정자치부와 청와대, 대전시에서 근무했다. 고향에 부임한 것은 지난해 2월. 온화한 성품에 업무처리도 합리적이어서 평이 좋았다. 정치 편향성 시비도 없었다.

그는 11일 기자간담회에서 “(임명직의) 한계를 전제로 도정 공백 최소화에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특히 공직 기강을 강조했다. 그러나 그가 간담회에서 제공하겠다던 홍 전 지사의 사퇴서(전자문서)는 공개되지 않았다. 실무자들이 비공개 정보가 들어 있다는 애매한 이유를 댔다고 한다. ‘전직 지사의 그림자’가 벌써부터 영향을 미친다고 하면 지나친 표현일까.

류 부지사가 흔들림 없이 도정을 끌고 가려면 적폐부터 청산해야 한다. 고위 공무원을 도청 바깥 사무실에 놀려 두는 도정연구관제도 그중 하나다. 6월 하순 인사는 분위기 쇄신에 무게를 둬야 한다. 무능, 낙하산 지적을 받은 출자·출연기관장과 간부도 정리 대상이다. 외압 차단도 중요하다. 관료로서 한계가 있는 반면 선출직이 아니어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홍 전 지사 사퇴 처리의 적법성 시비도 남은 과제다. 여영국 정의당 경남도당위원장은 12일 류 부지사를 직권남용, 직무유기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선관위에 홍 전 지사 사퇴 통보를 게을리했다는 이유에서다.

전문가들은 권한대행 체제에 우려를 나타냈다.

김영기 경상대 명예교수(행정학)는 “급변하는 상황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기란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투자 유치와 경제활성화 시책 추진, 예산 확보 경쟁, 인근 지자체와의 현안 주도권 경쟁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2012년 김두관 지사가 사퇴한 뒤 5개월간 도지사 권한을 대행한 임채호 전 행정부지사(60·개인정보보호위원회 상임위원)는 이를 ‘오너와 전문경영인의 차이’로 표현했다. 언제 떠날지 모르는 상황이어서 현실적, 심리적 한계가 크다는 것이다.

공무원들은 “3대가 덕을 쌓아야 권한대행의 기회가 생긴다”고 농담한다. 임명직이지만 민선 단체장에 준하는 권한을 행사하기에 나온 말이다. 그런 면에서 류 부지사는 영예를 안았다. 반면 인구 337만 명에 공무원 4620명, 예산 7조 원, 지역내총생산(GRDP) 104조 원인 경남의 살림살이는 사실상 ‘멍에’다.

과거 그와 함께 근무했던 직원들이 “천하가 태평한 요순(堯舜)시대보다 류순현과 근무한 ‘류순시대’가 더 좋았다”고 칭찬했다는 일화가 있다. 그런 지혜와 저력을 충분히 발휘해 주변의 우려를 기우(杞憂)로 바꿔 놓기를 기대한다. 떠나는 그날까지.

강정훈·부산경남취재본부 manman@donga.com
#경남도지사#홍중표#도지사 보궐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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