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세상/우지희]하고 싶어도 못 했던 스몰 웨딩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4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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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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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지희 능률교육 콘텐츠개발본부 대리
우지희 능률교육 콘텐츠개발본부 대리
최근 미국에 사는 친척집에 머무는 동안 의아한 이야기를 들었다. 내일 친한 동료가 결혼을 하는데 자신은 하객으로 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결혼 당사자들이 시청에서 혼인신고를 한 후 가족들과 식사하는 것으로 결혼식을 대신하기 때문이었다. 예비 신랑이 실리콘밸리 유명 정보기술(IT) 기업 직원이라 형편이 어렵지도 않을 텐데 어찌된 영문인가 했더니, 결혼식 자체를 복잡하고 번거롭게 생각해 이렇게 치르는 경우가 꽤 흔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러고 나서는 친척집 근교 도시의 공원에서 희한한 풍경도 목격했다. 공원 산책로 곳곳에 결혼 기념 촬영을 하는 커플들이 있었다. 그들은 턱시도나 웨딩드레스를 차려입지 않았고 웅장하고 화려한 배경 앞에서 어색한 포즈를 취하지도 않았다. 그 대신 단정하고 반듯한 차림새 혹은 각자의 모국 전통 의상에 여자는 부케를 들고 베일을 쓰고 남자는 나비넥타이를 매고 있을 뿐이었다. 그들 중 한 커플에게 축하 인사를 건네며 결혼식이 언제냐고 묻자, 시청에서 혼인신고를 하고 그 기념으로 공원에서 촬영을 하고 있는 중이라며 따로 식을 올리진 않을 예정이라는 대답을 들었다.

이른바 스몰 웨딩, 작은 결혼식의 현장을 보고 들으며 몇 년 전 나의 결혼식을 자연스레 떠올렸다. 일생일대의 큰 행사이자 인륜지대사인 결혼식을 앞두고 많은 신부들이 예쁜 웨딩드레스를 입고 화려한 예식장을 걸어 들어가는 꿈을 꾼다지만 나는 정반대였다. 결혼을 축하하러 와주신 손님들에게 반듯하게 서서 인사도 못 드리고 숨통이 조이는 드레스를 입고 가만히 신부대기실에 꽃처럼 들어앉아 있는 것도 싫었다. 그래서 당시에는 굉장히 드물던 스몰 웨딩을 야심 차게 준비했다.

그런데 예상과는 다르게 여러 난관에 부딪혔다. 처음 계획은 작은 식당을 빌려 예쁘게 꾸미고 최소한의 하객들과 소박하게 식을 올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규모가 소박하다고 비용이 소박한 것은 아니었다. 마땅한 장소를 대여하고 꾸미고 식사를 제공하는 비용을 합하니 아이러니하게도 일반적인 결혼 비용보다 더 비쌌다. 차선으로 알아본 공공기관 예식장은 대기자들이 너무 많아 원하는 시기에 이용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결혼식은 신랑 신부의 부모님에게도 큰 행사이기 때문에 무턱대고 최소한의 인원만 초대한다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했다. 그동안 지인들의 결혼마다 뿌린 축의금을 떠올리니 나도 거둬야 한다는 본전 생각이 나기도 했다. 더불어 왜 식도 제대로 안 올리고 시집가느냐, 도둑 결혼이 아니냐 물을 게 뻔한 주변의 시선들이 불편한 것도 사실이었다.

남편과 함께 득과 실을 곰곰이 따져보니 결국 일반적인 결혼식을 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현실적으로 가장 낫다는 결론이 났다. 그나마 남들 다 하는 결혼 기념 촬영을 하지 않고 간단히 둘이서 동네 사진관에서 한 장을 찍은 것이 간소한 부분이었지, 나머지는 여느 커플들처럼 똑같이 진행하게 되었다. 그렇게 나의 스몰 웨딩 야망은 실패로 돌아갔다.

몇 년이 지나 낯선 타국에서 내가 꿈꾸던 방식의 결혼식을 진행하는 커플들을 접하니 부럽고 대단해 보였다. 내가 겪었던 현실적인 한계들이 그들에게 존재하지 않은 이유는 아마 합리적인 결혼 문화와 사회적 분위기 및 환경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날 공원에서 만난 웨딩 촬영 커플 옆에서 남편과 사진을 찍으며 만약 우리 자식이 스몰 웨딩을 하겠다고 말한다면 적극적으로 응원과 지지를 보내주기로 약속했다. 결혼 당사자들은 물론이거니와 그 윗세대가 될 우리의 마인드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우지희 능률교육 콘텐츠개발본부 대리
#스몰 웨딩#결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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