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노지현]인권 보호의 딜레마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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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지현 사회부 기자
노지현 사회부 기자
 지난해 12월 말, 충남 서산에서 30세 엄마가 5세, 6세 두 아들을 살해했다. 부검 결과 아이들은 목이 졸려 있었다. 이 친모는 그즈음 “누군가 우리를 감시하고 있다”고 자주 말하는 등 정신질환 의심증세가 깊었다고 한다. 아이들 외할머니는 사태가 심각하다며 강제로라도 입원시키자고 했지만, 사위는 “그래도 아내를 어떻게 정신병원에 집어넣느냐”며 망설였다고 한다. 그렇게 ‘골든타임’을 놓쳤고 두 아이는 목숨을 잃었다.

 현행 정신보건법은 보호의무자 2명의 동의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1명의 진단이 있으면 정신건강에 이상이 있는 사람에 대한 보호입원(강제입원)이 가능하도록 돼있다. 재산을 노린 친인척이 의사와 짜고 한 사람을 병원에 입원시킨다는 영화나 드라마가 있지만 현행법상 강제입원이 쉽지만은 않은 셈이다.

 그러나 지난해 9월 헌법재판소는 환자 동의가 없는 강제입원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국회는 이 결정 내용을 반영해 정신보건법을 정신건강증진법으로 개정했다. 5월 30일부터 시행되는 이 법에 따르면 비(非)자발적 입원 및 재입원을 하려면 입원기관과 소속이 다른 정신과 전문의 2명 이상이 일치된 소견을 보여야 가능하다. 당초 진단의사 중 1명은 국·공립병원 소속으로 한정했지만 연간 17만 건에 이르는 입원 건수를 감당할 수 없을 것으로 예상되자 권역별 진단의사제를 추진 중이다.

 환자의 인권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헌법재판소의 결정과 개정된 법의 취지는 옳다. 그러나 정신건강 관련 질병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일반적인 병이라면 아픔을 느낀 당사자가 병원을 찾는다. 하지만 비자발적 입원의 경우 말 그대로 환자 스스로가 자신이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비자발적 입원을 통해 치료를 받았다는 30대 조현(調絃)병 환자는 “당시에는 ‘내가 왜 병원에 가야 하느냐’며 아버지에게 강하게 저항했는데 지금은 그때라도 입원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환자보호자단체에서도 우려를 표시한다. 입원 절차가 어려워져 자칫 환자와 가족의 고통과 불편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의 인력이나 관련 예산 확보가 이뤄지지 않고 제도부터 시행된다면 보호자와 의료계 모두 혼란을 겪을 확률이 높다. 개정된 법에 따르면 강제입원의 경우 2주 안에 다른 기관 의사 2명의 소견서를 받아야 한다. 서울만 연간 강제입원 심사 대상이 1만8500여 건이나 되고 2주 안에 해야 한다면 심도 깊은 검사가 될지 의문이다.

 물론 악의적인 목적으로 가족을 정신병동에 가두는 일이 여전히 발생하는 게 현실이다. 99마리의 양을 놓치더라도 길 잃은 1마리의 양을 구하는 것이 단지 기독교의 정신만은 아닐 터이다. 다만 1%의 인권 침해를 막으려는 순수한 의도에서 또 다른 애꿎은 피해자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점을 누군가는 기억해야 한다. 인권 보호의 딜레마다.
 
노지현 사회부 기자 isityou@donga.com
#인권 보호#정신보건법#환자의 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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