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4억… 서민 울리는 보이스피싱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2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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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수록 지능화… ‘대출빙자’ 사기 급증

 
“○○금융지주 햇살론 안내센터입니다. 현재 쓰고 계신 대출을 좀 더 금리가 낮은 상품으로 갈아탈 수 있도록 도와드립니다.”

 회사원 김동욱(가명·37) 씨는 이런 내용의 전화를 하루에도 몇 번씩 받는다. 그는 “휴대전화에 뜨는 발신번호가 ‘070’으로 시작한다면 십중팔구는 이런 대출 권유 전화”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전화는 대부분 대출과는 거리가 멀다. 겉으로는 대출을 권유하는 것처럼 설명하지만 대다수는 전화를 활용한 금융사기(보이스피싱)다.

 최근 보이스피싱 사기범들이 높아진 은행 문턱을 넘지 못하는 서민층의 틈을 파고들고 있다. 대출이 연체되거나 소액을 빌리는 것조차 힘든 서민과 청년층에게 “돈을 빌려 주겠다”는 식으로 접근해 수수료 명목으로 돈을 뜯어내는 ‘대출 빙자형 사기’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7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보이스피싱 피해 금액(금융감독원 피해신고 기준)은 올 상반기(1∼6월)에만 하루 평균 4억1000만 원에 이른다. 2014년 하반기(7∼12월) 11억2000만 원의 36.6% 수준으로 점차 줄어들고 있지만 피해자의 허점을 노리는 수법은 갈수록 교묘해지고 있다.

 대표적인 게 요즘 늘고 있는 대출 빙자형 보이스피싱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올 1∼10월 전체 보이스피싱 발생 건수 1만3411건 중 대출 빙자형이 1만898건으로 81.3%를 차지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대출 빙자형 보이스피싱의 비중은 59.5%였다.

 대출 빙자형 보이스피싱은 “대출 상품을 소개해주겠다”고 접근해 수수료를 명목으로 돈을 뜯어내거나 “신용등급을 올려주겠다”며 선납금을 챙겨 달아난다. 경찰청 경제범죄수사과 관계자는 “예전에는 검찰이나 금감원 직원을 사칭하거나 보험금을 돌려주겠다는 사기가 많았다면 요즘은 대다수가 대출 빙자형 보이스피싱이다”라고 말했다.

 특히 지난해 말 은행권에 이어 올 들어 보험업계까지 ‘여신심사 가이드라인’을 강화하면서 돈줄이 막힌 서민이나 자영업자가 사기범들의 표적이 되고 있다. 지난달 26일 경북 구미경찰서에 구속된 보이스피싱 조직원 김모 씨(21)도 30∼40%의 고금리 사채를 이용하는 서민을 범행 대상으로 삼았다. 그는 “다른 대출금을 갚으면 연 이율 8.6%에 돈을 빌릴 수 있다”고 피해자들을 속여 1600만 원을 챙겨 달아났다가 경찰에 붙잡혔다.

 보이스피싱 근절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 가운데 하나가 대포통장과 대포폰이다. 지난해부터 통장 발급 기준이 강화돼 대포통장은 다소 줄었지만 대포폰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다. 경찰청 관계자는 “휴대전화 번호를 변작(수신자의 전화기에 다른 번호가 뜨게 하는 것)하는 일도 많아 피해 신고를 받아도 사기범을 찾아내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라고 설명했다.

 보이스피싱에 이용된 전화번호는 90일간 이용이 중지된다. 국회는 이 기간을 1년으로 늘리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특정 번호를 오랜 기간 묶어둘 수 없다”는 통신사의 반대도 거세다.

박창규 kyu@donga.com·최지연 기자
#보이스피싱#사기#대출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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