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 다시 희망으로]“네 소원을 말해봐” 초록우산 쓴 복·면·산·타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1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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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산타원정대
전국 누비며 아이들 소원 들어줘
아동학대 방지 캠페인도 참여

 “울면 안돼∼울면 안돼∼산타할아버지는 우는 아이에겐 선∼물을 안주∼신대.”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거리마다 울려 퍼지는 캐럴, 그 안에 산타가 있다. 예부터 아이들의 소원을 들어주던 산타. 우리의 상상 속 인물인줄만 알았는데 북유럽에는 실로 산타들이 365일 거주하는 마을이 있으니 단지 꿈속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이러한 산타들이 한국에도 나타났다.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을 위해서 초록우산을 쓴 산타들. 올겨울에도 누군가가 그립거나, 몸이 너무 아프거나, 힘들어 우는 아이들을 위해 출동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산타할아버지, 이번 겨울에도 또 한 번 잘 견뎌낼 수 있도록 따뜻한 곰돌이 친구를 만들어 주세요.”

 11세 지연이의 올겨울 소원은 새 곰돌이 인형을 갖는 것이다. 장난감을 사줄 형편이 안됐던 아버지는 늘 홀로 집에 있어야 하는 지연이가 안쓰러워 길에서 곰 인형을 주워 안겨줬다. 온몸이 굳어가며 떨리는 ‘근위축증’이라는 병과 싸우고 있는 지연이. 아버지의 소원은 지연이가 15번째 생일을 맞는 것이다. 오늘도 지연이는 하루를 이겼다. 이렇게 하루를 겨우 이겨내야 내일을 맞을 수 있다. ‘제발 내일도 오늘만 같아라.’ 아버지의 기도는 늘 같다.

산타원정대 아동 소원 엽서.
산타원정대 아동 소원 엽서.
 “버려져 있던 인형을 준 것인데, 아이가 매일 손에서 놓질 않네요. 딸에게 이제는 새 인형을 선물해 주고 싶어요.”

 아버지의 간절한 바람이 통한 것일까. 10월 18일 한 산타가 지연이의 집을 찾았다. “신화 속 영웅처럼 세지 않아도, 기적처럼 지연이의 몸을 일으킬 수는 없어도 친구를 선물해 줄 수는 있다”는 이 산타는 그룹 신화의 멤버 가수 김동완 씨. 그는 바쁜 스케줄 중에도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의 2147번째 복면산타가 되어 아이에게 커다란 곰 인형을 안겨줬다.

 인형을 받고 세상을 다 가진 듯 환하게 미소짓는 아이를 보며 더 기뻐하던 김 씨. 지난 2년간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을 위해 1억 원을 쾌척했던 그는 이번에도 아이들의 소원을 듣고 흔쾌히 산타가 되기를 자청했다. “아이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해서 기부를 실천하게 됐다”는 그의 소박한 동기는 이처럼 큰 기적을 이뤄내며 아이들에게 웃음을 찾아주고 있다.

 어린 시절 루돌프가 끄는 썰매를 타고 하늘을 날아 우리에게 왔던 산타들. 하지만 알고 있었다. 그 산타는 우리의 부모님, 유치원 선생님, 백화점이나 마트의 직원이라는 것을. 그들의 선물을 받기 위해서는 울음을 참아야 했으나, 여기 우는 아이들을 더 반기는 산타들이 있다. 누군가가 그립거나, 몸이 너무 아프거나, 힘들어하는 가족의 모습에 마음이 아파 어쩔 수 없이 우는 아이를 위해 이들은 신나게 달린다. 글로벌아동복지전문기관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이 2007년부터 매년 겨울마다 진행하는 산타원정대의 복면산타들이다. 올 한 해도 꿈이 있는 모든 아이들이 행복한 크리스마스를 보낼 수 있도록 초록우산을 쓴 산타들은 전국 팔도를 누비며 종횡무진 활약을 시작했다.

 “제가 바라는 선물은 냉장고예요. 원래 닌텐도(게임기)가 갖고 싶은데 7월에 냉장고가 고장이 나서 음식을 전부 버리게 됐거든요. 이 때문에 3일 동안 라면만 먹었어요. 할머니를 위해 냉장고를 부탁드려요.”(충북의 김OO이가)

 “산타할아버지, 매일매일 깨끗이 씻을 수 있도록 화장실을 새것으로 바꿔주세요. 고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강원의 김OO이가)

 “저는 동생 둘과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는데 겨울이 되면 작은 전기장판 하나에 모여 자고 있어요. 가족이 다함께 모여 잠을 자는 건 좋은데 전기장판이 자꾸만 고장이 나서 아침에 몸을 웅크린 날도 있어요. 아버지는 난방비가 걱정돼 보일러를 틀지 못하신다고 해요. 잠을 잘 때만이라도 따뜻한 곳에서 함께 잘 수 있도록 온열매트를 선물해 주세요.”(충남의 박OO이가)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은 올해 2016 산타원정대를 출범하기 전 전국 100명의 저소득가정 아동에게 소원을 물어봤다. 엽서를 받아본 복면산타들은 가슴이 먹먹해졌다. 자신을 위해 소원을 적을 줄 알았는데, 아이들의 소원은 할머니가 원하는 냉장고, 가족이 깨끗이 씻을 수 있는 화장실, 다 같이 잘 수 있는 온열매트였다. 여행 한 번 못가 본 부모님을 위한 가족과의 여행, 비좁은 방에서 잠투정을 하는 동생을 위한 이층침대도 있었다.

 이들의 소원을 접수한 전국의 산타들이 발 벗고 나서기 시작했다. 대전의 한 기업은 아이들이 공부하는 지역아동센터를 개보수하고, 부산의 한 관공서는 급식비로 1억 원을 기부하기도 했다. 통영의 고등학생들은 지역 내 저소득가정 아동들을 위해 동화책을 읽어주고, 울산의 한 기업은 ‘사랑의 쌀’을 전달했다. 약 한 달 남은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아이들에게 웃음과 행복을 찾아주기 위해 이처럼 산타들은 각지에서 부지런히 달리는 중이다.

 한편 선물만 전달하는 산타만 있는 게 아니다. 아이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나서는 애드보커시(advocacy) 산타들도 있다. 국무총리를 비롯해 수많은 셀러브리티와 시민 8만여 명이 더 이상 아동학대로 아이들이 고통 받지 않도록 서명 캠페인을 이어나가고 있으며, 자녀의 중증질환으로 가계에 막대한 부담을 지는 환아 가정을 위해 국회의원과 시민들이 나서 ‘어린이 병원비 국가보장’을 외치고 있다. 이 외에도 유엔아동권리협약을 기반으로 아이들의 권리가 제대로 지켜질 수 있도록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의 전국 사업기관에서 지역 내 산타들과 함께 다채로운 캠페인을 실시 중이다. 

 그런데 왜 복면산타일까.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관계자는 “복면은 평범한 청년을 정의를 위해 싸우는 초능력자로 만들고, 겁 많고 눈치만 보는 일반인을 프로레슬러로 만드는 등 다양한 힘을 지니고 있다”면서 “복면을 쓰면 없던 용기가 절로 생기는 슈퍼 히어로처럼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을 찾아가는 산타가 되어 달라는 의미로 붙이게 됐다”고 전했다.

 산타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바로 여기, 지금 당신 마음속에 있다. 올겨울 마음이 시린 우리 아이들을 위해 복면을 쓴 진짜 산타가 되어보자. 나눔의 즐거움 속에서 더할 나위 없이 기쁜 크리스마스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김민식 기자 mskim@donga.com
#크리스마스#산타#캠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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