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각은]논개 유적에 ‘기생’ 표기… 여성의 救國희생 바로 보길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1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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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오준 서울 중구 동호로 8길
김오준 서울 중구 동호로 8길
 최근 옛 직장 동료들과 함께 경남 진주시에 있는 촉석루와 남강 일대에서 열린 유등제(流燈祭)를 구경했다. 그러던 중 남강 근처에 세워진 ‘의기논개지문비(義妓論介之門碑)’를 보고 느낀 점을 적는다.

 논개는 기생으로 가장 많이 알려져 있다. 하지만 논개의 신분을 단순히 기생으로 한정하는 태도는 논개의 업적을 상당 부분 가리는 처사라고 생각한다. 기록만 봐도 논개는 단순한 기생이 아닌 순국선열의 가족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진주 촉석루 남강 논개사당의 사적기에는 논개를 전북 장수군수 최경회의 후처로 기록하고 있다. 최경회는 경상도 우수영으로 임진왜란에 나서 싸우다 진주성 전투에서 전사한 인물이다. 진주성 전투에서 이긴 왜군은 우리 군장(軍將)과 그들의 부인까지 촉석루에 모이게 해 승리 잔치를 벌였다. ‘적장의 부인’ 신분으로 촉석루에 나간 논개는 이 연회 도중 왜장을 껴안고 남강에 몸을 던졌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전쟁터에 나간 남편의 전사 소식을 들었을 때 논개의 심정은 어땠을까. 치욕적인 적장의 승리 연회에서 왜장을 껴안고 바위 아래로 몸을 던질 때 논개가 느꼈던 비분강개(悲憤慷慨)는 하늘을 찔렀을 것이다.

 아직도 많은 사람이 논개를 기생으로만 알고 있다. 그러나 논개는 기생이라는 신분에 앞서, 전사한 장수의 아내인 동시에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나라를 침략한 적의 장군을 수장시킨 순국선열로 평가해야 마땅하다.

 논개를 기리는 비문에는 아직도 ‘의기(義妓)’라는 글자가 적혀 있다. 의로운 기생이라는 뜻이다. 38년 전 방문했을 때와 표기가 바뀌지 않았다. 양반과 평민, 남자와 여자를 가리는 불평등한 시대를 벗어나지 못한 표현이다. 국가에 위기가 닥쳤을 때 남자만을 중요시하고 여성의 공적은 제대로 치하하지 않았던 것이다.

 여성이 차별을 받던 사회 분위기에서 논개의 업적이 폄하된 예는 과거에도 있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를 보면 임진왜란 중 충신과 열녀 등을 뽑아 적은 ‘동국신속삼강행실도(東國新續三綱行實圖)’에 논개가 등재되지 않은 것이 차별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책을 편집하던 편집자들이 유교 윤리 때문에 기생의 이름을 올리지 않으려 했다는 것이다. 기생이라는 신분이 알려지면서 논개의 의로운 행동이 과거나 지금이나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논개와 함께 나라를 지키기 위해 앞장섰던 여성인 유관순은 열사로 불리고 있다. 논개의 업적을 기리는 비석이라면 최소한 의기가 아닌 의녀(義女)로 표시하거나 그 이상의 존칭을 부여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역사를 올바로 세우려는 후손의 참된 도리라 생각한다.
 
김오준 서울 중구 동호로 8길
#논개#여성#희생#촉석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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