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지하철 출입구 10m이내 흡연 단속 첫날, 현장 가보니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9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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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태료 10만원” “증거 내놔라”… 곳곳 실랑이

“증거 내놓으세요. 말도 안 하고 과태료부터 내라고 하는 게 어디 있습니까.”

1일 오후 3시 서울 중구 지하철 1, 2호선 시청역 12번 출입구 앞에서 한바탕 소란이 벌어졌다. 대학생 김모 씨(21)가 출입구 바로 앞에서 담배를 피우다 중구보건소 단속 공무원에게 적발된 것이다. 이날은 서울 시내 지하철 출입구 금연구역(10m 이내) 위반행위에 대한 집중단속 첫날. 단속 공무원은 “바닥에 표시된 금연구역 표시 안에서 담배를 피우지 않았느냐”고 단호하게 말했다. 김 씨는 “단속 사실을 알지 못했다. 담배를 바로 끄지 않았느냐”며 항변을 이어갔다. 결국 10분에 걸친 승강이 끝에 단속 공무원은 과태료 부과 대신 “앞으로 지하철 출입구에서 담배를 피우면 과태료 10만 원을 내야 한다”고 단단히 다짐을 받았다.

1일 서울시내 지하철역 인근은 흡연자와 단속 요원들 사이에 한바탕 전쟁이 일어났다. 그동안 지하철역 근처에서 습관적으로 담배를 피우던 흡연자들이 곳곳에서 집중단속에 적발됐다. 앞서 서울시는 5월부터 서울시내 모든 지하철 출입구 10m 이내 지역을 금연구역으로 지정했었다. 그러나 1일 실제 과태료가 부과된 흡연자는 그리 많지 않았다. 종로구보건소 관계자는 “광화문역 3번 출구와 종로3가역 근처 등에서 2명을 단속했다”며 “홍보가 많이 됐기 때문인지 실제 흡연을 하는 시민들이 평소보다 확실히 적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날 현장을 지켜본 결과 일부 단속 공무원들은 노인이나 외국인 흡연자에게 과태료를 부과하지 않거나 아예 흡연자를 못 본 체 지나가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떠들썩하게 집중단속을 벌이겠다고 했지만 흡연자들이 강하게 반발하면 제대로 단속이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이 때문에 단속 공무원이 사라지면 지하철 입구는 금세 흡연자들로 붐볐다. 서울 중구 지하철 1, 4호선 서울역 8번 출구는 오전 11시 40분 중구보건소 단속 공무원이 자리를 떠나자 근처 빌딩에서 나온 회사원들의 담배 연기로 가득했다. 이날 단속에 투입된 인원은 서울시와 25개 자치구 공무원 등 408명에 달했다. 그러나 구별 단속 실적이 대부분 10건 미만에 그치는 등 실제 적발 건수는 적었다.

보건당국과 지방자치단체는 계속해서 금연구역 확대 등 강력한 금연정책을 펼친다는 입장이다. 서울시내의 금연구역은 지하철 출입구 등 실내외를 포함해 24만4439곳이다. 2012년 7만9391곳에 불과했던 것에 비해 4년 만에 3배 이상으로 증가한 것이다. 2011년 개정된 ‘국민건강증진법’으로 인해 각 지자체가 조례를 통해 자체적으로 금연구역을 지정할 수 있게 된 영향이 크다.

서울의 경우 조례로 실외 금연구역으로 지정된 곳은 올해 5월 기준 1만6984곳에 이른다. 비흡연자들은 이런 정책을 크게 반기고 있다. 장수민 씨(25)는 “금연구역이 늘어나고 있지만 여전히 흡연구역이 더 많고 금연구역에서도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이 많아 불쾌감을 느낄 때가 많다”며 “구역 확대에 그치지 말고 단속 강화가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3일부터는 개정된 국민건강증진법 시행령이 도입돼 아파트 주민의 청원이 있으면 아파트 단지 전체를 ‘금연단지’로 지정할 수 있는 등 금연구역은 계속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흡연자들은 흡연권이 지나치게 침해되고 있다며 반발한다. 금연구역 확대도 좋지만 이에 상응하는 흡연 장소도 제공해야 한다고 불만을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10년간 담배를 피운 이종인 씨(30)는 “담배를 어느 도로에서 피울 수 없는지, 어떤 건물에서 피울 수 있는지를 명확하게 알 수가 없다”며 “담배를 피울 때마다 흡연이 가능한 곳인지 늘 의아스럽다”고 말했다. 현재 서울시내에 설치된 야외 흡연 공간은 30여 곳에 불과하다.

하지만 서울시와 보건당국은 금연구역을 제외한 이른바 ‘회색지대’는 흡연이 가능하기 때문에 여전히 금연구역이 적다고 말한다. 서울시 관계자는 “아직도 금연구역을 제외한 모든 곳에선 흡연이 가능하기 때문에 흡연자들이 흡연을 할 수 있는 곳이 훨씬 많다”며 “흡연자들의 불편 역시 충분히 인식하고 있지만 흡연구역을 확대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지하철#흡연#과태료#금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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