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도형]‘총장사퇴 서명’ 잣대로… 빗나간 ‘교수 품평회’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8월 19일 03시 00분


코멘트

梨大 학생들, 서명 11%엔 “훌륭” 참여 안하면 “하찮아” 비난 댓글

김도형·사회부
김도형·사회부
“교수들 진짜 존경심 하나도 없어짐” “기대도 안 했지만 ㅋㅋㅋ, 앞으로 정말 하찮게 보일 듯 교수들 ㅋㅋ” “법대 ×놈 자식들…. 로스쿨 되고 학생들 내팽개치고 정치질에…”.

평생교육 단과대(미래라이프대) 설립 백지화 후에도 갈등이 계속되고 있는 이화여대의 동문 커뮤니티에 18일 오전 올라온 댓글 가운데 일부다. 17일 이화여대 교수비상대책위원회가 총장 사퇴를 요구하는 성명을 내고 이날 밤 12시까지 전체 교수를 대상으로 서명받은 결과를 알린 게시물에 달린 것이다. 전임교원 1001명 가운데 이름을 밝히고 서명에 동참한 교수는 114명, 11.4%였다. 그러자 재학생 등이 어느 학과 어떤 교수가 서명했는지를 놓고 일종의 ‘품평회’를 벌인 셈이다.

학생들은 이날 수천 건의 글을 올리며 자신들의 잣대로 교수들을 재단했다. 기준은 명확했다. 서명하면 훌륭한 교수, 그렇지 않으면 형편없는 교수였다. 서명에 참여한 경영대의 한 남성 교수를 치켜세운 글에는 ‘스포츠카를 몰고 다니는데 잘생기고 섹시하다’란 식의 댓글까지 달렸다.

학생들은 최경희 총장이 소통 없이 평생교육 단과대 설립을 추진했다며 본관 점거 농성을 시작했다. 학교 측이 단과대 개설을 백지화한 뒤에는 최 총장의 사퇴를 요구하며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벌써 22일째다.

학내 구성원은 교내 문제에 각자의 방식으로 의견을 드러낼 수 있다. 하지만 총장 사퇴라는 목표에 동참하지 않는다며 학교의 또 다른 구성원인 교수 대부분을 싸잡아 매도하고 조롱하는 모습에서 이들이 농성을 이어가며 지키려 하는 가치의 수준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대학은 지성의 전당’이라는 가치를 지키겠다는 학생들이 교수 각자가 내린 판단을 획일적인 기준에 맞춰 심판하는 걸 과연 ‘지성’이라고 봐줄 사람이 얼마나 될까.

또 이들은 ‘신성한 공간’인 대학에 경찰이 투입됐다는 이유로 학교를 공격하고 있다. 실제로 군사독재 시절 대학은 공권력이 함부로 진입할 수 없는 공간이었다. 민주화를 위해 피 흘렸던 이들의 교두보이자 피난처였다. 그런데 지금의 대학은 ‘나와 다른 주장 그리고 상대방에 대한 존중’이라는 최소한의 원칙마저 지키지 않는 이들이 대화조차 거부한 채 법까지 무시하는 곳이 돼버렸다. 자격 없는 이들이 물려받은 공간까지 특별 대우해 줄 필요는 없다고, 누군가는 얘기하지 않을까.

김도형 사회부 dodo@donga.com
#총장사퇴#서명#이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