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중국어 안내, 유커엔 ‘외계어’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8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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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첸팡다오잔스(前方到站是) 홍대입구 잔(站).”

중국인 유학생 신빙제(辛빙길·28·여) 씨는 지난 주말 서울 관광을 위해 지하철 2호선을 탔다가 목적지인 홍대입구역을 그대로 지나쳤다. 중국어 안내방송이 나온다는 사실에 마음을 놓고 있었는데 정작 가장 중요한 역 이름이 한국어 발음 그대로 나왔기 때문이다. 신 씨는 “당연히 역 이름도 중국식 발음으로 방송되는 줄 알았다”며 “제일 중요한 역 이름을 알아들을 수 없다면 중국어 안내방송은 사실상 하나마나”라고 말했다.

서울메트로(1∼4호선)에 따르면 현재 전동차에서 역 이름을 중국식 발음으로 안내방송 하는 곳은 강남역과 양재역 오이도역 인천역 4곳뿐이다. 나머지 역은 ‘홍대입구’처럼 한국 발음을 그대로 방송하고 있다. 이 때문에 서울시에는 중국어 서비스를 제대로 해달라는 민원이 수년째 끊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강남역 등 시범서비스 대상인 4곳을 제외하곤 개선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서울을 찾는 중국인 수가 크게 늘면서 대중교통이나 공공기관 안내판 등을 중심으로 중국어 서비스가 확대되고 있지만 이처럼 실제 사용 방식과 동떨어진 경우가 많아 오히려 혼란을 부추긴다는 지적이 나온다.

8일 오후 찾은 서울지하철 2호선 을지로입구역에는 명동 등 주요 관광지를 찾은 중국인들로 붐볐다. 이날 중국인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은 것은 역 근처 주요 건물의 위치 등을 표시한 종합안내도였다. 안내판에는 종합안내도(綜合案內圖)라는 한자 표기가 있었지만 정작 중국인 관광객들은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단어를 실제 중국에서 사용하는 표현으로 바꾸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중국인 관광객은 “안내도(案內圖)라는 단어는 중국에서는 쓰지 않는 말”이라며 “이 경우 종합지시도(綜合指示X)라고 쓰는 게 맞다”고 말했다. 건물명 표기도 엉터리였다. 을지로입구역 주변에 위치한 역전우체국은 ‘驛前郵遞局’으로 병기돼 있었는데 ‘우체국(郵遞局)’이란 단어 역시 중국어 사전에는 없는 말이다. 중국에선 우체국을 유쥐(Y局)라고 부른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관광객 대부분은 안내 표지판보다 인터넷 검색에 더 의지하고 있다. 중국인 유학생 덩펑루(鄧鵬陸·23) 씨는 “안내판을 보면 도움이 되기보다 더 헷갈리는 경우가 많아 웬만하면 인터넷 검색으로 길을 찾고 있다”면서 “역명을 읽거나 알아듣는 데 어려움이 많아 아예 역의 고유번호를 외우는 경우도 있다”고 불평했다.

서울시는 2013년 자문단까지 구성한 뒤 올해까지 외국어 안내표지판의 오류를 개선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사업 진행률은 아직까지 목표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준식 성균관대 중어중문학과 교수는 “한국식 발음으로 안내방송을 하는 건 중국인 입장에선 정보가 아니라 잡음이나 마찬가지”라며 “잘못된 외국어 방송이나 표기 등은 국가 이미지를 훼손할 수 있는 만큼 개선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강승현 기자 byhuman@donga.com
변수연 인턴기자 연세대 중어중문학과 4학년
#중국어#안내방송#엉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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