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미인도’ 진위, 수학으로 가린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8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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檢 ‘웨이블릿 변환 분석’ 도입

검찰이 위작 논란에 휩싸인 고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 진위를 가리기 위해 수학에 기반을 둔 ‘웨이블릿(Wavelet) 변환 분석’(위작 작가의 주저함을 찾아내는 기법)을 처음으로 사용 중인 것으로 1일 확인됐다. 검찰은 26년간 이어져 온 미인도 위작 논란에 종지부를 찍겠다는 각오로 미술품 위작을 판별할 수 있는 모든 감정 기법을 총동원하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형사6부(부장 배용원)는 6월 8일 미인도를 소장해 온 국립현대미술관으로부터 이 그림을 제출받아 미인도 진위를 가리기 위한 최첨단 기법을 활용하고 있다. 검찰은 최근 진행한 미인도 유전자(DNA) 분석에서 천 화백이나 위작범으로 알려진 권춘식 씨의 DNA가 검출되지 않자 미술품 위작 분석에 사용되는 최첨단 기법인 웨이블릿 분석을 국내 유명 대학 연구팀에 맡겨 진행하고 있다.

미국 듀크대 수학자 잉그리드 도비시 교수 공동연구팀이 2008년 개발한 웨이블릿 분석은 원작 그림을 디지털 이미지로 바꾼 뒤 각 부분을 분석해 물감이 칠해진 층에 이뤄진 세밀한 붓질의 정도를 수학 알고리즘으로 분석해 위작을 가려내는 방식이다. 위작자가 원작자 작품을 모방하는 과정에서 선과 곡선을 그릴 때 생기는 세밀한 수준의 ‘주저함’(wobble)을 찾아내는 방법이다. 붓질의 주저함 정도가 원작 그림보다 높을수록 위작으로 판정될 가능성이 커진다.

연구팀은 2008년 네덜란드의 반고흐 미술관, 크뢸러뮐러 미술관이 소장한 고흐 작품 101점(위작 6점 포함)을 분석해 가짜를 찾아냈다. 연구팀은 먼저 그림을 고화질 카메라로 촬영한 디지털 이미지를 픽셀로 쪼갠 뒤 물감 층에 따른 붓질의 패턴을 분류했다. 같은 방식으로 모든 작품을 분석해 유사한 패턴을 도출했다. 다른 양상의 패턴이 많이 등장할수록 주저함의 정도가 높으며 위작일 가능성도 높다. 당시 연구팀은 이 방식을 통해 위작 4점을 가려냈다.

이 외에도 검찰은 위작 여부를 가리기 위해 다양한 기법을 사용하고 있다. 1991년 미인도를 진품으로 감정했던 한국화랑협회의 당시 감정인들을 조사 중이다. 사건을 맡은 수사팀 관계자들은 미술계 권위자들과 직접 접촉하며 천 화백의 화풍 등에 관한 전문적 조언도 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또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도 수사 의뢰를 한 상태로 X선, 적외선 등 특정 파장의 빛을 이용해 위작 여부를 가리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2007년 검찰은 이중섭, 박수근 미술품 2834점을 위작으로 밝혀냈다. 미인도가 위작으로 드러나면 그동안 이를 진품이라고 주장하거나 공인했던 관계자들에 대한 수사도 불가피하다. 결과에 따라 언제든지 미술계 전체로 수사가 번질 수 있는 것이다.

미인도는 1991년 전시회에서 처음 공개됐다. 현대미술관은 천 화백의 작품이라고 소개했지만 천 화백은 “내가 그린 그림이 아니다”라고 부인했다. 천 화백의 차녀 김정희 씨는 올 4월 현대미술관장을 비롯한 6명을 저작권법 등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배석준 eulius@donga.com·김민 기자
#미인도#위작#웨이블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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