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엄마들이 에르메스 백보다 부러워하는 가방 3개는?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7월 7일 16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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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엄마들이 에르메스 백보다 부러워하는 가방 3개는?’

최근 어린 자녀를 둔 강남 엄마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말이다. 이 질문의 정답은 A영어학원 가방, B영재학원 가방, C수학학원 가방이다. 5세부터 7세, 혹은 초등학교 저학년까지를 대상으로 하는 이들 학원은 각 학원별로 자체적인 영재판별검사를 진행하거나 선발 테스트를 거쳐 우수 학생만 뽑는다고 주장한다. 상위 3~5%안에 든 학생만 받는 학원을 표방하기 때문에 이런 학원의 가방은 학부모들 사이에서 명품백보다 부러운 가방 대접을 받는 셈이다.

● 학습량, 비용 상상 초월하는 유아학원들

이른바 ‘영재 선발’을 표방하는 이런 학원들은 대체로 △강도 높은 수업 △선행 학습 △많은 분량의 숙제를 지향한다.

영어유치원(영유) 형태로 운영되는 유아대상 영어학원을 보면 보통 9시에 등원해 3~4시경 하원 하는데, 학원에 들어서는 동시에 한국어는 전혀 쓸 수 없다. 수업은 45분 수업 후 10분~15분 휴식 형태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 책상에 앉아 책과 연필을 잡고 하는 ‘학습’의 형태다.

과제 분량도 매우 많다. 시간이 지날수록 숙제는 계속 늘어 7세 정도가 되면 웬만한 유아 학습지 한 권에 해당하는 분량의 숙제를 매일 한다. 이 때문에 상당수의 엄마들이 학원 과제 해결을 위한 방과 후 과외 교사를 따로 붙인다. 과외 교사들은 영유 출신 한국인 강사가 많은데, 회당 5~10만 원 내외의 비용을 받고 엄마들 소개를 통해 연결되는 경우가 많다.

학원비는 의대 등록금 수준이다. 영재 교육을 표방하는 강남 일대 유아 대상 영어 학원의 경우 월 교습료가 150만원에서 200만 원 선이다. 만일 야외놀이터가 있거나 세련된 인테리어를 갖추고 음악, 미술 등 예체능 활동까지 접목한 학원이라면 비용은 더욱 상승한다. 강남엄마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난 서울 용산구 한남동의 유명 유아대상 영어학원은 3개월 단위로 등록하는데 특별 활동비를 뺀 기본 학원비만 900만원에 육박한다.

● 학원 입학 위해 과외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학원의 인기는 자리가 없어 못 들어갈 정도로 높다. ‘보낸 지 3개월 만에 문장으로 영어 라이팅을 한다더라’, ‘반년이 지나니 집에서도 영어로만 말한다더라’는 식의 말도 안 되는 ‘전설’ 같은 이야기들이 돌기 때문이다.

서울 강남의 한 학부모는 “어딜 가면 초등학교 입학 전에 저학년 수학을 떼는지, 어딜 가야 원어민처럼 말하게 되는지 아는데 안 보낼 리가 있냐”며 “선행학습을 안했다가 고생했다는 이야기가 많기 때문에 미리 대비하는 게 좋다고 본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학부모 역시 “교과 공부를 미리 해놔야 동아리 활동이나 경시대회 등 ‘학종(학생부종합전형)’에 대비할 시간을 벌 수 있다”며 “애들이 매고 다니는 학원 가방만 봐도 어느 정도 공부하는 앤지 표가 나기 때문에 이왕이면 좋은 학원에서 잘하는 아이들과 인맥을 쌓아주고 싶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학원 자리를 선점하기 위한 엄마들의 경쟁은 치열하다. 학원 입학을 위해 따로 과외를 받을 정도다. 강남의 한 유명 영어학원에 6세 아이를 보내고 있는 학부모는 “돌 이후 영어 놀이학교를 보냈고 4세에 들어서면서부터 영어 과외를 붙여 학원 시험을 준비했다”며 “해당 학원에 보내면 원어민처럼 읽고 쓰고 말하게 된다고 해서 꼭 보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영재판별검사를 받아봤다는 또 다른 학부모도 “어린나이에 검사를 받아야 점수가 잘 나온다는 소문이 있어 일찍부터 준비했다”며 “한글이나 영어를 모를 때 검사를 받아야 선생님이 말로 문제를 설명해준다”고 귀띔했다.

강남의 한 영어학원 관계자는 “이런 학원에 입학하려면 이미 5세 때 영어로 간단한 대화를 주고받고 영어 대소문자나 단어도 읽고 쓸 수 있어야 한다”며 “6세나 7세 때 들어가면 5세 때 시작한 아이들과 실력 차이가 많이 나기 때문에 어릴 때 입학할수록 유리하다”고 말했다.

실제 상담을 받아보니 강남의 한 유아대상 학원의 경우 영재판별검사를 받는 데에만 두 달을 기다려야 할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학원 관계자는 “영재판별검사에서 상위 판정을 받더라도 실제 입학이 가능할지는 미지수”라며 “기준 안에 들더라도 워낙 대기자가 많아 입학시험을 볼 기회조차 돌아가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영재판별 검사와 시험을 통해 우수 아이만 뽑기 때문이라는 논리였지만 꼭 그런 것만 같지도 않았다. 해당 학원에는 연예인 자녀나 방송인 등 유명 인사 자녀 비율이 특히 높았기 때문이다.

● 당장은 실력 느는 것만 보이지만….

이처럼 영재학습을 표방하는 유아학원에 대한 엄마들의 관심은 뜨겁지만 전문가들은 이런 환경을 몹시 우려한다. 마음껏 뛰어놀며 사회성을 키우고 창의력을 길러야할 5~7세 아이들이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 학습만 하는 건 장기적 발달에 매우 위험하다는 것이다.

실제 이런 학원에서 뛰어노는 시간은 통상 30분의 점심시간 후 주어지는 30분 정도의 놀이 시간 정도가 전부다. 종일반 체제의 한 영유 원장은 “놀이터나 야외에 나가는 경우는 한달에 1회 정도로 거의 없다”고 말했다. 실제 최근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서울시교육청에 등록된 유아대상 영어학원들을 분석한 결과 이들의 하루 평균 수업시간은 4시간 57분으로 중학교 수업시간과 동일했다. 집에 돌아온 후 숙제를 하거나 과외를 받는 시간까지 포함하면 유아들의 학업시간은 더욱 길어진다.

김낙흥 중앙대 유아교육과 교수는 “잠시도 가만있을 수 없는 활동적인 시기가 유아기인데, 이런 시기에 그렇게 강도 높은 학습을 한다는 건 아이들에겐 고문”이라며 “아이들이 제대로 표현을 못해 당장은 스트레스가 드러나지 않겠지만 자랄수록 정서불안이나 이상행동 장애를 보이는 등 아주 힘들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 교수는 “뇌 과학 분야에서도 영유아의 뇌 발달은 즐겁고 평안한 상태에서 놀이를 통할 때 가장 잘 발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며 “강한 ‘훈련’에 가까운 교육으로 얼마나 영재성을 지속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실제 강도 높은 학습을 지향하는 영유 출신 아이들 중에서는 국어 실력이 낮고 창의성 발달이 더딘 사례가 많이 발견된다. 그러다보니 국어와 창의력 사교육을 따로 받는 악순환도 발생한다. 영유 출신 아이들의 국어를 잘 잡아준다고 소문난 서울 강남의 D국어학원은 “6세 때 대기를 걸어놔야 초등학교 입학할 때 즈음 자리가 난다”고 말했다.

임우선기자 ims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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